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대 채동욱 검찰총장이 4월 4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먼저 채동욱 검찰총장 체제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은 미묘하다. 청와대는 물론이고 여권조차 현재의 검찰을 불편한 심기로 바라본다. 국가정보원(국정원)의 대통령선거(대선) 개입 의혹 사건 수사를 통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기소한 검찰의 행보 때문으로 보인다. 보수단체는 연일 ‘채동욱 총장 사퇴’를 부르짖는 광고를 언론에 실을 정도다. 심지어 ‘망국적 검찰’이라고 개탄하는 여권 관계자들도 있다.
“이명박 정부가 지명한 총장”
이정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채 총장은 이명박 정부가 지명한 검찰총장”이라고까지 했다. 이 수석의 발언은 6월 7일 민주당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신경민 최고위원과 박범계 의원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 청구를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막고 있다”며 청와대로 항의 방문을 간 자리에서 나온 말로, 전체 맥락을 보면 청와대가 검찰 수사에 개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얘기지만 검찰에 대한 불쾌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채 총장은 이명박 정부 말기에 권재진 전 법무부 장관이 만들어놓은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해 후보 명단에 올랐지만 낙점한 건 박근혜 대통령이다. 채 총장은 박 대통령 취임 후인 4월 17일 박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야권 반응은 조심스럽지만 “썩 만족스럽진 않아도 역대 정권의 검찰과는 분명히 차별성이 있다”란 분석이 대세다. 민주당 관계자는 “당 내부에서 전략적으로 검찰을 불편하게 하지 말자는 논의가 있었고 어느 정도 공감대가 이뤄진 것으로 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과 관련한 수사 및 재판이 계속되고 4대강 담합비리 의혹 사건 등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는 대형 권력형 비리 사건이 너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이런 저간의 사정 때문일까. 요즘 언론은 검찰 앞에 ‘채동욱’이라는 총장의 이름을 붙여 ‘채동욱 검찰’이란 말을 즐겨 쓴다. 청와대나 여권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수사하는 듯한 모양새를 보여서다. 더욱이 4대강 담합비리 의혹 사건이나 전두환 전 대통령 미납 추징금 수사 등에서 보듯 국민적 관심사가 된 사건에 대한 열정은 가히 폭발적이다. 오히려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4대강 담합비리 의혹 사건에 대한 전 방위적 수사에 대해선 여권 안에서도 MB(이명박)계를 제외한 대부분의 의원이 “잘한다”는 반응을 보인다. 청와대로서도 나쁠 게 전혀 없다. 박 대통령은 2007년 대선 당시에도 4대강 사업을 반대해왔고 지난해 대선 당시에는 “4대강 사업에 문제가 있다면 바로잡겠다”고 약속했다.
야당도 검찰의 칼날을 피할 수 없다. ‘댓글 사건’의 장본인인 국정원 직원 김모 씨의 감금 사건에 대해선 당시 오피스텔 현장에 있었던 민주당 당직자 정모 씨를 체포해 수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국정원 심리전단의 조직과 활동 내용, 원세훈 전 원장의 ‘지시·강조 말씀’ 등을 누설한 혐의로 고발된 국정원 전 직원(당시는 직원) 또한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회부했다.
7월 4일 황보연 전 황보건설 대표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서울중앙지검으로 출석하고 있다(왼쪽). 7월 18일 검찰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환수를 위해 장남 전재국 씨가 소유한 시공사를 압수수색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야권의 핵심 중진의원이 2010년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 개입한 혐의를 잡고 집요하게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검찰은 이 의원의 보좌관이 실제 공천을 받은 사람으로부터 1억 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7월 두 차례나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기각됐다. 검찰 수사 관계자는 “보강 수사를 통해 언젠가는 보좌관뿐 아니라 의원의 비리 혐의를 완벽하게 밝혀내겠다”며 전의를 불태우는 상황이다.
이처럼 좌고우면하지 않는 검찰 모습은 채 총장의 ‘소신 수사’에 대한 강력한 의지로부터 비롯했다는 게 검찰 안팎의 시각이다. 검찰 고위 관계자의 얘기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 4대강 담합비리 의혹 사건, 전두환 전 대통령 미납 추징금 환수 수사, CJ그룹 이재현 회장 비자금 조성 사건, 원자력발전소 비리 사건, 주가조작 수사 등 큼직한 사건에 여러 검사가 모여 합동수사를 벌이면서 내부적으로 법리적 공방은 많았지만 현재 검찰 내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좋다. 채 총장은 일선 검사들의 수사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취임 당시 약속을 지키고 있다. 심지어 청와대에서 넘어온 사건에 대해서도 ‘소신껏 수사하라’고 한다. 각종 증거를 기반으로 공소 유지가 가능하다면 그다음은 검사 몫이라는 거다. 그래서 요즘 검찰 내부에선 채 총장을 ‘소신 총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밝혔다.
중립 성향의 검찰 출신 법조계 인사는 “‘떡검’ ‘색검(色檢)’ 등 각종 검사 비리 사건과 현직 총장을 물러나게 한 항명사태인 검란으로 얼룩진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청와대나 여당뿐 아니라, 야당 등 모든 정치권력, 재벌과의 유착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위기감이 검찰 내부에 팽배할 때 채 총장이 취임했다. 이런 상황에서 채 총장은 검사들에게 ‘소신껏 수사하되 수사에 책임을 지라’고 한다. 경찰과의 수사권 재조정과 검찰 개혁 문제가 국회에서 논의되는 과정에서 결국 채 총장은 정치권과 재벌보다는 국민을 선택한 듯 보인다. 채 총장은 특수부 생활을 오래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재판 승패에 민감한 스타일”이라고 밝혔다.
5월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별관에서 열린 증권범죄 합동수사단 현판식에서 채동욱 검찰총장(왼쪽에서 세 번째) 등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위기감이 전혀 없는 게 아니다. 서울중앙지검 한 평검사의 말이다.
“상명하복의 조직문화가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검찰 조직에서 ‘알아서 잘하라’는 지시처럼 부담스러운 게 없다. 결국 수사 책임을 전적으로 지검장과 부장검사 이하 검사들이 져야 한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하던 모든 사건을 각 지검 특수부가 담당하고, 새로 구성한 특별수사팀과 합동수사단 등에 강력부 검사까지 대거 파견하는 등 검찰이 총력을 기울인 상황에서 ‘이번에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확실하게 수사해야 한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라는 등 위기감이 팽배한 게 사실이다.”
이런 위기감 때문일까. 아니면 실적을 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일까.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에 대해선 편파 수사 의혹이 여권에서 제기됐다. 4대강 담합비리 의혹 수사에 대해선 “의혹의 핵심은 파헤치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고 있다. 전 방위 수사가 건설업체만 괴롭힌다”는 비판이 검찰 내부에서조차 터져 나온다. 전 전 대통령 미납 추징금 환수 수사와 관련해서는 “전두환 가족과 친인척의 비위 사실만 처벌할 수 있을 뿐 결국 추징금의 완전 환수에는 실패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대두되는 실정. 검찰의 명운을 건 대형사건 수사가 결국 판만 크게 벌여놓고 용두사미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이다.
편파수사 논란은 ‘채동욱 검찰’의 첫 번째 작품인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에서 뒤늦게 점화했다. 검찰이 경찰의 수사 축소·은폐 혐의를 뒷받침하려고 내놓은 서울지방경찰청 디지털 분석관들의 폐쇄회로(CC)TV 영상 녹취록이 편집, 조작됐다는 의혹이 그것이다. 경찰과 새누리당 측은 “검찰이 경찰의 수사 축소, 은폐 사실을 증명하려고 분석관의 대화를 구미에 맞게 조작, 편집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검찰은 “그런 적 없다. 증거로 제출한 것은 대화록 그 자체”라고 반박한다.
검찰 안팎에선 새누리당의 반발을 당연한 것으로 본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은 지난 대선의 정당성을 훼손할 수 있는 민감한 사건이기에 새누리당으로선 검찰을 공격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나 검찰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경찰의 수사 축소·은폐 혐의의 가장 큰 증거가 김용판 전 청장으로부터 축소·은폐 압력을 받았다는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진술과 CCTV 녹취록인데, CCTV 녹취록이 증거 훼손으로 판명되면 재판 과정에서 공소 유지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여기에 검찰은 공판 과정에서 원 전 국정원장이 “매카시즘에 사로잡혔다”라는 등 그의 정치적 성향을 분석하고 매도하는 표현을 씀으로써 보수단체의 반발에 기름을 부었다. 검찰 출신 형사사건 전문 변호사는 “공판 담당 검사가 공소 유지와 승소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쓸데없는 발언을 했다. 윗선과 전혀 조율이 안 된 듯하다. 보수와 진보 양대 세력이 극심하게 다투는 민감한 정치적 사건 재판에 대해 최소한의 내부 조율이 안 된다는 건 검찰 총수의 리더십 부재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외부에 비칠 수 있다”고 밝혔다.
6월 14일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가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검찰청에서 국가정보원 대선 관련 의혹 사건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채 총장의 리더십은 이미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 수사 과정에서 도마에 오른 바 있다. 6월 11일 원 전 원장에 대한 불구속기소 방침과 공소장 내용이 확정되기 전 수사팀 안에선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나온 증거 및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수사 내용을 바탕으로 원 전 원장을 “구속하자”는 특수통 검사들과 “이 정도 증거로 공소 유지가 어렵다”는 공안 중심의 비특수통 검사 간 의견이 충돌했다. 이를 두고 지난해 검란 당시 표면화한 특수통과 비특수통 검사들 간 대립이 봉합되지 않고 재점화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심지어 “채 총장이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눈치를 보며 원 전 원장에 대한 구속 여부를 차일피일 미룬다”는 식의 수사팀 내부 불만이 조금씩 표출됐다. 또 확정되지 않은 혐의가 보도되는가 하면, 기소가 확정되기도 전 공소장 내용이 언론에 유출되기도 했다. 당시 채 총장은 “검찰 내부에서 충분히 논의하고 검찰 책임 하에 결론을 내린다”는 원론적 내용만 발표했다.
“요즘 채 총장과 서울중앙지검의 검사들을 보면 ‘무소불위’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살아 있는 권력, 죽어가는 권력, 재벌 등을 가리지 않고 전 방위 압수수색을 벌이고 사전영장을 거침없이 청구하는 걸 보면 일반 국민의 눈에는 통쾌하게 보일 것이다. 문제는 벌여놓은 이 많은 대형사건 수사에 대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만한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성공한다면 땅에 떨어진 국민의 신뢰를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되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검찰 역사상 최대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한 검찰 출입기자는 이렇게 말하면서 ‘채동욱 검찰’에 대한 평가를 유보했다. 검찰이 대형사건 수사를 대강 마무리하는 연말쯤이면 그 평가가 확실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