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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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단독취재 | 부실 덩어리 기상관측기 추락하나

기상청, 제원 미달 항공기 도입 후 지지부진 처리로 기상관측 사업 차질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7-06-16 16:2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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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상청의 다목적 기상관측 항공기(기상관측기) 운영이 도입 과정에서부터 총체적 부실로 추락 위기를 맞고 있다. 기상관측기 도입은 한반도 주변 해상에서 접근해오는 태풍, 집중호우, 황사 등 위험 기상현상을 관측하고 원인을 규명하고자 예산 192억 원을 들여 2012년부터 추진된 사업이다.

    예정대로라면 지난해 기상관측기를 현장에 투입했어야 하지만 개조→도입→인수 불가 판정→반송→재개조 과정을 거치며 아직까지 재도입 일정조차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설령 재개조한다 해도 당초 기상청이 내걸었던 조건에 훨씬 미달할 것으로 예상돼 제구실을 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기상청은 기상관측기를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 대비해 인공강설에도 활용할 예정이어서 아무리 늦어도 올 하반기에는 관측 및 인공강설 등 기상지원 업무에 투입해야 하지만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분석이다. 



    처음부터 잘못된 관측기 도입

    기상청은 2012년 3월 기상관측기 도입 사업 발표 당시 “2012년 안에 항공기 내부 개조설계를 완료한 뒤 계약, 개조, 국내 도입, 검수 등 과정을 2015년까지 모두 마치겠다”고 밝혔다. 도입 사업이 예정대로 진행됐다면 지난해부터 기상관측기가 운영됐어야 한다. 하지만 1년 반이 지난 지금 기상관측기는 한국에 없다.

    기상관측기 도입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2013년 2월 기상청은 기상관측기 공급 입찰공고를 냈다. 입찰은 △공급업체의 사업수행능력 △항공기 임무수행능력 △항공기 유지보수의 용이성 등을 평가하는 기술능력평가(80점)와 입찰가격평가(20점) 점수를 합산해 최종 입찰업체를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입찰에는 인도네시아 방위산업체 PTDI와 국내 중견기업 A사가 참여했다. A사는 건축용 강관, 파이프 등을 대기업에 납품하는 기업으로 항공기 관련 사업은 처음이었다. A사는 경험 부족을 메우고자 미국 기상관측업체이면서 항공기 개조 사업도 하는 PEC(Stratton Park Engineering Company)와 협약을 맺고 입찰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PTDI는 스페인 항공기 제조사 카사(Casa)의 C-212를, A사는 미국 비치크래프트(Beechchaft)의 킹에어(Kingair) 350HW를 기상청에 공급할 항공기로 제시했다. 양사는 해당 항공기로 2013년 3월 13일 기술능력평가를 받았다. 그 결과 PTDI의 항공기가 100점 만점에 64.34점으로 부적격 판정을 받았고, A사의 킹에어 350HW가 85.54점으로 최종 선정됐다. 기상청은 그해 5월 21일 A사와 정식으로 항공기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사업비로 162억 원을 지급했다.

    A사는 압도적인 점수 차로 입찰에 성공했지만 킹에어는 기상청의 입찰 기준에 한참 모자라는 항공기였다. 기상청이 조달청을 거쳐 공표한 기술능력평가 기준에 따르면 ‘20명 이상을 태우고 비행이 가능할 것’이 필수항목으로 지정돼 있다. 하지만 킹에어 350HW에는 최대 11명까지 탑승할 수 있다. 일각에선 A사가 기상청 고위간부의 고교 동창을 영입해 입찰에 성공했다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이에 기상청은 “외부 전문가가 기술능력평가를 했기 때문에 특혜가 작용할 여지가 없었다. 평가기준표상 필수항목도 점수를 부여하는 기준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이 때문에 필수항목을 충족하지 않더라도 기술능력평가 중 다른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A사가 적격업체로 선정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조달청이 각 입찰업체에 발송한 평가항목 관련 제안요청서에는 ‘필수항목은 다목적 기상관측기 임무 수행에 있어 절대적으로 중요한 항목’이라고 명시돼 있다.



    기준에 맞는 것이 거의 없는 항공기

    필수항목을 충족하지 못한 것은 탑승인원만이 아니다. 킹에어 350HW는 날씨가 나쁘면 착륙이 불가능하다. 기상 상태가 나쁘면 조종사가 육안으로만 보면서 착륙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안전한 착륙을 돕고자 항공기에는 계기착륙시스템(ILS)이 탑재된다. ILS는 정교함에 따라 CAT 등급으로 나뉘는데, 평가 기준에 따르면 기상관측용으로 도입될 항공기는 CAT-Ⅱ 등급의 착륙능력을 갖춰야 한다. 이 등급은 300m 이상 거리에서 활주로 빛을 알아볼 수 있는 정도의 시야만 확보돼도 항공기 착륙이 가능한 수준이다. 하지만 킹에어 350HW에는 CAT-Ⅱ 등급의 ILS가 탑재돼 있지 않다. 한 항공기 조종사는 “해당 항공기를 개조해 CAT-Ⅱ를 달 수는 있겠지만 운용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킹에어 350시리즈를 운행하며 CAT-Ⅱ를 사용해본 조종사가 없으니 관련 교육을 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평가 기준 필수항목에는 ILS 장비 구비 외에도 △주 엔진 시동 전 에어컨 장치와 전력을 항공기에 공급할 수 있는 보조동력장치(APU) 구비 △수하물 4300lbs(약 1950kg)를 싣고 2만ft(6096m)에서 최대 1350nm(약 2500km)를 비행할 수 있을 것 등 필수 충족 항목이 명시돼 있다. 하지만 킹에어 350HW는 이 가운데 어떤 것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미국 연방항공국(FAA)이 발행하는 킹에어 350HW의 형식 증명서에 따르면 킹에어 350시리즈에는 APU가 탑재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킹에어 350시리즈의 제품 카탈로그를 보면 연료 등 인테리어를 포함한 최대 적재중량은 7145lbs(약 3241kg)이다. 하지만 비행에 필요한 연료와 좌석 등을 갖추면 최대 수하량은 3545lbs(약 1608kg)로 줄어든다. 여기에 기상관측 장비까지 싣는다면 최대 수하량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비행거리도 기상청이 내건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킹에어 350HW의 비행교범에 따르면 내부 연료탱크에는 최대 539gal(약 2040ℓ)의 항공유가 들어간다.  내부 연료탱크를 가득 채우고 고도 2만ft를 유지하며 비행했을 때 킹에어 350HW는 최대 1100nm(약 2037km)를 날 수 있다. 외부 연료탱크까지 가득 채운다면 최대 1700nm(약 3148km)를 비행할 수 있으나 이 경우 연료 무게 때문에 기상관측 장비를 실을 수 없다.

    이외에도 기상관측기는 예비연료로 45분간 비행을 제외하고도 6시간 이상 비행이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비행교범을 확인한 결과 킹에어 350HW는 연료를 가득 채워도 최대 5시간 동안만 운항할 수 있다.

    A사는 미국에서 킹에어 350HW에 기상관측 장비를 탑재하는 등 개조를 거쳐 2015년 10월 국내로 들여왔다. 2015년 하반기 도입이라는 당초 기상청의 계획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이어 11월 기상청은 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개조된 기상관측기 검수에 나섰다. 역시나 제대로 된 물건이 아니었다.



    미국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기상관측기

    기상관측기로 태풍, 황사 등 기상현상을 관측하려면 한반도 주변 해상에서도 비행이 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개조된 항공기는 해상 비행이 불가능했다. 해상 비행을 위한 안전장비를 갖추지 않았기 때문. 항공안전법 시행규칙 제110조에 따르면 해상을 운항하는 비행기에는 구명보트, 구명조끼 등을 구비해야 한다. 하지만 당시 항공기 검수를 맡았던 관계자는 “그렇지 않아도 작은 비행기에 기상관측 장비를 갖추니 구명보트나 구명조끼를 놓을 자리는커녕 비상시 승무원 탈출로도 제대로 확보돼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상청은 “추후 항공기에 구명보트 등 구급용구를 구비해 기상관측기의 해상 운항에 지장이 없게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검수 결과 임무 수행이 불가능한 수준의 항공기라는 것이 재차 확인되자 기상청은 인수 불가 판정을 내렸다. 기상청은 A사가 항공기를 개조하면서 FAA 공인 부품을 사용하지 않았고, 항공기 개조 안전성을 보장하는 FAA의 부가형식증명서(Supplemental Type Certificate·STC)에서도 문제점이 상당수 지적됐다며 항공기 인수를 거부했다. 이에 A사는 2015년 12월 미국으로 항공기를 반송해 아직까지 재개조를 하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기상관측기는 개조를 마치고 현재 FAA 검사를 받는 중이며 검사가 끝나는 대로 검토를 거쳐 국내에 들어올 예정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개조가 완벽하게 된다면 CAT-Ⅱ, APU 등 항공기 성능에 관한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항공업계 관계자는 “경차를 개조한다고 스포츠카가 될 수 없는 것처럼 개조에도 한계가 있다. 항공기의 적재량과 운행거리를 동시에 늘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기상청은 납품기한을 지키지 못한 A사 측에 당초 납품기한인 2015년 11월 6일부터 매일 2500만 원의 지체상금(계약위약금)을 물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기준에 따르면 다음 달까지도 A사가 기상청에 항공기를 납품하지 못한다면 160억 원가량의 지체상금을 물어야 한다.

    한편 이에 대한 반론을 듣고자 A사에 연락했으나 “현재 답변해줄 위치에 있는 사람이 출장 중이라 대답이 곤란하다”고 밝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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