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상 종종 공연을 보려고 비행기에 오른다. 요즘이야 해외 뮤지션의 내한공연이 부쩍 잦아졌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어디 그랬나. 특히 자주 갔던 곳이 일본이다. 일본 공연장을 방문할 때마다 놀라웠던 것은 최상의 관람 환경이다. 5만 명 이상 들어찬 스타디움의 맨 뒷자리 구석에서도 소리가 또렷하게 들리고, 대형 스크린을 통해 뮤지션의 퍼포먼스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다. 현장 중계 영상의 적절한 편집력이 공연 감상의 만족도를 높였다. 프리미어리그급 중계라고나 할까.
한국은 어떤가.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곤 하지만 아직도 극소수의 공연장을 제외하면 관람석 위치에 따라 사운드 질이 들쭉날쭉한다. 뮤지션을 가까이서 보겠다고 펜스라도 잡았다가는 사실상 사운드를 포기해야 한다. 그렇다고 뒤쪽에 앉으면 뭉개진 소리만 듣기 일쑤다. 그러니 똑같은 공연을 보고도 평가와 반응이 제각각이다. 중계 영상 수준도 미흡하다. 인물 중심으로 편집하는 건 TV나 현장 스크린이나 매한가지. 기타리스트 공연인데도 스크린에 손이 아닌 얼굴만 비치고, 전체적인 퍼포먼스가 중요한 밴드 공연에서 꿋꿋이 보컬의 모습만 보여주는 식이다. 현장 연출자가 사전에 음악을 충실하게 연구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4월 27일 레이디 가가의 내한공연은 이 같은 국내 공연 시스템의 아쉬움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레이디 가가의 이번 공연에는 2가지 관전 포인트가 있었다. 먼저 공연을 앞두고 일부 기독교 세력의 반발이 있었던 터라 공연 당일에도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궁금했다. 2003년 메릴린 맨슨 내한공연 당시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을 에워쌌던 통성 기도하는 인간 띠를 다시 보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음악 자체보다 퍼포먼스로 대중예술의 진보를 이끌어낸 레이디 가가의 공연장 밖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충돌의 미학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확인한 건 경건한 표정으로 ‘지금 돌아가면 삽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서 있던 한 남자가 전부였다. 들은 얘기로는 공연에 반발해 기도하는 무리가 여기저기 있었다는데, 기대(?)했던 수준은 아니었다.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공연 자체다. 이번 내한공연이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 투어 첫 무대였던 만큼 어떤 무대 연출과 퍼포먼스를 보여줄지 기대가 컸다.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이하 주경기장)은 타원형이다. 가로로 활용할 경우 같은 인원을 수용해도 무대와 객석 사이가 가까워진다. 메탈리카, 비, 조용필 등은 주경기장을 그렇게 활용했다. 그런데 레이디 가가는 주경기장을 세로로 활용했다. 스탠딩 구역을 제외하면 무대와 객석 간 거리가 훨씬 멀어진다. 어차피 스타디움 공연은 사람보다 무대를 보는 것 아니던가. 뮤지션은 로봇에 탑승한 파일럿 같은 존재다.
그런데 그 무대조차 보이지 않았다. 좌석이 무대 정면 2층이었으니 무대에서 가장 멀었다. 사실상 스크린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데, 공연장 크기에 비해 스크린이 턱없이 작았다. 비슷한 위치에서 관람한 사람의 표현을 빌리자면 “멀리서 면봉이 춤추고 스크린에는 면봉 머리가 보이는” 상황이었다. 마치 3m 거리에서 스마트폰 화면으로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노래를 듣는 것으로 만족하면 될 일이나,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런가. 안 보는 것과 안 보이는 것은 다르다.
그래서인지 공연 중간 근처에서 보던 관객이 속속 빠져나갔다. 공연이 끝나고 반응을 살펴보니 어느 자리에서 봤느냐에 따라 이렇게 평이 엇갈리는 공연도 처음이었다. 무대 앞에 서서 본 이들이나 레이디 가가의 트위터를 통해 ‘상당히 멋진 무대였구나’라고 짐작할 뿐이다. 분명 공연장에 있었는데 공연 내용을 짐작할 수밖에 없다니, 나는 정말 거기에 있었던 걸까.
한국은 어떤가.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곤 하지만 아직도 극소수의 공연장을 제외하면 관람석 위치에 따라 사운드 질이 들쭉날쭉한다. 뮤지션을 가까이서 보겠다고 펜스라도 잡았다가는 사실상 사운드를 포기해야 한다. 그렇다고 뒤쪽에 앉으면 뭉개진 소리만 듣기 일쑤다. 그러니 똑같은 공연을 보고도 평가와 반응이 제각각이다. 중계 영상 수준도 미흡하다. 인물 중심으로 편집하는 건 TV나 현장 스크린이나 매한가지. 기타리스트 공연인데도 스크린에 손이 아닌 얼굴만 비치고, 전체적인 퍼포먼스가 중요한 밴드 공연에서 꿋꿋이 보컬의 모습만 보여주는 식이다. 현장 연출자가 사전에 음악을 충실하게 연구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4월 27일 레이디 가가의 내한공연은 이 같은 국내 공연 시스템의 아쉬움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레이디 가가의 이번 공연에는 2가지 관전 포인트가 있었다. 먼저 공연을 앞두고 일부 기독교 세력의 반발이 있었던 터라 공연 당일에도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궁금했다. 2003년 메릴린 맨슨 내한공연 당시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을 에워쌌던 통성 기도하는 인간 띠를 다시 보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음악 자체보다 퍼포먼스로 대중예술의 진보를 이끌어낸 레이디 가가의 공연장 밖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충돌의 미학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확인한 건 경건한 표정으로 ‘지금 돌아가면 삽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서 있던 한 남자가 전부였다. 들은 얘기로는 공연에 반발해 기도하는 무리가 여기저기 있었다는데, 기대(?)했던 수준은 아니었다.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공연 자체다. 이번 내한공연이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 투어 첫 무대였던 만큼 어떤 무대 연출과 퍼포먼스를 보여줄지 기대가 컸다.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이하 주경기장)은 타원형이다. 가로로 활용할 경우 같은 인원을 수용해도 무대와 객석 사이가 가까워진다. 메탈리카, 비, 조용필 등은 주경기장을 그렇게 활용했다. 그런데 레이디 가가는 주경기장을 세로로 활용했다. 스탠딩 구역을 제외하면 무대와 객석 간 거리가 훨씬 멀어진다. 어차피 스타디움 공연은 사람보다 무대를 보는 것 아니던가. 뮤지션은 로봇에 탑승한 파일럿 같은 존재다.
그런데 그 무대조차 보이지 않았다. 좌석이 무대 정면 2층이었으니 무대에서 가장 멀었다. 사실상 스크린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데, 공연장 크기에 비해 스크린이 턱없이 작았다. 비슷한 위치에서 관람한 사람의 표현을 빌리자면 “멀리서 면봉이 춤추고 스크린에는 면봉 머리가 보이는” 상황이었다. 마치 3m 거리에서 스마트폰 화면으로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노래를 듣는 것으로 만족하면 될 일이나,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런가. 안 보는 것과 안 보이는 것은 다르다.
그래서인지 공연 중간 근처에서 보던 관객이 속속 빠져나갔다. 공연이 끝나고 반응을 살펴보니 어느 자리에서 봤느냐에 따라 이렇게 평이 엇갈리는 공연도 처음이었다. 무대 앞에 서서 본 이들이나 레이디 가가의 트위터를 통해 ‘상당히 멋진 무대였구나’라고 짐작할 뿐이다. 분명 공연장에 있었는데 공연 내용을 짐작할 수밖에 없다니, 나는 정말 거기에 있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