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4일 화재로 사상자 31명이 발생한 경기 화성의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이튿날 수습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지호영 기자]
6월 26일 낮 12시 경기 화성시청 모두누림센터 2층에 마련된 ‘리튬전지 제조공장 화재 참사’ 유족 대기실에서 통곡 소리가 흘러나왔다. 대기실에는 30대 여성 사망자의 어머니와 이모 등 친인척 9명이 있었다. 유족들은 이날 새벽 3시 사망자 신원확인을 위한 검체 체취를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망자의 어머니 A 씨는 창밖을 바라보고 앉은 채 통화하며 목 놓아 울었다. A 씨의 동생이자 사망자의 이모인 B 씨는 땅바닥을 보고 앉아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굳게 닫힌 대기실 문밖으로 흘러나온 울음소리가 50m 거리 복도 끝에서도 들렸다.
“한번은 터지는 소리 나서 보니 불씨 붙었다더라”
6월 24일 화재 발생 1시간 후인 11시 30분 아리셀 공장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독자 제공]
A 씨는 사고 전 딸로부터 공장이 위험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A 씨는 “한번은 일하던 도중 터지는 소리가 나서 들여다보니 살짝 불씨가 붙었다고 하더라. 그때는 불씨를 잘 꺼서 살짝 연기만 나고 말았다고 한다”며 “그 후 회사로부터 불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내용을 전달받은 것이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날 유족 대기실에는 20명 넘는 유가족이 머물고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취재를 거부하고 자리를 피했다. 오후 5시가 지나자 귀가하는 유가족도 있었다.
6월 24일 오전 10시 31분쯤 화성 전곡산업단지에 있는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23명(한국인 5명·중국인 17명·라오스인 1명)이 사망하고 8명이 다쳤다. 이날 화재는 공장 3동 2층에 보관한 리튬전지가 연쇄 폭발을 일으켜 발생했다. 리튬 특성상 순식간에 1000도 이상 고온에 도달하는 데다, 일단 불이 붙으면 다량의 이산화탄소와 일산화탄소, 수소가스 등 유독가스가 발생하기 때문에 피해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시신 부검 결과 사망자 모두 질식사했다는 구두 소견을 수사당국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간동아 취재팀이 화재 이튿날인 6월 25일 오후 2시 아리셀 공장을 찾았을 때도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전날 발생한 화재는 이날 오전 8시 48분이 돼서야 완전히 꺼졌다. 경찰이 설치한 폴리스 라인 너머로 전소된 공장 건물이 보였다. 지붕은 녹아내려 울퉁불퉁했고 일부는 건물 벽면으로 맥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건물 뼈대인 주황색 철근 콘크리트도 노출돼 있었으며, 근처 바닥에는 타버린 잔해가 즐비했다.
이날 화재 현장을 찾은 유가족은 “계단 근처에 폭발물인 배터리를 쌓아놓으면 어떻게 하나. 다른 안전문이라도 있었으면 이런 피해가 나진 않았다”면서 “신원확인이 안 돼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아리셀 공장 앞에서 주간동아 취재진과 만난 유족 C 씨는 이번 화재로 30대 딸을 잃었다. 화재 현장에 오기에 앞서 딸 시신이라도 확인하려고 희생자들이 안치된 장례식장을 찾았지만 여의치 않았다. C 씨는 “한 장례식장에 있는 시신 4구 중 한 구가 목걸이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며 “딸이 항상 하는 목걸이를 내가 아니까, 목걸이를 한 시신을 확인하려고 장례식장에 갔다. 그런데 확인시켜주지 않았고 시신을 보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생존자들 “복도에 같이 있었는데…” 참담함 토로
6월 24일 아리셀 공장 화재로 숨진 한 희생자의 자동차가 이튿날 견인되고 있다. [임경진 기자]
아리셀 공장 인근 다른 업체 직원들과 자영업자들은 화재 당시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리셀 공장과 약 600m 떨어진 곳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신모 씨는 당일 10시 30분쯤부터 2시간 가까이 폭발음이 들렸다고 했다. 신 씨는 “하늘이 연기로 자욱했고 불빛도 번쩍번쩍했다. 식당 앞 공장 사람들이 다 나와 볼 정도였다”고 말했다. 화재 현장에서 300m 떨어진 공장에는 파편도 튀었다. 근처 한 제조업체 직원은 “비명도 들리고, 온 직원이 대피하느라 난리였다”고 전했다. 200m 떨어진 또 다른 공장 직원도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도 뜨거운 기운이 느껴질 정도였다”며 고개를 저었다. 근처 편의점 사장은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 다 이 동네 친한 이들인데 가슴이 아프다”고 밝혔다.
전곡산업단지 종사자들은 이번 참사가 화재 규모에 비해 인명 피해가 컸다고 했다. 아리셀 공장 인근 업체 한 직원은 “보통 산업현장에서 ‘대규모 화재’라고 하면 불길이 다른 공장으로 옮겨붙는 경우를 말한다. 이번엔 건물 한 개 동만 탔으니, 불길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화재에 비해 너무나 많은 사람이 숨지고 다쳤다는 것. 이곳 산업단지에서 10년 동안 일한 한 근로자는 “이 정도로 사람이 많이 죽은 건 처음 있는 일”이라며 혀를 찼다.
병원으로 후송된 생존자들은 “복도에 같이 있었는데…”라며 희생된 동료들을 떠올리고는 참담함 심정을 토로했다. 6월 25일 오후 4시 30분 화성 시내 한 병원 입원실에 모인 아리셀 공장 근로자 3명은 서로 다친 부위를 확인한 뒤 “너도 그렇게 다쳤냐”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들은 한국인 사망자들의 동료다. 화재 당시 공장 2층에 있던 이들은 창문으로 뛰어내려 목숨을 구했다.
입원실 침대에 누워 있던 50대 D 씨는 “사망한 ◯◯◯가 복도에 있는 것을 보고 내가 ‘사무실로 들어가자’고 그랬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양쪽 다리와 허리가 모두 골절돼 하반신 전체에 붕대를 감은 상태였는데, 상체를 옆으로 돌리려다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찌푸리기도 했다. D 씨는 “직원 몇 명을 사무실 2층 창문으로 대피시키고 나도 뛰어내리려 했지만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대각선 쪽으로 바닥이 보여 무작정 뛰어내렸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D 씨의 아내는 “양발 안쪽과 바깥쪽 복숭아뼈가 다 으스러져 어제 남편이 밤새 통증 때문에 한숨도 자지 못했는데 의사가 부기가 빠져야 수술할 수 있다고 했다. 아직 아리셀 측으로부터 연락이 온 것은 없다”고 말했다. D 씨의 상태를 확인하려고 입원실을 찾은 한 동료는 공장이 폭발할 당시 같은 층 사무실에 있었다. 그는 “폭발 소리를 듣고 상황을 살피려고 곧장 사무실에서 나왔는데 20~30초 만에 앞이 안 보였다. 2층 창문으로 뛰어내리면서 실외기 위로 떨어져 한쪽 발에 실금이 갔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사망한 ◯◯◯도 복도에 같이 있었다. 장례식장과 회사를 오가며 사망자 가족을 만나고 왔는데 마음이 많이 안 좋다”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리셀, 참사 이틀 전에도 화재
현재까지 관계당국 수사와 유가족 증언 등을 종합하면 이번 화재는 미리 예방할 수 있었던 인재(人災)로 보인다. 아리셀 공장에 화재가 난 것은 이번 참사가 처음은 아니다. 이틀 전인 6월 22일에도 공장 2동에 불이 난 것이다. 한 유가족은 “딸이 며칠 전에도 공장에 불이 났다고 했다. 직원 한 명이 소화기를 들었는데 손에 화상을 입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업체 측도 참사 이틀 전 또 다른 화재가 발생한 사실을 인정했다. 아리셀과 모기업 에스코넥 대표를 겸하고 있는 박순관 대표는 6월 25일 오후 2시 화재 현장 앞에서 사과문을 낭독한 후 취재진과 질의응답에서 “22일 토요일 오후 아리셀 공장 2동 1층에서 화재가 났다”고 밝혔다. 당시 화재에 대해 박 대표는 “당시 작업자들이 소화기로 자체 진화해 마무리됐고 화재 규모나 종류는 이번 화재 원인과는 다르다”라며 “쉬쉬한 것은 아니고, 작업을 재개해도 된다고 판단해 (소방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조선호 경기도소방재난본부장은 6월 25일 언론 브리핑에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22일 화재에 대해서도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리셀은 참사 발생 3개월 전 이미 소방당국으로부터 화재가 난 공장 3동이 ‘다수 인명 피해 발생 우려 지역’이라는 통보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소방당국은 3월 “제품 생산시설의 급격한 연소로 인한 인명 피해 우려” “상황 발생 시 급격한 연소로 인한 연소 확대 우려” 등을 지적하며 아리셀에 위험물을 철저히 관리하라고 지도했다. 또한 참사 3주 전쯤에는 공장을 방문해 화재 예방 컨설팅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아리셀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결국 6월 24일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이 업체는 2019년 리튬을 허가량보다 23배 초과 보관하다가 적발돼 벌금 처분을 받았으며, 2020년 소방시설 작동 불량이 밝혀져 시정명령을 받은 적도 있다.
인근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영세 제조업체 특성상 자체 진화하는 소규모 화재가 있을 수밖에 없다. 화재가 일어나도 쉬쉬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만난 전곡산업단지 종사자들은 화재 환경을 조성해 대피하는 훈련은 1년에 한두 번뿐이며, 안전교육은 대부분 사이버 강의 형태로 이뤄진다고 했다. 중소기업에는 파견직 외국인 노동자가 많지만 이들을 위한 맞춤형 안전교육이나 매뉴얼도 부족한 실태다. 전곡산업단지의 한 근로자는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한 번씩 대피로를 확인해주는 식이지, 자주 교육시키는 회사는 별로 없다. 아리셀에도 안전 매뉴얼이 있겠지만 실제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이번 아리셀 공장 화재 발생 직후 인근 업체들의 대처도 제각각이었다. 한 업체는 화재 발생 직후 근처 공원으로 근로자들을 모두 대피시켰다. 불길이 번질 수 있으니 공장 내에 주차된 차도 다른 곳으로 이동시켰다. 반면 또 다른 업체는 화재가 난 와중에도 공장을 계속 가동했다. “불길이 우리 회사와 반대 방향이어서 공장 가동에 무리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는 게 소속 근로자의 말이다.
“씨랜드 참사 후 바뀐 게 없다”
박순관 대표 등 아리셀 관계자들이 6월 25일 공장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지호영 기자]
이번 참사로 숨진 중국 국적 희생자 17명 모두 중국동포로 알려졌다. 동포 커뮤니티에 따르면 희생자 3명은 사촌지간으로 전해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 이번 화재 후 중국동포 사이에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틱톡 계정을 통해 사망자 명단이 돌고 있다. 일부 유가족은 이 명단을 보고 가족의 사망 소식을 뒤늦게 파악했다고 한다. 김호림 전국동포총연합회 대표는 “중국에 있는 유가족이 빨리 한국으로 들어와야 하는데 비자 문제를 겪는가 하면, 입국 후에도 한국 상황을 잘 모르니 당황해하고 있다”면서 “무엇보다 신원확인이 빨리 이뤄져 장례를 잘 치르고, 화재가 일어난 공장에 대한 조사도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화재 원인 및 책임 규명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경기남부경찰청 아리셀화재사고수습본부는 6월 26일 업무상 과실치사상 및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아리셀 등 업체 3곳을 압수수색했다. 하루 전 25일에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박순관 대표와 공장 관계자, 인력공급업체 관계자 등 5명을 형사 입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