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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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 70% 재건’ 대선 공약 아직도 믿습니까?

연봉 8500만 원에서 3450만 원까지 정책 따라 고무줄 기준…추락하는 빈곤층 어찌할꼬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5-03-27 16: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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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산층 70% 재건’ 대선 공약 아직도 믿습니까?

    2월 1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긴급 정책조정강화회의에 참석하는 관료들 모습. 이 자리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앞줄 왼쪽)과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연말정산 파동에 대해 대국민사과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대통령선거(대선)에서 ‘중산층 70% 재건’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했다. 통계청은 지난해 우리나라 중산층 비율이 69.7%라고 밝혔다. 지표상으로는 중산층 문제가 이미 다 해결된 듯 보인다. 문제는 이때 통계청이 중산층으로 본 가구소득이 연 1900만~5700만 원이라는 점이다.

    정부는 2013년 세제를 개편하며 ‘연봉 5500만 원’을 사실상 중산층의 상한으로 삼았다. 이 이상 버는 국민은 정부 기준에서 보면 고소득자다. 반면 국민은 연봉 8500만 원은 받아야 중산층이라고 여긴다(25쪽 상자기사 참조).

    정부도 한때 중산층 기준을 이보다 높게 잡은 적이 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때다. 당시 정부가 중산층의 세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밝힌 대상이 연간 과세표준액 8800만 원 이하 소득자였다. 과세표준액은 근로자 총급여에서 소득공제 등의 액수를 제외한 것으로, 이들의 실제 연소득은 억대가 넘는다. 부자감세 기조에 대한 여론의 비판을 막으려고 중산층 범위를 위로 확대한 셈이다.

    반면 ‘증세 없는 복지’를 위해 세수 확대가 필요한 박근혜 정부는 2013년 세제 개편 당시 ‘연봉 3450만 원’을 중산층 기준으로 내세워 중산층 범위를 아래로 넓히려 했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대폭 올린 기준이 현행 5500만 원이다.

    통계청 자료 믿을 수 없다는 기재부



    ‘중산층 70% 재건’ 대선 공약 아직도 믿습니까?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한 자영업체가 폐업세일을 하고 있다. 상당수 자영업자가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입을 벌고, 창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닫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산층 기준은 이후에도 수시로 바뀌어 가입자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금융상품 ‘재형저축’ 가입 자격은 총급여 연 5000만 원 이하 근로자다. 반면 재형저축과 한 달 사이로 발표된 ‘4·1부동산대책’의 생애최초주택구입자금 대출 신청 자격은 연소득 6000만 원(부부합산)까지였다. 이 기준은 두 달 뒤 연소득 7000만 원(부부합산) 이하로 올라갔다. 정부는 올해 월세 세액공제 제도를 도입하면서도 중산층 기준을 총급여 연 7000만 원으로 삼았다. 정책적 필요에 따라 중산층 기준이 널을 뛴다.

    정부가 중산층 산정 자료로 삼는 통계에 대해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2월 13일 통계청은 우리 국민의 소득과 지출, 조세부담액 등을 정리한 ‘2014년 가계 동향’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전체 국민을 다섯 그룹으로 나눌 경우 소득 상위 40~60%에 해당하는 중간층(3분위)은 지난해 세금 증가율이 18.8%에 달했다. 반면 소득 상위 20%인 고소득층(5분위)의 세금 부담은 전년에 비해 3%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 내용이 알려진 뒤 ‘중산층 세금폭탄’에 대한 여론의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자 기획재정부는 사흘 뒤 “중간층의 세 부담이 고소득층보다 빨리 증가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는 해명 자료를 냈다. “통계청 가계 동향 조사는 8700가구를 뽑아서 하는 표본조사로, 소득이나 세금처럼 응답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낙성대 경제연구소 소장)도 “이런 한계 때문에 통계청 자료의 신뢰성을 의심하는 이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부가 중산층 산정 등 각종 정책 수립 과정에서 사용하는 게 바로 그 통계청 자료다.

    정부는 2013년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노동연구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이 참여하는 태스크포스를 꾸려 중산층 소득 기준을 재편하는 등 관련 연구를 한다고 밝혔으나 아직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실이 ‘중산층 복원을 위한 중점 정책 및 시행력 제고방안 도출’에 대한 연구용역 공고를 내는 등 연구는 아직 진행형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산층 70%’ 통계와 무관하게 국민은 ‘먹고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친다.

    임일섭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금융분석실장은 현재 우리 국민의 살림살이가 좋지 않은 근거로 가계저축률 지표를 들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분석 결과 우리나라의 연평균 가계저축률은 1990년대 16.1%에서 2000년대 5.8%로 급락했다. 반면 같은 기간 기업저축률은 11.9%에서 15.9%로 상승했다. 임 실장은 “가계소득의 연평균 증가율은 1990년대 12.7%에서 2000년대에는 6.1%로 낮아진 반면, 기업소득은 같은 기간 4.4%에서 25.2%로 크게 늘었다. 경제 성장을 통해 기업에서 창출된 소득이 가계 부문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부채는 급증하고 있다. KDI가 지난해 발표한 ‘가계부채의 연령별 구성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말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약 80%로 금융위기 전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차이가 있다면 한국은 가구주가 50대인 가구가 전체 가계부채의 35%를 보유했다는 점이다. 미국(22%)보다 훨씬 높은 비율이다.

    50대 가계부채 급증, 위험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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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섭 KDI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50대 가구주 가운데 상당수는 향후 소득이 급감할 수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전체 주택담보대출 중 계약기간이 3년 이하인 비율이 18%, 만기 일시상환 계약 방식이 30%를 차지한다. 가구주가 은퇴 연령이 가까워지는 상황에서 대출금 상환이 다가오면 상대적으로 가계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가계 유지를 위해 앞다퉈 자영업에 뛰어드는 것도 우리 경제의 부담 요소다. 2013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치킨집이 한국 경제를 위협한다’는 내용의 기사에서 한국 인구 1000명당 음식점 수가 12개로 미국의 6배, 일본의 2배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러한 자영업자가 잇따라 파산하면서 한국의 가계부채가 날로 늘고 있다는 게 기사의 핵심이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KB카드 개인사업자 가맹점을 대상으로 치킨집 현황을 분석해 만든 ‘국내 치킨 비즈니스 현황 분석’에서도 자영업의 위기는 선명히 드러난다. 치킨집 창업 후 3년 이내에 휴·폐업하는 비율이 절반(49.2%)에 이르고 창업 후 10년간 생존할 확률은 20.5%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가게를 유지한다 해도 전망이 밝은 건 아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01~2013년 통계청 자료를 토대로 연령대별 소득 및 고용 현황을 분석한 결과 자영업자 평균소득은 임금근로자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게다가 양자의 소득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2001년 40대 자영업자의 평균소득은 2877만 원으로 임금근로자(4170만 원)의 68% 수준이었으나, 2013년에는 52% 수준(임금근로자 5170만 원, 자영업자 2725만 원)으로 떨어졌다(그래프 참조). 우리나라 자영업 인구는 580만 명 수준. 4인 가구를 기준으로 하면 약 2300만 명이 관여돼 있다.

    한국은 ‘높은 불평등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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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상황에서 소득 불평등은 심화하고 있다. 국민대통합위원회가 2014년 10월 펴낸 ‘국민통합 이슈모니터링’에 따르면, 2012년 현재 우리나라의 소득 상위 20% 계층은 하위 20%보다 5.5배 더 많은 가처분소득을 갖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소득 격차도 커지고 있다. 시장소득 기준 하위 20%(1분위)의 소득이 1990년부터 2012년 사이 43.1% 증가한 반면, 상위 20%(5분위)의 소득은 109.4% 늘어 격차가 2배가 넘었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가 국세청 소득세 자료 등을 바탕으로 작성한 논문 ‘한국의 고소득층(Top Incomes in Korea, 1933-2010)’에서도 소득 격차 확대 추세가 확인된다. 김 교수에 따르면 국민 상위 10%의 소득이 전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95년 29.2%에서 2000년 35.4%, 2012년 44.9%로 증가했다. ‘21세기 자본’의 저자인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는 상위 10%가 전체 국민소득의 20% 이상을 벌어들이는 국가를 ‘낮은 불평등’, 25% 이상을 벌면 ‘중간 정도의 불평등’, 35%가 넘어서면 ‘높은 불평등’으로 분류한 바 있다. 상위 10%가 전체 국민소득의 45% 이상을 벌어들이는 국가는 ‘가장 높은 불평등’에 해당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한국은 이미 ‘높은 불평등’에 놓인 셈이다.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는 이러한 불평등을 심화하는 요인이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2003년 정규직의 71.6% 수준이던 비정규직 임금이 2011년 65.3%까지 떨어졌다. 또 한국은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1차 노동시장과 중소기업 비정규직 중심의 2차 노동시장 간 이동성이 매우 낮아서 비정규직 근로자가 1년 후 정규직으로 전환될 확률이 11.1%에 불과하다. 이는 비교 가능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중산층 70% 재건’ 대선 공약 아직도 믿습니까?

    서승환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2013년 4월 1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서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시장 정상화 종합대책’을 발표하는 모습(왼쪽).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월 20일 오전 연말정산 개선 방안과 관련해 긴급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은 ‘중산층 70%’ 발표는 빛을 잃을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 중산층을 살리기 위한 핵심 대책으로 △질 좋은 일자리 제공 △가계부채 해소 △주거비용 안정 △사교육비 절감 등을 꼽는다. 이는 정부가 강조하는 민생 정책 과제이기도 하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며 “1988년 스웨덴의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돌파했을 때, 스웨덴은 이미 한국의 5.7배에 달하는 복지 수준을 갖추고 있었다. 독일도 91년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달성 당시 복지 수준이 한국의 3.1배에 달했다. 또 당시 스웨덴의 공적 지출은 지금 한국의 4배, 독일은 3배 수준이던 걸 눈여겨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인이 꿈꾸는 삶

    연봉 8500만 원에 월 341만 원 지출, 외식은 월 4회


    우리 국민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중산층은 매달 515만 원을 벌어 341만 원을 쓰고, 115㎡(35평형)짜리 주택을 포함해 6억6000만 원 상당의 순자산을 보유하며, 매달 12만 원 상당의 외식을 네 차례 즐기고, 사회적 약자를 위해 소득의 2.5%를 기부 후원하며, 무료로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해 전국 성인 남녀 81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다. 월소득 515만 원은 세전 연봉으로 계산할 때 약 8500만 원 수준이다.

    2013년 삼성경제연구소 설문조사에서는 4인 가구 기준으로 중산층의 소득 하한은 ‘연 7000만 원 이상’이라는 응답이 44.1%로 1위였다. ‘연 1억 원 이상’이라는 응답도 21.4%였다. 하지만 실제 우리나라에서 이 같은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2012년 통계청 발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구당 순자산은 약 3억3000만 원이다. 자산 보유액이 10억 원 이상인 가구는 4.2%에 불과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설문 응답자의 실제 평균자산도 3억8000만 원이었다.

    이들은 ‘우리나라에서 중산층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첫째로 ‘상당한 수준의 소득과 자산’(46.9%)을, 그다음으로는 ‘여유로운 생활과 삶의 질’(37.7%)을 꼽았고, ‘사회적 기여 수준과 시민의식’(11.9%), ‘사회적 지위와 명예’(3.6%) 등의 응답이 뒤를 이었다. 30대 남성은 소득과 자산 등을 주요 기준으로 꼽은 반면, 20대 여성은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생활과 삶의 질을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에서도 중산층 기준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미국 오바마 정부는 △주택을 소유하고 △자녀에게 대학교육을 시키며 △의료보험·퇴직연금이 있고 △가족휴가를 가는 사람을 중산층으로 봤다. 프랑스 퐁피두 정부는 △외국어 구사 능력 △정기적 스포츠 활동 △악기 연주 능력 △약자를 위한 봉사활동 등을 중산층 기준으로 삼았다. 영국 옥스퍼드대가 밝힌 중산층의 필수요건은 △페어플레이 정신 △신념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하는 정신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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