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니워커’ 보유 디아지오, 월드컵 사상 최초 ‘공식 증류사 스폰서’ 된 사연

[명욱의 위스키 도슨트] 증류주, 월드컵 무대 독주해온 맥주에 도전장

  •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

    입력2026-07-02 0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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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북중미월드컵 조별리그 A조 1차전 대한민국과 체코의 경기가 벌어진 6월 1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몰에서 시민들이 맥주캔을 부딪치고 있다. 뉴시스 

    2026 북중미월드컵 조별리그 A조 1차전 대한민국과 체코의 경기가 벌어진 6월 1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몰에서 시민들이 맥주캔을 부딪치고 있다. 뉴시스 

    수십억 명 시선이 쏠리는 월드컵은 기업 입장에선 브랜드를 전 세계에 각인할 수 있는 광고판이다. 축구 관람과 뗄 수 없는 관계인 주류산업은 이 공간을 오랫동안 이용해왔다. 경기를 보는 방식에 따라 함께 마시는 술이 달라졌고, 주종이 달라지면 마케팅 문법도 바뀐다. 최근 세계 주류 시장에 불어온 소비 트렌드 변화는 월드컵 경기장 안팎의 술잔 풍경까지 바꿔놓고 있다.

    축구와 맥주, 40년 동행 역사

    스포츠바와 펍 혹은 야외에서 수많은 사람이 한데 모여 경기를 보며 잔을 부딪치는 풍경은 1960년대 TV가 보급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특히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은 위성 중계가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상징적인 대회였다. 이때 대서양을 건너 미주 지역까지 경기가 생중계됐고, 축구는 비로소 국경을 넘는 콘텐츠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전 세계가 같은 화면을 컬러로 동시에 즐기는 글로벌 중계는 4년 뒤 1970년 멕시코 대회에서 완성된다.

    TV의 확산은 축구를 거리와 광장으로 끌어냈다. 그 과정에서 시원하고 청량한 라거 맥주는 축구 관람의 대표 음료로 자리 잡았다. 긴 경기 시간 동안 부담 없이 들이켤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었다. 축구팬들의 갈증에 주목한 글로벌 맥주 기업들은 월드컵 후원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버드와이저(Budweiser)로 유명한 AB인베브는 1986 멕시코월드컵부터 FIFA 공식 후원사로 참여해왔다. 2026 북중미월드컵에 이르러 40년 후원 역사를 쌓았으니, 월드컵과 가장 끈끈하게 엮인 주류 브랜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축구연맹(UEFA)이 주관하는 챔피언스리그에서는 하이네켄(Heineken)이 2005년부터 오랜 기간 공식 맥주 후원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처럼 축구와 불가분의 관계로 여겨지던 맥주산업은 4년 전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개최국 카타르가 이슬람 문화권의 특성을 들어 개막 이틀 전 경기장 주변 맥주 판매를 전격 금지한 것이다. 수십 년간 경기장 판매를 핵심 자산으로 삼아온 버드와이저로서는 뼈아픈 일격이었다. 하지만 버드와이저는 위기를 기회로 뒤집었다. 경기장에서 팔지 못하게 된 맥주를 우승국에 통째로 보내겠다는 캠페인을 내걸며 전 세계 언론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다. 이후 리오넬 메시가 이끈 아르헨티나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이 캠페인은 그해 월드컵에서 가장 크게 회자된 마케팅 사례로 남았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2026 북중미월드컵에서 증류주 기업 디아지오를 북중미·남미 지역 공식 증류주 후원사로 선정했다. 증류주 회사가 월드컵 후원에서 전면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디아지오 제공 

    국제축구연맹(FIFA)은 2026 북중미월드컵에서 증류주 기업 디아지오를 북중미·남미 지역 공식 증류주 후원사로 선정했다. 증류주 회사가 월드컵 후원에서 전면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디아지오 제공 

    하이볼과 RTD 칵테일의 역습 

    최근에는 월드컵을 둘러싼 술잔 지형도에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수십 년간 맥주가 독점해온 시장에 위스키와 보드카, 테킬라 같은 증류주가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독주를 스트레이트로 털어 넣는 방식은 아니다. 탄산수나 토닉워터를 섞은 하이볼, 그리고 따자마자 마실 수 있도록 만들어진 RTD(Ready To Drink) 칵테일이 새로운 주류 소비 방식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 제품은 맥주의 청량감과 손쉬움은 그대로 가져가면서 더 다양한 풍미와 선택지를 얹는다.



    이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무대가 바로 2026 북중미월드컵이다. FIFA는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 최대 증류주 기업 디아지오(Diageo)를 북중미·남미 지역 공식 증류주 후원사(Official Spirits Supporter)로 선정했다. 증류주 회사가 월드컵 후원에서 전면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디아지오는 스카치위스키 조니워커(Johnnie Walker)와 뷰캐넌스(Buchanan’s), 보드카 스미노프(Smirnoff), 프리미엄 테킬라 돈 훌리오(Don Julio)와 카사미고스(Casamigos) 등을 거느린 거대 기업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디아지오는 캐나다·멕시코·미국 16개 개최 도시의 팬 페스티벌 및 각종 공식 행사에서 하이볼과 칵테일을 앞세운 체험 프로그램을 펼치며 증류주 문화를 적극 알리고 있다.

    이 변화는 맥주업계에 적잖은 부담이다. 그동안 스포츠 관람 시장에서 맥주가 강세를 보인 비결은 시원함과 청량감, 그리고 비교적 낮은 도수였다. 최근 인기를 끄는 하이볼과 RTD는 이 장점을 상당 부분 공유하면서도 한층 다채로운 맛과 개성을 뽐낸다.

    증류주 기반 음료가 스포츠 시장에 안착한 배경에는 두 가지 동력이 있다. 첫째는 전 세계로 번진 믹솔로지(mixology) 문화다. 그저 취하기 위한 음주에서 벗어나, 다양한 재료를 조합해 맛과 경험을 즐기는 소비가 자리 잡았다. 둘째는 개최지인 북중미 시장의 특성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 위스키 시장 가운데 하나이며, 멕시코는 테킬라의 본고장이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최근 수년간 RTD 칵테일과 하드셀처(hard seltzer: 탄산수에 알코올과 과일향을 첨가한 음료)가 새로운 주류 카테고리로 급성장했다. FIFA가 증류주 기업과 손잡은 데는 이런 지역적 토양이 깔려 있다.

    그렇다고 맥주 시대가 끝난 것은 아니다. 버드와이저는 여전히 월드컵 최고 등급 후원사이고, 오랜 세월 쌓은 유통망과 브랜드 자산은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는다. 경기장과 팬존에서 맥주가 지닌 상징성 및 대중성 역시 여전히 굳건하다.

    앞으로 스포츠 관람 문화는 한 가지 술이 지배하는 단조로운 풍경이 아니라, 한결 다채로운 모습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경기 전에는 시원한 라거로 목을 축이고, 경기 후에는 하이볼이나 칵테일로 여운을 잇는 방식이 점차 자연스러운 문화로 스며들고 있다. 2026 북중미월드컵이 본선 참가국이 늘면서 대회 몸집을 키운 것처럼 주류산업의 경쟁도 더 넓고 복잡한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월드컵 승부가 잔디밭 위에서 펼쳐지듯이, 주류산업의 경쟁은 관중의 술잔 속에서 열기를 더한다. 

    명욱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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