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6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1심에서 징역 24년형에 벌금 180억 원을 선고받았다. [뉴시스]
형사재판을 담당한 김세윤 부장판사는 엄한 양형의 주된 이유로 “피고인이 범행을 모두 부인하면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점을 언급했다. ‘반성하지 않는 피고인’에게 엄중한 처벌을 했다는 뜻이다.
피고인이 범행을 자백하지 않으면 ‘반성하지 않는 피고인’이라며 불리하게 처우해온 것은 우리 형사재판 절차의 오랜 전통이다. 형법 제51조는 ‘양형의 조건’이라 해 판사가 형을 선고할 때 참작하는 사항들을 열거하는데, 그중 하나가 ‘범행 후의 정황’이다. 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한다면 범행 후 정황이 좋지 않은 것이니 그 피고인은 엄벌에 처하는 것이 판사의 올바른 태도라는 것이다.
하지만 형법 조문을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어쩌면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형사사법의 발로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형사법정에서 피고인에게 유난히 호통치며 자신의 죄를 똑바로 직시하라고 요구하는 판사가 있다. 심한 권위의식에 빠진 판사일수록 그렇다. 수감된 피고인들은 이런 판사의 성격을 아주 잘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재판에 써먹고, 다른 법정 출두자에게 조언하기도 한다. 해당 판사 앞에서는 절대로 말대꾸하거나, 범행을 축소 혹은 변명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조언이다. 심지어 재판정에서 판사를 향해 소리 높여 문안인사를 외친 뒤 넙죽 큰절을 하는 피고인도 있다. 그러면 판사는 피고인을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죄를 뉘우치고 있구나’라고 단정 짓기도 한다.
헌법 제12조 제2항에 나와 있는 ‘진술거부권’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영미법상의 ‘자기부죄거부의 특권(privilege against self-incrimination)’이 적용된 것으로, 말하지 않는 묵비권뿐 아니라 엉뚱한 말을 하며 범행을 인정하지 않는 권리도 진술거부권에 포함돼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법정에서 피고인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즉 ‘반성하지 않는 피고인’이라 해 불리한 처분을 내리는 것은 헌법 위반이자 기본권 침해라 할 수 있다.
피고인이 된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죄를 실토하지 않는다고 엄벌에 처한 재판은 큰 문제의 여지를 안고 있다. 범행 시인을 내면적 반성과 직결시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 유치한 발상이다. 그리고 억지로 반성을 강요하는 재판은 법원이나 판사가 국민 위에 군림하는 교만한 자세를 보여주는 것으로, 민주국가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다. 새로운 시대를 맞아 사법부가 바꿔야 할 것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