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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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메이커’로 가난 퇴치 희망의 물을 길어 올리다

미국의 응용기계학자 마틴 피셔

  • 고영 소셜컨설팅그룹 대표 purist0@empas.com

    입력2013-04-15 10: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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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니메이커’로 가난 퇴치 희망의 물을 길어 올리다

    킥스타트 창립자 마틴 피셔(가운데).

    한 나라가 부유해진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나아가 한 대륙이 잘산다는 것은 또 무슨 뜻일까. 한때 우리도 한없이 가난한 나라였다. 하지만 반세기가 지난 지금 중국, 일본, 한국은 아시아 동쪽을 호령하는 경제대국이자 세계 경제의 한 축이 됐다. 그러나 우리와 달리 성장이 멈춰버린 대륙이 있다. 바로 아프리카다. 자연과 동물이 기후를 좇아 어우러진 거대한 대륙에 12억 인구가 살지만, 그중 85%가 빈민층이다. 가난, 기근, 질병, 내전, 황폐화, 척박한 토양, 찌는 듯한 더위 등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부정적 단어는 셀 수 없이 많다.

    농업으로 시작해 최첨단 산업으로 성장한 우리와 달리, 아프리카는 여전히 농업을 산업 근간으로 삼는다. 지난 60년 동안 한국은 빈곤에서 탈출하려고 끊임없이 저축하고 투자하며 사회간접시설을 확충해 산업화를 이뤘지만, 아프리카는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주저앉았다. 한 미국 청년이 시작한 캠페인은 바로 이들의 인식을 바꿔 삶의 의지를 만들어가겠다는 목표로 시작됐다. 당장은 하루 1달러로 연명하지만, 80달러짜리 간이펌프를 구매하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게 이 캠페인의 모토다.

    단순한 펌프의 놀라운 힘

    미국 코넬대학을 다니던 부유한 집안 출신의 청년 마틴 피셔는 대학을 졸업할 무렵 방황을 겪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평생 행복할까.’ 대다수 젊은이가 취업 직전 빠지는 고민을 피할 수 없었던 피셔는 남미 페루를 여행하면서 자신의 길을 결정하는 진지한 성찰에 몰입한다. 아버지처럼 과학자가 돼 더 공부를 해야 할지, 아니면 좋은 직장에 들어가 편안한 일생을 보내야 할지가 그의 앞에 주어진 선택지였다.

    열악하기 짝이 없는 남미 빈곤층의 삶을 목격한 뒤 그 선택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곧장 이들을 돕는 데 온 인생을 투자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아니다. 일단 취업을 미루고 석사과정에 들어갔다. 2년이 지난 뒤에도 그는 여느 대학원생과 마찬가지로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박사과정을 밟았다. 그렇게 공부가 끝나갈 무렵, 그는 문화·예술 분야 사회적 기업가인 어머니의 권유로 아프리카 여행 겸 유학을 고민하게 된다.



    “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 다른 이의 가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내가 배운 응용기계학이 가난을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자.”

    피셔는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선발돼 아프리카 케냐를 찾았다. 그렇게 10개월 정도 머물 생각으로 떠났던 유학은 이후 16년간의 정착으로 이어졌다. 뜨거운 가능성이 그의 열정을 일깨웠던 것이다.

    케냐 시골마을 사람들을 보면서 그는 거대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 돈이 최저한도로 들어가는 기술이 필요했다. 늘 해왔던 것에 작은 자극만 줘도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믿는 그는 각 가정의 농업 생산성을 끌어올리려고 물에 집중했다. 집에서 노는 아이와 거동이 불편한 노인, 몸이 성치 못한 장애인이 오히려 농장 확대를 위한 물 개발에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착안이었다.

    “작은 것, 버려진 것, 관련 없는 것이 정답이 될 수 있다. 현지에서 누구든 쉽게 물을 이용할 수 있게 하자. 어쩌면 거대한 기술이 아닌, 아주 적정한 수준의 낮은 기술로 마을 전체를 가난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피셔는 아이들이 재미로 뛰어놀 수 있는 펌프 놀이기구를 제작하는 일에 착수했다. 그 결과 시소처럼 양쪽 날개가 달린 펌프에서 아이들이 하루 종일 서로 움직이며 뛰어놀면 1000ℓ물을 퍼 올릴 수 있는 시소 펌프를 제작했다. 관개수로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려고 땅을 쉽게 팔 수 있는 점프 땅파기 기계도 고안해냈다. 생각이 계속 발전하면서 콩 작물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콩기름 짜는 기계도 만들어냈다. 계속되는 연구와 실험을 통해 만든 단순한 기계는 예상대로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메마른 땅에 물이 넘쳐나면서 채소를 경작하는 밭은 점점 넓어졌고, 주민은 삶의 목표를 가지게 됐다.

    피셔가 가장 오랫동안 고민한 일은 발로 밟아 물을 긷는 펌프기계 ‘머니메이커 (MoneyMaker)’를 과연 공짜로 나눠주는 게 맞는지 하는 점이었다. 결국 그는 80달러에 팔았다. 하루 1달러로 생활하던 주민에게 80달러짜리 농기구를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결심도 아니다. 일단 머니메이커를 빌려 써본 사람은 손쉽게 농장을 일굴 수 있었고, 왜 돈을 모아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좀 더 효과적으로 농장을 개발할 수 있는지 연구하기 시작했다. 공짜로 나눠줬다면 불가능했을 동기 유발이었다. 가난을 이겨내겠다는 의지가 생겨난 것이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피셔는 적정기술기업 ‘킥스타트(KickStart)’를 창립해 아프리카 국가 주민에게 손쉬운 농기계를 보급하는 일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 무렵 그는 다음과 같은 5가지 원칙을 갖고 사업을 유지, 확장해나갔다.

    ‘머니메이커’로 가난 퇴치 희망의 물을 길어 올리다

    아프리카 말리 농민이 머니메이커로 농사를 짓는 모습.

    1. 문제가 곧 기회이며, 문제를 즐긴다.

    2. 제품은 단순하게 디자인한다.

    3. 생산은 최저 비용이 들도록 개선한다.

    4. 쉬지 않고 시장을 개척해나간다.

    5. 측정하고 다시 움직인다.

    이 5가지 원칙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대로 지켜지고 있다. 이제는 케냐를 넘어 아프리카 전역에서 머니메이커를 판다. 머니메이커 19만여 대가 아프리카 주민에게 팔렸는데, 이는 6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절대빈곤에서 탈출하는 계기가 됐다. 나아가 미국과 아프리카의 여러 사회적기업과 연계해 다양한 적정기술을 연구, 개발, 보급하는 피셔는 문제를 해결하는 이 5가지 원칙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믿는다. “진로는커녕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았던 케냐 여행이 단순한 시간 낭비가 아닌 사명으로까지 발전한 것처럼, 기회는 늘 문제와 함께 온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거대한 변화, 이제 다시 시작이다

    농업 생산성 400% 향상, 새로운 일자리 5만4000개, 수익 1200억 원, 신규 창업자 12만여 명. 이 수치는 그동안 피셔와 함께했던 사람들, 킥스타트가 12년이 넘는 시간 동안 흘린 땀과 눈물의 결정체다. 2003년 이후 킥스타트는 늘 같은 구호를 외친다.

    “과학기술은 작은 상식과 맞닿을 때 빛을 발한다.”

    케냐에서 시작한 적정기술사업은 2000년 탄자니아, 2004년 말리, 2005년 우간다, 2006년 말라위, 2007년 잠비아, 2008년 수단과 르완다 등 국경을 넘어 수많은 가정의 꿈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없이 가난하다고만 알려졌던 아프리카 사막지대 나라에서 생명의 근원인 물이 오늘도 어김없이 작은 도랑을 흐른다. 극히 작고 단순한 펌프 기술 덕분이다.

    “우리는 이것이 시작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을 가난으로부터 구해내겠다고 마음먹은 후 보낸 17년이란 세월이 결코 쉽진 않았지만, 그만큼 즐겁기도 했다. 내일 어디에선가 농장에 물을 뿌리며 웃고 있을 아들과 엄마, 아빠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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