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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누리에 분노, 첫 단추 잘못 끼워

무상복지 경쟁의 끝판왕 ‘누리과정’…해마다 반복되는 예산 떠넘기기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온 누리에 분노, 첫 단추 잘못 끼워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도입된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이 결국 서민들의 ‘분노 촉발제’로 전락하고 말았다. 누리과정은 2010년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이 내건 무상급식 공약에 이어 무상복지가 정치권의 화두가 되던 시기에 태어났다. 2011년 이명박 정부는 야권의 무상급식에 맞설 무기로 누리과정이라는 이름의 무상보육을 들고나왔다. 당시 정부는 “내년부터 만 5세 모든 아동이 어떤 교육기관에 다니든 똑같이 질 높은 교육을 받게 하겠다”고 발표

온 누리에 분노, 첫 단추 잘못 끼워

누리과정 예산 편성과 관련해 여야 간 입장이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2015년 12월 31일 수원시 경기도의회 본회의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새누리당 의원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동아DB

했다. 누리과정이란 공통 교육과정을 만들어 어린이집과 유치원 과정을 하나로 통합하고, 부모들의 교육비 부담도 줄여주겠다는 취지였다.
이로써 2012년 만 5세 아동을 대상으로 누리과정이 처음으로 시도됐다. 이후 정부는 한 발 더 나아가 2013년부터 누리과정을 만 3~4세까지 확대 적용하기로 했고, 2012년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선거(대선) 후보는 만 3~5세뿐 아니라 0~2세에게도 보육료를 지원하는 ‘0~5세 보육 및 유아교육 국가완전책임제’를 공약으로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했다. 최근 야당이 “무상보육은 박근혜 정부 공약이니 누리과정 예산도 전부 책임져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 같은 배경 때문이다.



문제는 ‘교부금’

문제는 정부가 누리과정을 도입하면서 재원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부금)으로 부담하게 한 데서 시작됐다. 정부는 매년 내국세 수입의 20.27%를 교부금 명목으로 각 교육청에 배부하고 있는데, 시·도교육청 처지에선 수입이 일정하게 정해진 상태에서 중앙정부 정책에 따라 연간 4조 원 규모의 누리과정 예산을 집행해야 한다는 부담을 떠안게 됐다. 이 때문에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싼 중앙정부와 시·도교육청의 갈등은 매년 반복되고 있다. 2015년에도 일부 교육청에서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자 정부가 국고에서 5064억 원을 우회 지원하고, 지방채로 약 1조 원을 발행해 누리과정 예산을 충당했다.
결국 지방자치단체의 빚은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정부는 누리과정에 소요되는 4조 원을 모두 지원했다고 하지만, 원래 정해진 교부금 총액을 배부한 것이지 누리과정을 위해 별도로 재원을 지원한 것은 아니라는 게 교육청 측 주장이다. 더욱이 어린이집은 교육부 소속이 아닌 보건복지부 소속임에도 교육청 예산으로 누리과정 예산을 집행하게 해 부담이 더욱 가중됐다는 것. 반면 정부는 시종일관 돈은 줄 만큼 줬다고 맞서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와 교육청, 둘 중 누가 누리과정 예산을 책임지는 게 옳을까.





“밀어붙이기식 관행, 의사결정 체계 위협”  

이에 대해 김병준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전 청와대 정책실장)는 당연히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는 “얼마 전 강형기 충북대 교수가 퀴즈를 하나 냈다. ‘시골 동네 노인들이 돈이 없어서 점심을 먹지 못하고 있자 지나가던 서울 사람이 자장면을 시켰다. 잠시 후 배달원이 와서 자장면을 나눠줬는데, 이 경우 자장면 값은 누가 내야 하는가’였다. 정답은 누가 생각해도 서울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배달원에게 자장면 값을 내라고 하는 형국”이라고 꼬집었다. 중앙정부에서 만든 정책은 그 비용도 중앙정부에서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교부금은 인건비와 시설관리비 등 기본적인 지출을 감당하는 비용일 뿐 아니라, 그 돈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지는 엄연히 교육청 재량에 달렸다. 그럼에도 현재 정부는 교부금 시행령에 따라 누리과정 비용은 시·도교육청이 내도록 돼 있다는 법령을 근거로 대며 교육청에 강제력을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의문을 제기한다. 과연 누리과정 예산 편성에 대해 지방의회를 포함한 지방 쪽 의사결정 주체들의 동의를 구했느냐는 것이다. 김 교수는 “기껏해야 교육감들과 협의한 정도다. 누리과정을 시행하면 지방정부가 떠안게 될 재정적 스트레스가 얼마나 될지 설명도, 상의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법이니 따르라고 강압하는 꼴이다. 정부는 교육청에게 충분히 돈을 줬다 하고, 올해 담뱃세 등 세수가 늘어나면서 지방자치단체로 들어오는 돈도 늘어날 전망이긴 하지만 ‘자장면 배달원’의 수입이 늘었다고 자장면 값을 낼 의무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문제는 이러한 중앙정부의 밀어붙이기식 행정 절차가 관행이 되면 앞으로도 국가가 정한 의무사업이 지방자치단체및 시·도교육청의 행정과 재정을 또다시 흔들 수도 있다는 점이다. 종국에는 지방자치와 교육자치는 허울만 남고 실

온 누리에 분노, 첫 단추 잘못 끼워

Shutterstock

체는 사라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국가 전체의 의사결정 체계 또한 그만큼 훼손될 수밖에 없다. 앞서가는 모든 국가가 분권과 자치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우리 정부의 행태는 참으로 부끄럽다”고 개탄했다.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 상임의장을 맡고 있는 김형기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 또한 복지 분권화에 맞춰 재정 부담은 중앙정부가, 집행은 지방정부가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주요 선진국의 기본 원칙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프랑스나 독일 등은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사무를 이양할 때 재원도 함께 주도록 헌법에 아예 못 박아놓았다. 그렇지 않으면 명백한 위헌”이라고 강조했다.
더욱 한심스러운 건 정부가 ‘소송’을 운운하며 교육청을 압박하는 것 외에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1월 8일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주제로 이뤄진 누리과정 예산 편성 관련 브리핑에서 교육부 관계자들은 “해결책이 무엇이냐”고 추궁하는 기자들의 질문에 “사실상 당장의 대책은 없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은택 ‘동아일보’ 교육부 출입 기자는 “정부는 누리과정 예산 편성의 책임이 교육청에 있고 예산도 넉넉하니 교육청이 서둘러 예산 편성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만 할 뿐 이렇다 할 만한 합의점은 제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16.01.20 1022호 (p30~31)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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