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홍상수 감독 영화 ‘생활의 발견’(2002) 속 대사는 꽤 많은 이에게 회자됐다. 4차 산업혁명을 강조한 최첨단 정보통신기술(ICT) 올림픽과 늙은 괴물들의 이야기를 동시에 한 뉴스에서 접하며, 10여 년 전 영화 대사를 곱씹는 요즘이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신작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 역시 괴물을 소재로 삼았지만 특이하게도 로맨스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영화 배경은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정점에 달하던 1960년대. 언어장애를 가진 엘라이자(샐리 호킨스 분)가 청소부로 일하는 미국 항공우주센터 실험실에 온몸이 비늘인 괴생명체 인어인간(더그 존스 분)이 수조에 갇힌 채 들어온다. 실험실 보안책임자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 분)는 그를 해부해 우주개발에 이용하려 하지만 괴생명체의 신비한 모습에 이끌린 엘라이자는 그와 교감하게 되고 마침내 사랑에 빠진다(이하 스포일러 있음).
영화 ‘헬보이’(2004), ‘판의 미로’(2006), ‘퍼시픽 림’(2013)으로 잘 알려진 멕시코 출신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는 지하세계나 괴물 등을 소재로 즐겨 다루며 암울하면서도 독창적인 세계관을 구축했다. 그런 그가 그려낸 러브스토리는 어떨까.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와 사랑에 빠지는 로맨스물은 ‘미녀와 야수’ 이래 더러 있었지만, ‘셰이프 오브 워터’는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아가미 호흡을 하는 양서류와 인간 여성의 사랑을 그린 이 작품에서 감독은 이들의 성적인 관계를 암시한다. 이들의 사랑은 신체적 관계를 통해 더욱 깊어진다.
다수 작품에서 인간세계에 등장한 괴생명체는 인간을 위협하는 괴물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인간의 괴물성을 보여주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 영화는 후자에 해당한다. 영화는 끊임없이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를 묻는다. 장애를 가진 엘라이자는 인어인간에 대해 “내가 불완전한 존재라는 걸 모르는 눈빛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봐준다”며 “나도 그 사람처럼 입을 뻥긋거리고 소리를 못 낸다. 그럼 나도 괴물이냐”고 반문한다.
반면 성공욕에 불타는 백인 남성 스트릭랜드는 말 못 하는 청소부 엘라이자와 그의 흑인 친구 젤다(옥타비아 스펜서 분)에게 “신이 있다면 당신보다 내 모습에 더 가깝게 생겼다”고 말하는 인종차별주의자다. 그는 인어인간이 뛰어난 지능과 교감능력을 갖췄다는 보고를 묵살한 채 이 생명체를 해부해 자신의 승진 도구로 이용하려 한다.
영화는 스트릭랜드에 맞서 인어인간을 탈출시키고 살려내려는 엘라이자와 그의 동료들을 통해 사회적 약자들의 연대도 부각한다. 흑인의 음식점 출입도 제한되던 1960년대 여성, 장애인, 유색인종, 동성애자인 엘라이자와 그의 동료들은 어쩌면 사회적 괴생명체 아니었을까. 인어인간을 탈출시키는 데 도움을 요청하며 엘라이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면 우리도 인간이 아니에요.”
샐리 호킨스를 비롯한 배우들의 호연과 아름다운 음악, 섬세한 연출이 어우러져 완벽한 동화 한 편이 완성됐다. 올해 미국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13개(최다)부문 후보에 올랐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악인 스트릭랜드를 비롯한 영화 속 진짜 괴물들이 미래를 낙관하고 힘을 추앙한다는 점이었다. 반면, 엘라이자나 그의 동료들은 어딘지 뒤처진 존재였다. 인간다움은 미래의 힘이 아니라 우리가 흘려보낸 누추한 과거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