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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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에 내몰린 ‘발칸의 여우’

  • 입력2005-06-27 11: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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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랑끝에 내몰린 ‘발칸의 여우’
    “국내잔존이냐, 해외망명 후 도망자가 될 것인가.” 13년동안 유고를 강권통치해온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운명에 세계인의 관심이 쏠려 있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연방대통령(59)은 6일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했음을 공식 시인했다. 한때 국민의 존경을 한몸에 받던 ‘영웅’ 밀로셰비치는 이제 ‘전범’으로 재판정에 설지도 모르는 딱한 처지가 됐다.

    그는 지난 9월24일 치러진 선거에서 패배한 후 선거결과를 조작해 2차 결선투표를 강행하려 했으나 ‘시민의 힘’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거리로 쏟아져나온 시민들은 수일째 그의 퇴진을 요구했고, 급기야 베오그라드에 모인 30만 명의 시위대는 방송국과 의사당 건물을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시민혁명’이었다. 마침내 밀로셰비치는 권좌를 내놓게 되었다. 노회한 독재자 밀로셰비치도 노도와 같은 피플 파워를 막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는 과거 세르비아 제국의 영광을 되찾자는 ‘대(大)세르비아’를 외치며 민족주의를 내세워 10여년간 권좌를 유지해 온 인물. 그로 인해 ‘유럽의 화약고’ 발칸반도는 90년대 내내 화약연기와 피비린내가 그치질 않았다. ‘발칸의 도살자’라는 별명도 그때 얻었다. 권좌를 유지하는 동안 숱한 정치적 위기를 교활한 여우처럼 넘겼다 해서 ‘발칸의 여우’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는 ‘발칸의 여우’답게 대통령을 사임한 즉시 또다른 변신을 꾀하고 있다. 그는 “강력한 야당을 만들어 다음 선거에서 승리하겠다”며 국내에 남아 정치를 계속할 뜻을 비쳤다.



    어떻게 보면 ‘국내잔존’은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유고 전범재판소가 그를 ‘인종청소’ 혐의로 전범재판에 기소해 놓은 상태여서 해외망명을 택할 경우 도망자 신세로 전락할 것이 뻔하기 때문.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를 자처하는 보이슬라브 코스투니차 신임 유고 대통령은 선거기간 내내 “헤이그 재판소는 미국의 정치도구에 불과하다”며 밀로셰비치 인도를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수그러뜨리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밀로셰비치가 극적으로 사임을 발표한 데는 두 사람 간의 물밑 약속이 있지 않았느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10월6일 두 사람의 회동에서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은 순순히 권력을 넘겨주는 대신 국내에서의 안전을 보장받았다는 것.

    그러나 밀로셰비치가 결국은 러시아나 벨로루시 또는 중국처럼 비적대적인 나라로 망명할 것이라는 관측이 끊이질 않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78일간 폭격과 경제제재로 거덜난 경제를 살려야 하는 코스투니차로서는 미국과 유럽의 전범 인도 압력을 쉽사리 거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자신의 약속도 지켜야 하고 경제도 살려야 하는 코스투니차로서는 절묘한 타협으로 밀로셰비치에게 외국 망명을 종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 밀로셰비치 제3국 망명설의 근거가 되고 있다.

    “10여년간 짊어졌던 막중한 책임을 벗게 된 지금 약간의 휴식기를 갖고 가족, 특히 손자인 마르코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갖고 싶다.”

    밀로셰비치는 대통령 사임 발표 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같은 그의 소망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그를 전범으로 기소한 유엔 유고전범재판소가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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