8월 14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퀸 내한공연.
생각해보라, 프레디 머큐리 없는 퀸이라니. 브라이언 메이의 기타가 있고 로저 테일러의 드럼이 있다지만 그 누가 머큐리를 대체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애덤 램버트? 아메리칸 아이돌 출신의 ‘풋내기’가 그의 구실을 한다고? 아무리 뮤지컬 배우 출신다운 퍼포먼스 능력에 폭넓은 음역대와 풍부한 성량의 소유자라 해도 머큐리에 비할 수는 없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사실 다들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도 퀸이니까 간다’는 게 음악계 사람 대부분의 반응이었다.
8월 14일 오후 8시 반, 퀸과 램버트가 무대에 올랐다. 2시간 동안의 공연 중 몇 곡 지나지 않았을 때 선입견은 이미 오간 데 없었다. 머큐리와 마찬가지로 게이인 램버트는 그의 음역대는 물론 창법의 특징을 고스란히 이해하며 히트곡들을 불렀다. 그것은 모창도 재연도 아닌 소화였다. 60대 중반인 메이는 장인의 관록에 청년의 열정이 더해진 기타 사운드를 들려줬다. 퀸의 전성기였던 1980년대 라이브보다 훨씬 더 로킹하고 동시대적인 편곡이 뛰어난 음향과 맞물리면서 (긍정적 의미에서) 안온함과는 몇만 광년 떨어진 탐험처럼 들렸다(하긴 메이는 물리학 박사이자 우주 ‘덕후’이기도 하다).
뛰어난 연주와 퍼포먼스가 히트곡으로 가득 찬 세트리스트를 만났으니 빛나지 않을 수 없었다. 특정 곡을 거론하지는 않겠다. ‘Don’t Stop Me Now’ 정도를 빼고는 당신이 아는 퀸의 노래는 다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요컨대 공연 매순간에 관객의 ‘떼창’이 함께 했다는 말이다. 그것도 객석 맨 앞부터 맨 뒤까지 동참한 거대한 합창이 잠실종합운동장을 가득 매웠다.
이 모든 것에 화룡점정을 찍은 건 연출과 구성이었다. 공연 중간 홀로 어쿠스틱 기타를 멘 메이는 말했다. “프레디를 위해 함께 노래합시다.” 그리고 시작된 ‘Love of My Life’. 관객의 호응과 합창이 얹혔다. 노래의 클라이맥스, 무대 뒤 스크린에 머큐리가 등장했다. 생전 녹음된 목소리와 함께. 곳곳에서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의 영상은 본 공연 마지막 곡이던 ‘Bohemian Rhapsody’에서 다시 등장했다. 램버트가 첫 악절을 부르고 영상 속 머큐리가 이어받는 형태로. 퀸이라는 과거 밴드에 어쩔 수 없이 묻어 있을 수밖에 없는 추억이란 감정을 그들은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구현해냈다.
‘We Will Rock You’와 ‘We Are The Champion’으로 이어진 앙코르가 끝나자 멤버와 세션이 무대 인사를 했다. 환호는 멈추지 않았다. 무대 뒤로 퇴장하던 메이는 두 차례에 걸쳐 뒤를 돌아봤다. 기념하고 싶은 순간을 디지털카메라 메모리칩에 저장하듯,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이 될 한국 팬의 목소리와 눈빛, 오랜 기다림에서 나온 절실함과 기운 그 모두를 눈에 담아 머리와 마음에 굳건히 담겠다는 시선이었다.
지난해 다섯 개가 우후죽순 열리며 절정에 이르렀던 록페스티벌의 거품은 올해 들어 급속도로 빠지기 시작했다. 한국 페스티벌 시장이 교차로에 선 2014년 여름의 마지막 장을 퀸이 채웠다.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완벽한 문장으로. 교황이 한국을 찾은 첫날, 거기 여왕이 있었다. 챔피언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