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후 진료 체계가 작동하지 않으면 ‘응급실 뺑뺑이’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GETTYIMAGES
지난해 10월 국회는 ‘응급실 뺑뺑이 방지법’(응급의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응급의료기관이 응급환자를 수용할 수 없는 ‘정당한 사유’를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하지만 의료 현장 반응은 냉담하다.
응급실이 환자를 받지 못하는 건 의료진의 태만이나 윤리의식 부족 때문이 아니다. 직접적 원인은 필수의료과 전문의 부재와 병상 고갈이다. 응급의학과 의사가 응급실에 있어도 중환자를 수술하고 입원시켜 돌볼 배후 진료 체계가 작동하지 않으면 환자를 받을 수 없다. 중환자실과 일반 병동이 포화 상태일 때 응급실은 제 기능을 상실한다.
여기에 한국 사회 특유의 문제가 추가된다. 과도한 소송 위험과 형사 책임 부담이다. 응급의료는 본질적으로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제한된 시간에 처치를 하는 만큼 의료진이 느끼는 압박감도 크다. 그런데 잦은 민형사 소송과 결과 중심 판결은 의료진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위협이 된다. 그 결과 응급의학과, 외상·흉부외과, 산부인과 등 필수 진료과는 기피 분야가 됐다. 최근 전공의 모집에서 비수도권 응급의학과가 사실상 붕괴 수준에 이른 것은 이런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응급의료는 공공안전망
응급·필수의료는 의료진 개개인의 희생에 기대서는 유지할 수 없다. 응급 상황에서 발생하는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책임은 국가가 나눠서 져야 한다. 즉 국가책임 배상제도나 공적 보상기금 도입이 필요하다. 동시에 필수의료 종사자가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의료수가를 개편해야 한다.경증 환자가 응급실로 몰리지 않도록 야간 및 휴일 진료 체계를 확충하는 것도 중요하다. 119구급대와 병원이 실시간으로 병상 및 전문의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디지털 인프라도 고도화해야 한다. 정확한 정보 제공, 합리적 환자 배분이 이뤄지면 구급차가 더는 도로에서 방황하지 않을 것이다.
응급실이 환자에게 열려 있지 않고, 환자가 병원을 찾아 헤매야 하는 사회는 정상일 수 없다. 이제 응급의료는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공공안전망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받아들여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