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중에 수요가 많아 여름 계절학기로 추가 개설된 한국어 기초 수업 모습.
캐나다 토론토대에서 역사학 박사과정을 밟는 박지원 씨는 1880년부터 1980년까지의 한국과 캐나다 외교사를 연구하며 동아시아학부 전공 학부생을 대상으로 양국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한국학을 연구하는 연구진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면서 “한국학 연구가 한류 등 현재가 아닌, 역사 같은 과거로 제한돼 아쉽다”고 지적했다.
민족문학 등 다양한 강의 개설
그럼에도 희망은 보인다. 이곳의 한국학 연구가 조금씩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토론토대에서 한국학 연구의 시작은 1971년 로스 맥도널드 교수가 종교학부에서 ‘한국사회의 종교’를 강의하면서부터였다. 이후 77년 유재신 박사가 ‘한국무역재단’과 ‘토론토대 한국학과 후원재단’으로부터 지원받아 동아시아학부에 ‘한국과 아시아의 종교 전통’이란 강의와 88년 ‘한국 샤머니즘’ 강의를 진행하면서 본격화됐다. 96년 ‘한국과 기독교’ 강의를 비롯한 언어 수업과 앙드레 슈미드 교수의 한국현대사 수업, 2003년 송재숙 교수의 한국의 전쟁 변화상 수업, 카와시마 켄 교수의 전쟁 기간 중 일본에서의 한국인 노동력 수업을 개설하는 등 점차 외연을 넓혀갔다.
그러다 2005년 토론토대 학부생 500여 명이 한국학 수업을 들었다. 그해 여름학기에 한국학입문 수업이 개설된 것도 그런 인기에 힘입은 바다. 더욱이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2006년 멍크국제학센터에 한국학연구센터가 들어섰다.
한편 한국학이 발전하면서 교민사회가 1978년 토론토대 한국학과 설립의 재정적 지원을 위해 만든 자선단체 토론토대 한국학과 후원재단은 2010년 그 목적을 이행했다고 판단해 해체됐다. 이후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한국학 장학기금설치 사업에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연간 5만 캐나다달러(약 5000만 원), 한국학연구센터 프로그램 사업에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연간 4만 캐나다달러(약 4000만 원)를 지원한다.
그 결과 토론토대는 구한말 역사를 비롯한 역사학, 인류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개설 과목도 더욱 다양해졌다. 올해 토론토대에는 한국학과 관련해 한국어 심화 읽기 같은 언어강의뿐 아니라 현대 한국의 주요 면목, 20세기 한국의 미학과 정치, 20세기 한국사, 식민지 한국과 모더니즘, 한국의 민족문학, 북한의 역사와 일상 같은 다채로운 강의가 개설됐다.
한국학 수요만큼 공급 이뤄지지 않아
캐나다 토론토대 한국학연구센터가 들어선 멍크국제학센터 앞에 선 박지원 씨. 그는 토론토대에서 박사과정 중이다.
그렇다면 일각에서 토론토대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는 이유는 뭘까. 이토 펑 한국학연구센터 소장은 “한국학에 대한 수요가 그만큼 급증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는 “한국은 최근 민주화한 국가로 자본주의, 성의식 등 다양한 모습이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가 주목한다”면서 “학계에서도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중국, 일본에서 한국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학계에서 한국을 지역 연구의 중요한 사례로 다룬다. 그리고 이 같은 한국에 대한 학계 관심이 학생들에게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특히 학부생이 많이 듣는 한국어 수업의 경우, 수강 신청자가 많아 일반 학기만으로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고 한다. 6월 4일 기자가 참관한 한국어 기초 수업은 방학 중에만 개설되는 계절학기인데도 수강 인원이 30명이 넘었다. 대부분 동아시아학부 전공으로, 학기 중에 한국어 강의를 듣지 못해 여름방학을 이용해 수업을 듣고 있었다.
이토 펑 한국학연구센터 소장은 “학계에서 한국을 주목하고 있지만 적절한 연구진을 찾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한국학 수업을 택한 이유는 다양하다. 한류 영향으로 “한국 드라마를 잘 이해하고 싶다”(페트리시아·19), “동방신기의 유노윤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의 언어를 배우고 싶다”(비트리스·19)고 말하는가 하면 “한국 위상뿐 아니라 한국 기업이 좋아져 취업을 위해서라도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노라·20)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동아시아학부 전공자들은 정부기관, 미디어, 연구재단, 로스쿨, 연구소 등 다양한 곳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한때 토론토대 한국학연구센터는 수요에 따른 다양한 교수진을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펑 교수는 “특히 한국어 교수진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물론 현재는 어느 정도 연구진이 확충된 편이다. 한국학연구센터에 소속된 한국학 전공 교수는 13명이고 한국어음성학, 한국문학, 한국사 등 한국학만을 ‘중점적으로’ 전공한 연구자는 3명이다. 그중 슈미드 교수는 한국 근대사, 동아시아 민족주의, 조선 후기 역사 등에서 독보적인 전문성을 갖고 있다. 또한 한국학을 연구하는 한국인 교수도 강윤정(한국어음성학 전공), 고경록(외국어교육 전공), 박진경(여성학 전공), 송재숙(인류학 전공), 주혜연(사회학 전공), 전지혜(사회학 전공), 한주희(지리학 전공) 등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한국학 종신교수는 1명도 없다.
문제는 한국학연구센터에 소속된 이들이 한국학을 연구할 때 연구비 일부를 지원받을 뿐, 한국학 연구를 해야 한다는 구속력이 없다는 데 있다. 이런 이유에선지 한 연구진은 “한국학연구센터는 리서치 허브 센터이긴 하지만, 연구진에게 한국학을 연구해야 할 동기 유발을 못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렇다고 토론토대 한국학의 미래가 어두운 것은 아니다. 전지혜 토론토대 사회학과 부교수는 “토론토대에는 한국학만을 중점적으로 공부한 학자가 드물지만 한국의 언어, 역사, 문화, 문학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이가 많기 때문에 이들이 협업한다면 한국을 더 다양한 각도에서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단 연구진의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 연구진들은 한국을 현상을 설명하는 한 사례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한국 자체를 중요하게 볼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 나만 해도 한국인이어서 한국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깊이가 부족하다. 물론 외국인 연구진에게 한국에 대한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지원이 이뤄진다면 한국학 연구는 더 풍성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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