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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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농가만 당하는 것 아니냐”

쌀 등 전체 농산물 3분의 2 보호…中, 가공식품 관세인하 농가 위기감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4-11-14 17: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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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농가만 당하는 것 아니냐”

    \'한중FTA 실질적 타결 규탄\' 농축산인 긴급 기자회견이 열린 11월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참가자들이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후폭풍이 가장 거세게 불고 있는 곳은 농업 분야다. 정부는 “농가 피해를 최소화했다”고 자평하지만, 농민들은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항의 시위와 성명 발표가 잇따르는 상황이다. 정부로서는 서운할 수 있다. 이번 FTA 협상 테이블에 오른 우리 농산물은 1611개 품목(국제통일 상품분류표(HS품목) 10단위 기준). 이 중 581개(36.1%)가 관세를 현행대로 유지하거나 조금만 내리는 초민감품목으로 분류됐다.

    그중에서도 쌀, 쇠고기, 고추 등 548개 품목은 ‘양허 제외’를 통해 개방에서 빠졌다. 추가로 441개(27.3%) 농산물은 민감품목으로 정했다. 민감품목의 관세는 15년 또는 20년에 걸쳐 천천히 낮추게 된다. 결과적으로 전체 농산물 품목의 3분의 2가 보호를 받는 셈이다. 이 비중은 우리가 맺은 FTA 중 가장 높은 것이라는 게 정부 설명이다. 특히 주요 농축수산물(쌀, 고추, 마늘, 양파, 사과, 감귤, 배, 조기, 갈치, 쇠고기, 돼지고기 등)이 양허 제외된 걸 정부는 큰 성과로 꼽는다.

    농경연 “농업 피해는 제한적”

    일각에서는 정부가 이번 FTA 체결 과정에서 자동차, 액정표시장치(LCD) 등 산업 분야의 수출을 늘리기보다 우리 주요 농산물을 지키는 데 더 역점을 뒀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 어명근 선임연구위원도 “농업계의 의견이 상당 부분 반영됐다”며 “향후 우리 농업이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연착륙할 수 있는 바탕을 확보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했다. “이제는 한중 FTA를 활용한 국산 농산물의 중국 시장 수출지원 전략을 세워야 할 때”라고도 덧붙였다.

    국산 자급률이 낮고 중국산 수입의존도가 높은 대두, 참깨, 맥아(보리), 팥 등 일부 개방품목도 저율관세할당량(TRQ)이 설정돼 우리 농가에 큰 피해를 주지 않을 것으로 분석됐다. 저율관세할당은 일정 수입량까지는 무관세 혹은 저율 관세를 부과하고,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는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설명에도 농가의 위기감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현안으로 대두된 것이 가공식품에 대한 관세인하다. 한중 양국은 이번 합의를 통해 고추, 마늘, 양파 등 주요 양념채소류는 개방 품목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이들 채소를 이용해 만드는 다진양념(다대기)의 관세는 낮추기로 했다. 배추, 무도 양허 제외됐지만, 김치 관세율은 현행보다 낮추기로 했다. 인삼류 역시 가공식품으로 수입할 경우 관세가 낮아진다. 전문가들은 이 합의가 우리 농업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내다본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중국산 김치 수입액은 2009년 6633만 달러에서 지난해 1억1743만 달러로 급증했다. 일반 가정에서 중국산 양념이나 김치를 구매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외식업소 등에서는 이미 광범위하게 사용 중이다. 대한김치협회는 자체 조사를 통해 고속도로휴게소에서 내놓는 김치의 95%가 중국산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관세인하로 중국 김치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질 경우 결과적으로 채소 농가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중국산 김치 수입이 더욱 늘어나면 국내산 배추, 무, 마늘, 고추 등 김장용 채소에 대한 수요가 크게 감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 농경제학과 임정빈 교수는 “중국산 김치가 많이 팔리면, 당연히 고추, 마늘, 배추 농가에 피해가 가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농가만 당하는 것 아니냐”

    한중 FTA를 통해 중국산 김치 수입 관세가 낮아질 전망이다. 사진은 서울 양재동 대형 농수축산물 마트에 진열된 국산 김치.

    이에 대해 정부는 “관세를 낮추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우리의 가공식품 수출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반박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서진교 무역통상실장도 “현재 한국 김치의 중국 수출 길은 막혀 있고, 중국산 김치는 대량 수입된다는 점에서 가공식품 관세인하가 불리해 보이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보면 우리나라에 유리한 면도 많다. 식품 가공 기술은 우리나라가 중국에 비해 우수하기 때문”이라며 “이미 우리나라의 조미김, 유자차 등이 중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관세인하를 통해 우리나라 가공식품이 더 많이 중국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공식품 수출을 통해 한국 식품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면 장기적으로 중국 고소득층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신선 농식품의 판로도 열릴 수 있다”는 게 서 실장의 의견이다.

    임정빈 교수는 “중요한 건 현 상황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라며 “우리 농가의 피해가 현실화된 상황에서 중국산 가공식품 수입이 급증하는 것은 막고, 우리 제품의 수출은 늘릴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할 때”라고 밝혔다.

    농축수산 분야 직간접 피해 발생

    “또 농가만 당하는 것 아니냐”
    문제는 이러한 논란이 예상됐음에도 정부가 이해당사자와 충분한 논의 없이 ‘FTA 타결’을 발표했다는 데 있다.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정책연구소 강정현 실장은 “우리는 이미 중국과의 농산물 교역에서 큰 폭의 적자를 보고 있다. 그런데 우리 농업 기반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도 마련하지 않고 한중 FTA를 서둘러 체결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지난해 농축산물의 대중국 수출은 9억 4700만 달러에 불과했지만 수입은 47억1400만 달러에 달했다(표 참조). 정정길 농경연 연구위원은 “이번 한중 FTA 협상 결과를 농축산업 측면에서 본다면 그동안 우려했던 것에 비해 매우 선방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FTA 체결로 중국산 농축산물 수입이 증가하는 건 확실하므로 직간접적인 피해 발생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도 11월 11일 성명서를 내고 “주요 농산물을 양허 제외하긴 했지만 (한중 FTA 체결로) 축산, 채소류의 피해는 피할 수 없게 됐다”며 “제2의 주식인 밀, 사료, 콩, 참깨 품목을 대폭 양보한 것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전국적으로 항의 시위를 하고 있는 전농은 20일 서울에서 전국 농민이 모이는 ‘식량주권 먹거리 안전을 위한 제3차 범국민대회’를 열 계획이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등 30여 농민단체가 결성한 ‘한중 FTA중단 농축산 비상대책위원회’도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현재 정부는 한중 FTA의 ‘실질적 타결’을 선언한 상태다. 산업통상자원부 우태희 통상교섭실장은 11월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실질적 타결은 완전 타결로 보면 된다. 모든 쟁점이 해소된 상태다. 실질적 타결 선언을 하고, 법률 검토를 거쳐 조문화를 한 다음 가서명한다. 그 후 정식 서명과 국회 비준 절차가 진행된다”고 밝혔다. 문제는 국회 비준 절차다.

    이번 협상을 ‘졸속타결’ ‘밀실합의’라고 비판하는 야당은 국회 논의를 통해 협상 과정을 철저히 살피겠다는 방침. 이에 농민단체의 반발이 더해지면 FTA 후속 절차는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 강정현 실장은 “중국은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 가깝고 먹을거리도 비슷해 농축산물 수입이 본격화할 경우 우리 농촌에 미칠 영향이 매우 크다. 한중 FTA에 의한 농가 피해가 한미 FTA의 10배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가 협상 타결을 선언했지만, 농민들이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라며 “국회 비준 과정에서 추후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를 꼼꼼히 따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2007년 4월 타결된 한미 FTA는 발효까지 5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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