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비 상승으로 도시정비사업 현장 곳곳에서 시공사와 조합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건설사는 자잿값이 크게 올라 적자 수주에 시달린다며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고, 조합 측은 분담금 부담이 커진다며 난색을 표해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도시정비사업 난항은 재건축·재개발 이해관계자는 물론, 부동산시장 전체에 중대한 악재”라며 “주택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5년 내 공급절벽이 닥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도시정비사업 전문가인 김 소장을 9월 15일 만나 공사비 상승이 재건축·재개발과 향후 부동산시장에 끼칠 영향에 대해 자세히 들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 [이상윤]
건설 자잿값 상승에 금융비용 증가까지
아파트 공사비가 어느 정도 올랐나.“1~2년 전만 해도 시공사와 재건축·재개발 조합 간 계약에서 3.3㎡당 공사비는 300만 원대에서 많아도 500만 원대였다. 당시 3.3㎡당 공사비가 500만 원 이상인 단지는 각 건설사의 하이엔드 브랜드가 들어서는 곳이었는데, 이마저도 600만 원을 넘지는 않았다. 반면 최근 시공사가 수주한 재건축·재개발 단지 아파트 공사비는 3.3㎡당 700만 원대에서 800만 원대까지 올랐다. 기존에 시공계약을 맺은 업체도 공사비를 최대한 올려달라고 조합 측에 요구하는 실정이다. 1~2년 새 3.3㎡당 공사비가 2~3배가 된 것이다.”
물가상승이 건설업만의 문제는 아닌데, 공사비 상승이 가파른 이유는 뭔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건설 자잿값이 모두 폭등했다. 최근 철근 가격이 어느 정도 진정되나 싶더니, 유가가 다시 오르고 시멘트 가격도 잡히지 않는 등 자재 수급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금리 국면도 이어지고 있다. 수천 채 규모의 재건축·재개발 현장은 조 단위 프로젝트인 경우가 많아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금리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금융비용 부담도 커졌다.”
공사비 증액을 놓고 시공사와 재건축·재개발 조합 간 갈등도 상당하다고 한다.
“현장 목소리를 들어보면 갈등이 어마어마하다. 몇 달 전에는 경기 성남시 산성구역에서 공사비를 둘러싼 갈등이 있었다. 건설사 컨소시엄이 제시한 공사비가 너무 크다며 조합이 시공계약을 해지한 것이다. 다만 조합이 새로 제시한 가격에 공사를 맡으려는 이른바 1군 건설사를 찾기가 어려워 기존 컨소시엄과 다시 사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갈등은 서울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서대문구 홍제3구역의 경우 시공사가 3.3㎡당 900만 원에 가까운 공사비를 제시하자 조합 측이 반발해 시공계약 해지 얘기가 나오고 있다. 북아현뉴타운에서 규모가 2000채를 넘어 대장구역으로 불리는 2구역도 건설사 컨소시엄과 조합 간 공사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어느 한쪽도 물러서지 않는 강 대 강 대치 국면이 정비사업 현장 곳곳에서 관측되는 상황이다.”
최근 부동산시장은 지역별로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서울은 강남권을 중심으로 전고가에 근접한 실거래가를 기록하고 청약시장도 높은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반면 지방은 일부 핵심 지역을 빼고는 거래 가격 회복세가 더딘 데다, 아파트 미분양 사태도 이어지는 실정이다. 부동산시장의 바로미터가 되는 실거래가와 미래가치에 기대감이 반영된 분양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정비사업은 탄력을 받기 어렵다. 김 소장은 “서울 등 수도권은 공사비로 갈등이 생겨도 정비사업 자체는 결국 진행될 것이다. 문제는 지방인데,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그야말로 답이 없다”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서울과 지방 부동산시장 양극화
“최근 서울 광진구 한 아파트 단지의 청약 경쟁률이 세 자릿수를 기록하는 등 분양시장 분위기가 뜨겁다. 이 아파트가 들어서는 지역은 광진구에서 그리 선호되던 입지가 아닌데도 신축이라는 미래가치가 주목받은 것이다. 공사비 상승으로 분양가가 올라도 서울 신축 아파트 수요는 항상 많다. 서울 시내 정비사업 조합 입장에선 당장 공사비가 버거워도 일반분양가를 높여 어느 정도 부담을 상쇄할 수 있다. 반면 지방 정비사업 현장 상황은 정말 어렵다. 지방에는 아직도 미분양 물건이 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건설 자잿값 상승을 못 이긴 시공사가 공사비를 올려달라고 요구하면 조합이 받아들일 수 있겠나. 수요가 뒷받침 안 되는 지역의 정비사업, 더 나아가 신규 아파트 공급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도시정비사업을 촉진해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는 정부 계획에 차질은 없을까. 국토교통부는 2월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의 주요 내용을 발표했다. 1기 신도시(분당·일산·평촌·중동·산본)와 서울·지방 택지지구 등 노후계획도시 정비사업에서 안전진단을 면제 또는 완화해주거나 용적률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게 뼈대다. 이 같은 정부·여당안이 현재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상정돼 있다. 서울시도 오세훈 시장 취임 후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과 모아타운 사업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각각 도시정비사업에 대한 인허가 절차 및 기간을 간소화하고, 소규모 정비사업을 하나로 묶어 노후 주택가를 정비하는 정책이다.
지금 같은 시장 상황에선 도시정비사업을 통한 주택 공급도 어려울 듯한데.
“우려되는 면이 있다. 최근 공사비 상승 여파로 정비사업의 사업성이 이전과는 전혀 달라졌기 때문이다. 정부 차원에서 확실한 인센티브를 주거나 사업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주지 않으면 정비사업의 원활한 진행은 어려워 보인다.”
각종 인프라가 잘 갖춰진 노후계획도시는 신축 아파트만 들어서면 미래가치가 높아지지 않나.
“사업성이 뒷받침 안 되는 곳은 정비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가령 1기 신도시인 분당과 일산을 비교해보자. 분당은 인근 판교와 위례신도시는 물론, 같은 성남시의 재개발 지역 신축 아파트 가격이 이미 높다. 분당의 입지와 학군, 인프라를 고려하면 신축 아파트의 미래가치는 20억 원을 넘길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반면 일산은 인근 지역에 신축 아파트 분양가가 5억 원대에 그치는 곳이 적잖다. 그래서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는 역세권은 몰라도 상당수 단지는 정비사업 추진이 어려울 것이다.”
서울 강남구 아파트 단지 전경. [뉴스1]
“입지 따른 옥석 가리기 중요”
향후 재건축·재개발 투자에서 주의할 점이 있다면.“최근 공사비 갈등이 생긴 정비사업 현장을 보면 규모가 작다는 공통점이 있다. 공사 현장에 기본적으로 투입해야 하는 고정비용이 있기 때문에 세대수가 적으면 3.3㎡당 공사비가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재건축·재개발 투자는 입지에 따른 옥석 가리기가 특히 중요하다. 위치가 좋고 사업성이 확보된다면 소비자가 선호하는 1군 시공사를 선정해 사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정 공사비를 충족하지 못하는 소규모 사업이라면 메이저 건설사가 참여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아파트 퀄리티가 떨어져 분양가가 낮아지고 조합원 분담금은 높아지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부동산시장에서는 공사비 인상→도시정비사업 난항→주택 공급 감소의 악순환에 따른 공급절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대해 김 소장은 “지금 당장 공급절벽이 오지는 않겠으나 5년 뒤가 문제”라며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현 시점에 착공한 아파트가 준공되기까지 2년 반에서 3년가량 걸린다. 재건축·재개발 단지의 경우 관리처분인가 후 이주철거가 시작되면 착공까지 1~2년, 완공까지 5년 정도 걸린다. 이렇게 지어진 아파트 물량이 나온 후에는 이렇다 할 대규모 신규 공급 계획이 안 보인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부동산시장 상황을 복기해보자. 당시 주택 가격이 급락하면서 아파트 공사 현장이 멈춰 서 한동안 주택 공급이 크게 줄었다. 그 결과 2015년부터 시작된 부동산 가격 상승 국면에서 신축 아파트 값이 오르며 주택 가격을 자극했다. 지금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5년 후 부동산시장에선 신축 아파트의 희소성이 더욱 커질 것이다. 내 집 마련을 원하는 소비자는 다가올 주택 공급절벽에 대비하고, 정부도 근본 대책을 내놔야 한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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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간동아 김우정 기자입니다. 정치, 산업, 부동산 등 여러분이 궁금한 모든 이슈를 취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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