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사고 16일째인 5월 1일 오전 전남 진도군 관매도 앞 사고 해역에서 해양경찰과 해군 등이 구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시계(視界)는 20~30cm에 불과하다. 먼저 내려온 잠수조가 설치한 인도색을 붙잡고 가지만 뭔가가 또 앞을 막는다. 더듬어보면 탁자, 매트리스, 칸막이, 이불 등이다. 비켜가거나 하나하나 치워야 한다.
“물속 시신은 손이 떠 있는데 꼭 ‘저 좀 데려가라’고 손짓하는 것 같아요. 3명을 한 번에 몸에 묶어 데리고 나온 적도 있어요. 그러다 제가 죽을 수도 있지만 꺼내달라고 손짓하는데 어떻게 그냥 두고 갑니까.”
세월호 수색작업에 투입된 해군 해난구조대(SSU) 주환웅(36) 상사는 “실종자 가족이 만나면 알아보게는 해드려야 할 거 아닙니까. 3명이고 4명이고 보이면 데리고 나올 텐데 앞은 보이지 않고…”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세월호 침몰 16일째인 5월 1일 오후까지 민관군 합동 구조팀은 실종자 219명을 발견했다. 모두 숨진 채였다. 이 중 176구가 선체 내에서 발견됐다. 실종자 83명은 아직도 누군가 자신을 발견해주길 기다리고 있다.
4월 18일 선수 우현 측에 첫 번째 가이드라인을 설치한 뒤 이것을 타고 내려간 잠수사들이 가이드라인 개수를 하나씩 늘렸다. 5월 1일 현재 가이드라인 6개가 설치된 상태다.
2주 걸려 격실 69% 수색 마쳐
구조현장에는 해군 특수전전단(UDT), SSU, 특전사, 해양경찰(해경), 소방 및 민간업체 잠수사 등 총 700여 명이 있지만 이 중에서 실제 잠수 수색에 투입될 수 있는 인원은 물살이 느린 소조기라도 하루 최대 100명에 불과하다. 가이드라인 1개당 2인1조 작업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살이 거센 대조기에는 하루 30명 내외다. 4월 27일에는 종일 18명밖에 입수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가이드라인 수를 더 늘리기도 어렵다. 가이드라인을 촘촘히 설치해 잠수 수색 중 라인이 서로 꼬이기라도 하면 잠수사의 생명이 위태롭다는 것이 구조팀 측 얘기다.
구조팀은 선체 3, 4층 우현 쪽 객실 수색을 마치고 점점 더 깊은 곳으로 진입하는 상태다. 3층 식당, 라운지와 선수 쪽 단체 객실, 4층 선미 측 가운데 50인실, 선수 쪽 다인실 등에 대한 수색을 1차 완료하고 선수 좌현 쪽 8인실 일부까지 접근한 단계다. 좌현 쪽 객실은 가장 깊은 곳에 있고 잠수사가 장애물을 헤치며 복잡한 통로를 지나가야 해 접근이 어려웠던 곳이다. 수색 지점이 점점 깊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오래 작업할 수 있는 표면 공기 공급 잠수(SSDS) 방식을 사용하지만 이동시간을 제외한 실제 작업시간은 수심 30m에서 15~20분, 40m에서 4~5분밖에 안 된다.
구조팀은 실종자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64개 격실 중 5월 1일까지 약 69%인 44개 격실에 대한 수색을 마쳤다. 구조팀은 5월 중순까지는 추가 발견 가능성이 있는 모든 격실에 대해 1차 수색을 완료한다는 방침이다.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14일째인 4월 29일 오후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사고 해역에 알파잠수기술공사(대표 이종인)의 다이빙 벨이 도착했지만 실종자 수색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왼쪽). 바지선 주변에서 작업 중인 구조팀.
이 대표의 다이빙 벨은 5월 1일 오전 3시 20분경 잠수사 3명을 태우고 세월호 선미 쪽에 투입됐지만 약 2시간 뒤 물 밖으로 나왔다. 민간 잠수사 2명이 다이빙 벨을 이용해 1시간여 가까이 선내 진입을 시도했지만 들어가지 못했다. 이 대표의 다이빙 벨을 실은 바지선을 타고 사고 해역까지 동행했던 실종자 가족들은 “우리를 데리고 장난을 친 거”라며 분노했고, 다이빙 벨이 만능인 것처럼 부추긴 일부 언론을 원망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팽목항으로 철수한 뒤 “사업하는 사람으로서 기계 성능을 검증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편 해경과 자원봉사 잠수사 간 갈등은 잠시 잠잠해진 상태다. 해경은 수색에 투입하는 자원봉사 잠수사에 대한 인원 제한이 불가피했다는 처지다. 해경 관계자는 “짧은 정조시간대를 최대한 활용하려면 정예요원을 선별해 잠수를 하게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해경에 따르면 4월 24일까지 34개 단체 343명이 사고현장을 방문해 이 중 16명이 실제로 바다에 입수했다. UDT 출신의 민간 잠수사 김모 씨는 “해경이 실력이 충분한 잠수사의 투입도 막고 있다”고 말했다.
반경 11km에 시신 유실 방지선
선내 실종자뿐 아니라 해상을 표류하고 있을 실종자를 수색하는 작업도 만만치 않다. 사고 해역은 물살이 거세 실종자가 표류할 경우 어디까지 흘러갔을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중앙대책본부 관계자는 “해류와 조류의 방향, 유속을 감안해 사고 초기 희생자가 유실됐을 경우 어디까지 흘러갔을까 시뮬레이션해보니 침몰 지점에서 50km 밖 지점이 나왔다”고 말했다. 구조팀은 그 지점을 관공선과 헬기를 동원해 수색한 적 있지만 실종자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1993년 서해 훼리호 침몰 사고의 경우 침몰 16일째 되는 날 시신 2구가 사고 지점에서 약 32km 떨어진 해역에서 발견된 바 있다.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사고 해역 기준으로 반경 11km 구역에 시신 유실 방지선을 설치한 상태다.
합동구조팀은 해상에서 4월 16~21일 시신 40구를 수습했지만, 30일 경기 안산시 단원고 여학생의 시신을 발견할 때까지 9일 동안 단 한 명의 실종자도 찾지 못했다. 더구나 30일 수습한 시신은 세월호 침몰 해역에서 약 2.4km 떨어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 앞 해상에서 기름 방제작업에 나섰던 어민에게 발견됐는데, 바다 위가 아니라 닻줄에 걸린 그물과 함께 끌려나왔다.
시신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선박을 동원해도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익사 시신은 처음엔 가라앉았다가 며칠이 지나면 수면 위에 뜬 뒤 다시 조금 가라앉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신은 이처럼 수중에 떠 있는 ‘중성 부력’ 상태를 유지하다 사망한 지 7~10일이 지나면 바닥으로 완전히 가라앉아 수색이 어려운 상태가 된다. 해군 관계자는 “시신 대부분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지만 조류가 세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끼가 벗겨질 가능성이 커 완전히 가라앉는 시신이 다수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