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KB금융지주 회장 최종 후보로 내정된 양종희 부회장이 9월 11일 서울 영등포구 KB국민은행 본점으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남 탓 안 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 나쁜 얘기 안 하는 게 양종희의 최대 강점이다. 하지만 금융정책과 관련된 문제에는 딱 부러지게 자기 생각을 소신 있게 얘기한다. 내공이 있다.”
최근 차기 KB금융지주 회장으로 내정된 양종희 부회장을 잘 아는 주변 인사들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쁜 구설에 오른 적 없는 ‘전형적 뱅커’”라는 게 지인들의 공통된 평이다. 본래 과묵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진중한 스타일이며 윗사람에게 딸랑거리지 않는 성품인 데다, 후계 반열이라 할 수 있는 부회장이 된 후에는 외부인사는 물론, 은행 내부인사와도 골프를 치지 않을 정도로 신중히 처신해왔다는 게 지인들의 전언이다.
9월 8일 KB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는 양종희, 허인 부회장과 김병호 베트남 HD은행 회장 등 3명을 각각 2시간씩 심층 면접했고, 그 결과 양 부회장을 회장 후보자로 최종 내정했다. 8월 윤종규 회장이 올해 11월 임기를 끝내고 용퇴한다고 공표한 지 한 달 만이다. 차기 회장을 내정하기 위해 회추위는 양 부회장을 비롯한 내부 출신 4명과 외부 인사 2명 등 6명의 숏리스트를 발표한 데 이어, 양종희·허인·김병호 3인으로 2차 숏리스트를 추렸다. 회추위는 ‘업무 경험과 전문성’ ‘리더십’ ‘도덕성’ ‘KB금융그룹의 비전과 가치관 공유’ ‘장단기 건전 경영 노력’ 등 5대 자격 요건에 맞는 적격자를 가려내고자 25개 세부 기준으로 각 후보자를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묵하지만 내공 있는 전형적 뱅커”
양 내정자는 1961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고,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했다. 1989년 KB국민은행에 입사해 KB금융 전략기획부장, 전략기획 담당 상무, 부사장을 지낸 대표적인 기획통·재무통이다. 은행장은 지내지 않았지만 KB손해보험 대표, KB금융 보험부문장 등을 거치며 뛰어난 경영 실적을 거둔 게 회장 낙점 배경으로 보인다. 2차 숏리스트 발표 후 그룹 안팎에선 양 내정자와 허인 부회장 간 2파전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금융계의 기존 커리어 문법에서 양 내정자는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 인수를 주도하고 2016~2020년 KB손해보험 대표로서 그룹의 비(非)은행 부문을 성장시킨 기획통이라는 강점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허 부회장은 2017~2021년 KB국민은행장을 3연임한 영업통이라는 점을 인정받았다.회장직을 놓고 경쟁 레이스가 한창일 때 인도네시아 부코핀은행 인수에 따른 손실 문제가 이슈로 떠올랐다. KB국민은행은 2018년 글로벌 금융시장 진출 차원에서 부코핀은행을 인수한 뒤 현재까지 1조8000억 원을 쏟아부었다. 올해 상반기 첫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부코핀은행이 그룹 재무에 악영향을 끼쳐 KB국민은행장으로서 인수를 주도한 허 부회장의 책임론이 불거졌다. 일각에서 허 부회장이 책임져야 한다는 네거티브 풍문이 퍼졌는데, 양 내정자는 주위에 “부코핀은행 인수에 따른 문제는 허 부회장 잘못이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고 한다. 회장 선출 경쟁이 이전투구가 돼선 안 된다는 그의 지론에 따라 불필요한 네거티브를 차단한 것이었다.
“‘외부 낙하산’ 막는 선진국형 KB 인사시스템”
이번 회장 내정을 두고 금융계 안팎에서는 “KB금융그룹의 차기 회장 양성 시스템이 견고하게 작동한 결과”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8월 10일 KB금융의 경영승계 프로그램에 대해 “외양 면에서 과거보다 훨씬 진일보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KB금융지주는 회장 후보 추천의 투명성을 제고하고자 2016년 하반기부터 반기마다 그룹 안팎의 후보군 ‘롱리스트’를 작성해 이사회에 보고하고 있다. 2018년부터는 롱리스트에 선정된 후보들의 역량을 키우고 평가하는 차기 회장 육성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매년 후보자들이 회추위에 경영 현안 관련 주제를 정해 발표한 후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받는 게 뼈대다. 회추위는 독립성을 위해 사외이사들로만 구성되며, 회장 후보 추천 과정에서 그룹 임직원이나 주요 기관주주 등 이해관계자들의 의견도 수렴한다.이 같은 인사시스템이 처음부터 안착한 것은 아니다. KB금융그룹은 2008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후 한동안 정권과 연이 깊은 외부 인사나 관료 출신이 회장에 선임됐다. 정권이 바뀌면 회장이 퇴진 압박을 받거나 금융당국의 징계를 받는 사태가 반복됐다. 급기야 2014년 은행 주전산기 교체 과정에서 그룹 회장과 은행장이 갈등을 빚다가 동반 사퇴하는 이른바 ‘KB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취임한 윤종규 회장은 그간 그룹을 안정화하는 동시에 차기 회장 선출 프로그램을 안착하는 데 힘썼다. 이에 대해 한국기업지배구조원(현 한국ESG기준원) 원장을 지낸 조명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KB금융그룹이 미국 등 금융 선진국에서 들여온 것 같은 형태의 상당히 체계적인 후계자 양성시스템을 도입했다”며 “회장 인선을 앞두고 갑자기 후보군을 물색하거나 ‘외부 낙하산’이 내려오는 게 아니라, 수년 동안 축적된 평가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안정적인 발탁 방식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한편 양 내정자는 9월 11일 회장 후보자로서 첫 출근길 일성(一聲)으로 “재무적 가치에서 1등 금융그룹을 넘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측면에서도 모범이 되겠다”고 말했다. 그는 신용 리스크 관리와 인도네시아 KB부코핀은행 정상화, 전환기 조직 이완 방지 등을 최우선 당면 과제로 꼽았다. KB국민은행 직원들이 고객사 미공개 정보를 악용해 부당이득 127억 원을 챙겼다가 금융당국에 적발된 것과 관련해서는 “내부통제에 디지털 기술을 도입하고 시스템을 체계화할 것”이라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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