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 모습.
베를린 필이라고 하면 1960~80년대 오똑한 콧날과 수려한 외모에 거의 늘 눈을 감고 지휘하던 당시 음악감독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가 많다. 베를린 필의 첫 번째 내한 연주는 카라얀의 권위가 절정에 올라 있던 1984년 세종문화회관에서 동아일보사 주최로 열렸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6번 ‘전원’ 등을 연주했던 당시 베를린 필의 콘서트는 이 땅의 음악팬들에게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는 결벽에 가까운 절도의 합주’로 기억됐다.
그러나 당시 카라얀은 절대에 가까웠던 독재적 권력에 이상신호를 보이기 시작하던 때였다. 여성 클라리넷 주자인 자비네 마이어의 입단을 둘러싸고 기존 단원들이 ‘특혜’라며 반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결국 단원들은 89년 카라얀을 철옹성에서 밀어냈고, 카라얀은 상심 속에서 그해 타계했다.
21년 만인 올해 베를린 필을 이끌고 오는 주인공은 2002년 이 악단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영국인 사이먼 래틀(50) 경. 그는 취임 2년 전인 1999년 단원들의 직선투표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아 카라얀, 클라우디오 아바도를 잇는 베를린 필의 음악감독으로 선출됐다. 당시 그와 경쟁한 후보자는 다니엘 바렌보임, 로린 마젤, 리카르도 무티 등 세계 지휘계의 거물들. 40대 ‘젊은 피’는 래틀 단 한 사람에 불과했다.
무엇이 그를 젊은 나이에 세계 음악계의 정상으로 끌어올린 것일까. 그는 불과 25세였던 80년 무명의 시골 악단인 영국 버밍엄시 교향악단 지휘자로 취임해 88년 말러 교향곡 2번으로 ‘음반의 노벨상’이라는 그라머폰상 ‘올해의 음반상’을 받는 등 런던 ‘빅5’ 악단을 능가하는 정상급 악단으로 키워냈다.
기자는 올해 2월 베를린 필하모닉 음악감독 접견실에서 래틀을 만났다. 그는 “무역회사를 경영했던 아버지가 한국·대만·홍콩 등을 돌아다녀, 어릴 적 한국제 장난감을 갖고 놀기도 했다”는 색다른 인연을 털어놓았다. 인상적인 얘기는 전임 지휘자들에 대한 평가였다. 기자는 ‘음악팬들 사이에 떠도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전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베를린 필을 푸르트벵글러화(化)했다. 카라얀은 악단을 카라얀화했다. 그의 후임인 아바도가 한 일은 악단을 탈(脫)카라얀화하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당신은?’이라고 물었다.
베를린 필 음악감독 사이먼 래틀. 매해 여름 발트귀네에서 열리는 베를린 필의 여름 콘서트. 베를린 필하모닉홀(왼쪽부터).
그의 말대로, 그가 이끄는 베를린 필은 오늘날 뜨겁고 집중적이면서도 투명한 소리 위에 여유로움까지 갖춘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음악팬들에게 한 가지 안타까운 일이 있다. 이번 공연의 입장권 가격이 9만~45만원으로 역대 한국 실내 클래식 공연사상 최고가로 기록됐다는 것. 공연 비용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악단 개런티를 감안하면 이는 불가피한 일이기도 하다. 베를린 필과 함께 ‘빅3’으로 평가되는 빈 필, 뉴욕 필의 경우도 베를린 필의 2.5분의 1에서 3분의 1에 불과한 개런티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연 관계자는 “티켓 가격이 높게 책정됐지만 이 가격에서도 기업 협찬이 없을 경우 주최사가 7억원에 가까운 손실을 입을 전망”이라고 밝혔다.
이번 베를린 필 내한 콘서트의 연주곡은 라벨 무용 모음곡 ‘어미 거위’, 베토벤 교향곡 ‘영웅’(11월7일), 하이든 교향곡 86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교향시 ‘영웅의 생애’(11월8일) 등. 8월1일까지 조기 예매하거나 30인 이상 단체 구입 시 10%의 할인 혜택이 주어진다. 1588-7890, www.ticketlin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