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울진군 신한울 원자력발전소 1호기. [동아DB]
한 개인투자자가 9월 14일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 네이버 종목토론방에 남긴 글이다. 대세 종목으로 분류되는 ‘태조이방원’(태양광·조선·2차전지·방산·원자력발전) 가운데 원전이 제몫을 못 하고 있다며 꼬집은 것이다. 최근 원전주 주가가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불만을 토로하는 개인투자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한동안 원전 관련 모멘텀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원전주 투자자들은 다시 웃을 수 있을까.
원전 랠리 찬물 끼얹은 블록딜
한국수력원자력이 약 3조 원 규모의 이집트 엘다바 원전 건설 계약을 따내면서 원전 산업에 훈풍이 불고 있지만 투자자들은 불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주사 두산이 8월 31일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로 두산에너지빌리티 보통주 2854만 주(약 5722억 원)를 처분하면서 투자 심리에 찬물을 끼얹은 탓이다. 블록딜에 앞서 회사 임원들이 보유 주식을 대거 매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가 하락을 부채질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9월 15일 기준 주가가 지난달 대비 14% 하락한 상태다. 대장주인 두산에너빌리티 주가가 하락하면서 원전 스몰캡(중소형주) 기업들의 주가도 연이어 하락했다.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에 이어 13년 만에 원전 수출에 성공하면서 시장 기대가 커진 결과로 풀이된다. 최상목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은 8월 25일 브리핑에서 이집트 원전 수출 소식을 전하며 “올해를 원전 수출 원년으로 삼아 원전을 국가 핵심 산업으로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관섭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을 신임 대통령정책기획수석비서관으로 임명하는 등 원전 수출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원전업계 전망은 나쁘지 않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력 확보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원전 카드를 꺼내 들고 있다. 독일은 올해 원자로 3개의 가동을 멈출 계획이었으나 천연가스 가격 상승으로 에너지 위기를 겪으면서 2개는 가동을 이어가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벨기에도 영구 정지하기로 결정했던 원전의 추가 운전을 승인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하원은 9월 1일(현지 시간) 디아블로 캐니언 원전 2기의 가동을 5년간 연장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며 전력 공급 문제에 대응 중이다.
원전주 투자 주의보
원전이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되면서 각종 지원이 늘어나는 점 역시 긍정적 요인이다. 8월 16일 발효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원전을 청정에너지로 규정하고 있다. 원전 사업자는 2024년부터 메가와트시(㎿h)당 15달러의 세액공제를 받는다. 유럽연합(EU)도 7월 원전을 녹색분류체계(Taxonomy·택소노미)에 포함하기로 결정했다. 택소노미는 온실가스 감축과 탄소중립을 위해 필요한 경제활동을 분류한 체계로, 1조 유로(약 1389조 원) 규모의 그린딜 예산을 지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에 상대적으로 재정 상황이 좋지 않은 동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원전 설치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체코와 폴란드 등이 잠재적인 수주 풀로 분류된다. 원전업계 한 관계자는 “각국의 전력 수급 계획에 따라 원전 산업이 흘러가는 상황이라 에너지 수급 방향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다만 잇따른 호재에도 원전주 투자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원전주가 ‘테마주’로 분류되면서 최근 주가가 급등한 탓이다. 한국거래소는 8월 24일 두산에너빌리티를 ‘스팸 관여 과다종목’으로 지정했다. 주식 관련 스팸문자 신고와 주가, 거래량이 동시에 급증해 투자에 유의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원자력 산업에 대한 투자 심리가 확대되면서 밸류에이션도 높게 형성됐다. 관련 기업 중 흑자를 내고 있는 두산에너빌리티와 한전기술마저 9월 15일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이 각각 134, 145배에 달한다. 코스피 평균 PER는 9.5배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당장 새로운 상승 동력이 보이지 않는 것 역시 주의해야 할 점이라고 지적한다. 문경원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원자력 관련 종목들의 주가 상승을 이끌어왔던 큼직한 이벤트가 대부분 마무리돼 12월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발표되기 전까지 눈에 띄는 이벤트는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문 연구원은 이어 “본격적인 상승 구간에 접어들려면 해외 수주가 구체화돼야 하지만, 가장 가시적인 체코 프로젝트조차 2024년 사업자 선정이 예상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10년 전엔 한국이 앞서나갔는데…”
대형원전은 건설 과정에서 대규모 금융 조달이 요구된다. 현장에서 장기간 공사가 진행되는 탓에 일정이 지연되면 막대한 비용이 발생한다.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원전 가동률을 높게 유지해야 하는 만큼 전력 수요에도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반면 SMR는 공장에서 모듈을 생산하는 덕에 공기가 대형원전 대비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 공기가 줄어들면서 발전 단가가 하락하고, 소형인 만큼 출력을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백원필 한국원자력학회장은 “SMR는 출력 조절이 용이한 만큼 태양광과 풍력처럼 변동성이 큰 에너지 공급원에 대한 훌륭한 보완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SMR 분야에서 앞서나가는 기업은 미국 뉴스케일파워다. 2020년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업계 최초로 표준설계 인증을 받아 산업을 선도하고 있다. 주식시장 티커 종목명 역시 SMR다. 투자자들의 관심도 뜨겁다. 5월 3일 상장 이후 9월 14일(현지 시간)까지 주가가 30.9% 올랐다. 같은 기간 나스닥 지수가 5.0% 하락한 것과 대비된다. 뉴스케일파워는 향후 2년간 미국, 폴란드, 불가리아, 영국, 루마니아 등지에서 SMR 건설에 나설 계획이다.
SMR는 아직 기술표준이 정립되지 않아 다양한 업체가 경쟁하는 상황이다. 수익성 확보를 위해서는 대량생산이 요구되는 만큼 향후 소수의 SMR가 시장을 점유할 전망이다. 두산에너빌리티 등 국내 기업들도 SMR 산업에 뛰어든 상태다. 뉴스케일파워에 1억380만 달러(약 1445억7000만 원) 상당을 투자해 수조 원 규모의 기자재 공급권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올해 하반기 SMR에 들어가는 대형 주단 소재의 제작을 시작하고, 내년 하반기 본격적으로 본 제품 제작에 돌입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원전 산업은 민관 협동으로 진행되는 만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백원필 학회장은 “10년 전만 해도 한국이 SMR 제작에서 앞서나갔는데 지난 정부 때 원전 설치에 제약이 생기면서 미국에 뒤처졌다”고 말했다. 백 회장은 이어 “원전 관련 민간 기업들이 일감을 맡을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조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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