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이후 종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제주 재래 흑돼지는 겨우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제주 한림읍 협재해수욕장 앞에 있는 ‘상록가든’은 제주에서 유일하게 제주 재래 흑돼지고기를 맛볼 수 있는 식당이다. 직접 기른 재래 흑돼지를 도축해 고기로 쓴다. 재래 흑돼지의 살코기는 겉모습만 보면 멧돼지와 비슷하다. 맑은 갈색을 띠는 일반 돼지고기와 달리 붉은 기운이 많이 돈다. 맛을 보면 밀도가 강하고 감칠맛도 좋다. 지방은 기름지지 않고 달콤하다. 세계적으로 그 맛을 인정받는 전남 남원의 흑돼지 버크셔K와 견줘도 밀도와 맛에서 손색이 없다. 문제는 사육기간이 길어 여전히 상업성이 떨어진다는 점. 최근 제주에서는 재래종의 강점을 살리고 비육기간이 짧으며 몸집이 큰 ‘난축맛돈’을 특산품으로 육성 중이다.
제주 애월읍에 있는 ‘부두식당’도 생긴 지 60년 돼가는 재래식당이다. 여든 살이 넘은 노부부가 여전히 음식을 만들고 있다. 어부 출신 할아버지는 이제 셰프가 됐다.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는 옥돔지리로, 애월읍에서 멀지 않은 한림항에서 가져온 옥돔으로 끓인다. 특징은 날것이 아닌 살짝 말린 옥돔을 넣는다는 점. 말리면 수분이 빠져나가 생선 맛이 진해지고 살의 물성이 강해진다.
제주 옥돔국에는 무가 많이 들어가는 편인데, 이 집은 다른 곳에 비해 적은 편이다. 별다른 기교를 부리지 않았는데도 국물 맛이 시원하고 깊다. 심심한 듯 깊은 맛은 사람을 빨아들이는 매력이 있다. 반찬으로 나온 작은 도미 양념찜은 짭조름하고 맛이 제법 강하다. 건건하고 깊은 맛을 내는 국과 강한 맛의 생선찜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제주의 맛있고 소박한 밥상을 완성한다. 제주의 옛 일상식을 상상할 수 있는 맛이다.
청방배추는 경상도에서 즐겨 먹는 채소인데, 제주 청방배추는 모양이 조금 길고 단맛도 더 난다. 생멸치의 감칠맛과 은근한 비린내가 청방배추의 단맛과 어울려 달고 감칠맛 나는 맑은 생선국을 완성한다. 국물의 농도와 맛의 강도가 어떤 국물에 뒤지지 않는다. 제주 사람들의 식재료에 대한 깊은 이해는 돼지고기에서 멸치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굳건하다. 재료가 귀한 환경이 만들어낸 산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