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반려견 미용은 외형적 아름다움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GETTYIMAGES
낯선 사람 손길·기계 소음 스트레스↑
반려견 미용은 단순히 심미적 목적이 아닌 위생, 건강 유지 목적에서 시작됐습니다. 장모종 견종의 경우 털이 쉽게 엉키고 피부에 통풍이 잘 되지 않아 습진이나 세균, 기생충 등이 발생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여름철에는 긴 털이 열사병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발바닥 사이에 털이 너무 많이 자라면 반려견이 미끄러지거나 관절에 무리가 가기도 하죠. 이처럼 기능적 목적의 미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경우가 많습니다.그러나 오늘날 반려견 미용은 기능적 목적보다 외형적 아름다움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반려견 미용 산업은 매년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미용 콘테스트, 반려견 전용 염색약까지 등장했습니다. 과연 이 같은 변화가 반려견 삶의 질을 향상하는 방향인지 의문입니다. 예쁘게 미용한 반려견이 보호자의 과시에 이용된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습니다.
반려견에게도 미용이 기분 전환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보호자가 있는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반려견은 자기 외모에 대한 인식이 없으며 타인의 시선 또한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낯선 사람(미용사)에 의해 움직임이 억지로 통제되고, 소음이 심한 기계 소리(클리퍼·드라이어)에 노출되며, 때로 통증이 가해지는 경험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특히 사회화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거나 겁이 많은 반려견은 미용 자체를 위협적인 상황으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미용 후 식욕이 감퇴하거나 특정 공간에 가기를 꺼리거나 심하면 공격성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일부는 미용 도중 기절하기도 하고, 심한 경우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사고도 보고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건강을 위한 미용을 어떻게 스트레스 없이 반려견에게 시행할 수 있을까요. 먼저 미용 전 충분한 사회화 훈련이 선행돼야 합니다. 클리퍼나 드라이어 소리에 익숙해지도록 연습시키고 누군가 몸을 만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야 합니다. 보호자 역할이 매우 중요하겠죠. 둘째, 믿을 수 있는 미용사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려견 성향을 이해하고 갑작스러운 행동에도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숙련된 전문가가 필요하죠. 특히 노령견이나 질병이 있는 반려견은 수의사와 협업이 가능한 미용 시설을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셋째, 미용 주기를 조절합니다. 털이 엉키지 않도록 평소 빗질을 꾸준히 해주면 미용을 너무 자주 하지 않아도 됩니다. 털이 잘 관리된 상태로 미용을 하면 시간이 짧아지고 스트레스도 줄어들죠. 마지막으로 미용 후 보호자의 관찰이 필수입니다. 식욕 및 행동 변화, 피부 트러블 등이 있는지 꼼꼼히 확인하고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즉시 수의사의 진료를 받아야 합니다. 미용 후 귀가한 반려견이 평소와 다른 행동, 예를 들어 구석진 곳에 숨거나 밥을 먹지 않거나 과도하게 피부와 발을 핥거나 분리불안을 보이는 행동을 한다면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평소 빗질 꾸준히 해주면 미용 수월
수의사로서 진료실에서 마주한 많은 미용 사고 사례가 있습니다. 실수로 귀를 베이고, 강압적으로 자세를 취하게 해 다리 통증을 느끼며, 고온의 드라이어에 화상을 입고, 미용 도중 쓰러져 병원에 이송되는 경우까지…. 특히 노령견 또는 지병이 있는 반려견의 경우 장시간 서거나 누운 자세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순환장애, 호흡 곤란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대부분 반려견에 대한 수의학적 지식 없이 미용을 진행하고, 보호자 역시 미용 전 반려견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경우가 드뭅니다.이제는 반려견 미용을 단순히 꾸미기가 아닌 건강 관점에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반려견이 지금 미용이 가능한 상태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미용이 정말 필요한 시점인지도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반려견 성향에 맞춘 미용 방식 또한 고민해야 하죠. 일부 반려견은 전신이 아닌 부분 미용만 진행한 뒤 보호자가 간단한 손질을 병행하는 게 더 나을 수 있습니다.
반려견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아무런 스트레스 없이 건강하고 편안한 모습으로 지내는 순간입니다. 이를 위해 노력하는 보호자의 태도야말로 반려견을 진정한 ‘가족’으로 대하는 첫걸음일 것입니다.
최인영 수의사는… 2003년부터 수의사로 활동한 반려동물 행동학 전문가다. 현재 서울 영등포구 러브펫동물병원 대표원장, 서울시수의사회 이사를 맡고 있으며 대표 저서로 ‘어서 와 반려견은 처음이지?’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