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소닉을 마치며 샌디에이고에서 찍은 단체사진.
노브레인,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로다운30. 그렇게 서울소닉 세 밴드는 바다로 달려갔다. 아름다운 풍광에 해방감까지 겹치니 기분이 한결 들뜰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휴식 같은 한 주를 보내고 금요일이 왔다. 샌디에이고의 클럽 틴 캔 에일 하우스에서 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말을 던졌다. “이제 다 끝이네.” 기다렸다는 듯 줄줄이 답이 이어졌다. “끝이지.” “이제 며칠 후면 서울 가네.” 아직 LA에서 한 번의 공연이 남았음에도 왠지 그런 기분이었다.
샌디에이고에서의 공연은 작은 규모였다. 도시 자체가 작고, 사전 프로모션도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위기만큼은 그 어느 도시보다 최고였다. 마치 1990년대 서울, 즉 인디신 초창기의 홍대앞을 2013년 샌디에이고에서 재회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일까. 노브레인은 서울소닉 투어에서 처음으로 앙코르로 ‘청춘 98’을 연주했다. 크라잉넛의 ‘말 달리자’와 더불어 1990년대 인디신을 상징하는 노래다. 그땐 아직 뮤지션이 아니었던, 순수한 음악 팬이었던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조웅은 이 뜻밖의 노래에 정신을 잃고 무대 위로 달려갔다가 다른 관객들에게 짓밟혀 다리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그런 순간이 지나간 후 황량한 다운타운에서 단체사진을 찍으며 왠지 이게 진짜 마지막이고, LA의 일정은 부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랬다. 토요일 오후 차를 타고 3시간을 달려 LA로 이동했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공연장인 할리우드 딤 마크 스튜디오로 이동했다. 세계적인 전자음악가인 스티브 아오키가 운영하는 딤 마크 스튜디오는 공연장과 바, 라운지가 널찍널찍하게 갖춰져 도시의 나이트 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모든 것을 제공한다. 게다가 텍사스까지 서울소닉과 일정을 공유한 후 2주간 캠핑카로 미국 구석구석을 돌며 지옥의 강행군을 마친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함께 하기로 해 대장정의 마무리로는 손색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지역매체와의 인터뷰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살짝 당혹스러웠다. 공연이 연기됐는데, 딤 마크 스튜디오에는 서울소닉 이후 다른 일정이 잡혀 있었다. 계약에 엄격한 미국 시스템에는 에누리가 없었다. 따라서 밴드들은 준비한 곡을 다 연주하지 못한 채 노래를 조금씩 덜어내야 했다. 밴드들은 그래도 좋은 공연이었다고 했지만, 투어의 모든 과정을 지켜본 처지에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문장을 다 쓰고도 마침표를 제대로 찍지 않은 기분이었다.
월요일 1시 반 비행기를 타고 13시간 동안 태평양을 건넜다. 5주 전 미국으로 날아갈 때는 그렇게 지루하더니, 한국으로 갈 때는 그럴 틈이 없었다. 넓은 땅을 오가며 여독이 꽤 쌓였던 모양이다. 긴 시간의 대부분을 잠으로 채웠다. 깨어 있는 시간 동안 그리운 사람들을 생각했다. 꿈같은 한 계절을 끝내고 현실로 복귀했을 때 닥쳐올 고난을 떠올렸다.
설렘과 걱정은 그러나 공항에 도착했을 때 잠시 꺼졌다. 마치 졸업식을 하는 학생들처럼, 아니 제대하는 군인들처럼 서울소닉 세 밴드와 스태프들은 서로서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일일이 악수하고 덕담을 건네며 포옹을 했다. 서울에서 그렇게 많은 공연을 했으면서도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던 일이다. 누구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한 달이라는 시간의 의미가, 여행의 선물이 귀국 후 공항에서 그렇게 나타났다.
서울소닉이라는 이벤트를 통해 우리는 미국이라는 록 본고장의 허와 실을 봤다. 가능성과 자신감을 얻었다. 공항을 나섰다. 13시간 만에 피우는 담배는 황홀했다. 그 황홀감을 나누며 누군가 말했다. “서울소닉 단체 카톡방은 절대 깨지 말자.” 다른 세 밴드가 부지불식간 한 밴드처럼 되는 과정을 압축하는 한마디처럼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