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로프티 하우스에 사는 김진학 씨(왼쪽)와 그가 이웃 36명과 공유하는 카페 풍경.
“독립하고 처음엔 오피스텔에 살았어요. 침실과 주방 공간이 뒤섞이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다음엔 방 2개에 거실까지 있는 집으로 옮겼죠. 그러고 보니 이번엔 집에 있는 내내 집안일만 하게 되더군요.”
독립된 침실과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취사 및 휴식 공간. ‘로프티 하우스’의 주거 여건은 쾌적한 환경을 원하면서도 집안일 부담은 줄이고 싶은 김씨에게 안성맞춤이다. 그는 “혼자 살면 종종 외롭고 쓸쓸해지는데 그럴 때도 카페가 꽤 유용한 구실을 한다. 다른 입주자들과 자연스럽게 마주치며 일상을 나눌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개인생활 보장받으며 정서적 안정
역시 싱글족인 박인(27) 씨는 사업하는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 인도에서 살다가 17세 때 홀로 한국에 왔다. 10년째 이어온 독립생활에 많이 익숙해진 뒤에도 가끔 한 번씩 ‘오늘은 정말 혼자 밥 먹기 싫다’는 생각에 몸서리치곤 했다. 그렇게 외로움이 찾아온 지난해 어느 날, 그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제가 좀 특별한 카레를 만들었습니다. 나눠 먹고 싶은데, 함께 먹을 사람 없나요?”
“순식간에 ‘함께 먹고 싶다’는 답글이 쏟아지더군요. 그렇게 뚝딱 만들어진 모임에 6명이 참석했어요. 그때 알았죠. 우리 사회에 혼자 사는 사람이 참 많고, 그들도 가끔은 저처럼 여럿이 둘러앉은 밥상을 그리워한다는 걸요.”
박씨는 이에 착안해 지난해 5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게 도와주는 인터넷 사이트 ‘집밥’(www.zipbob.net)을 열었다. 밥 친구가 필요한 사람이 “같이 밥 먹을 사람 찾아요”라는 글을 올리면, 희망자들이 댓글을 다는 형식이다. 그는 “불과 9개월 사이 ‘집밥’을 통해 430회가 넘는 밥모임이 열렸다. 여행, 취업 등 관심사 중심으로 만나는 이가 많고, 요리를 좋아하는 누리꾼이 ‘제가 밥해드릴게요’ 해서 만들어진 자리도 있다. 총참가자는 2500명이 넘는다”고 소개했다. 1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참석자 대부분은 박씨 같은 1인 가구라고 한다.
개인생활을 충분히 보장받으면서 정서적 안정감도 누리는 삶은 거의 모든 1인 가구의 꿈이다. 역시 ‘원룸 생활족’인 성나연(33) 씨는 1인 가구 특징으로 ‘프라이버시 강화, 경제 규모 축소, 노동 부하 증가, 불안 및 외로움과의 대면’을 들었다. 공간을 독점하는 만족을 얻는 대신 좁은 공간, 부족한 살림살이, 더 많은 집안일, 외로움 같은 부담을 진다는 뜻이다. 그는 “1인 가구로 살다 보면 내가 꿈꾼 것이 이런 ‘1인용 삶’이었나 하는 회의에 빠지게 된다”고 했다. 성씨는 이 고민의 답을 2008년 어학연수차 떠난 일본 도쿄에서 찾았다. 거주자가 각각 개인 방을 갖되 주방, 식당, 거실은 함께 사용하는 ‘셰어하우스(share house)’에 살게 되면서부터다. 처음엔 주거비 절약 목적이 컸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점점 그는 물리적 공간을 나누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느슨한 연대’의 기쁨을 알게 됐다.
“저와 간호사, 옷 만드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 등이 같이 살았어요. 아무런 공통점도 없는 우리가 서로 세수 안 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점점 많은 것을 함께 하게 됐죠. 옷 만드는 친구에게 옷을 센스 있게 입는 방법을 배우고, 아플 때 간호사 친구에게 약을 받기도 하고…. 그렇게 혼자 사는 집이면서 동시에 혼자 사는 집이 아닌 느낌을 받는 게 좋았습니다.”
다양한 유형의 ‘코하우징’ 등장
따뜻한 ‘집밥’을 원하는 1인 가구가 모여 함께 밥을 먹는 ‘집밥’ 모임 현장.
강미선 이화여대 건축학부 교수도 1인 가구를 위한 주거형태로 ‘코하우징(co-housing)’을 제안한다. 입주자가 각각 개인 공간을 확보하고 공동 공간도 이용한다는 뜻을 가진 이 단어는 ‘셰어하우스’와 같은 개념이다. 강 교수는 “주거의 근본적 기능은 ‘돌봄 서비스’이고, 이는 1인 가구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며 “코하우징이 확대되면 개인은 적은 비용으로 좀 더 풍요로운 주거 환경을 확보하면서 그와 동시에 안정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해 주거의 근본적 기능을 충족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뜻을 같이하는 여러 가족이 모여 ‘코하우징’을 하는 사례가 있다. 서울 망원동 성미산마을에 있는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 일명 ‘소행주’가 그중 하나다. 390㎡ 대지에 지은 6층 규모의 이 건물 1층은 주차장이고, 3층부터 6층은 9가구의 독립된 주거 공간이다. 특별한 것은 건물 2층에 마련한 ‘씨실’이라는 공용 공간. 함께 땅을 구매하고, 더불어 살 집을 지은 입주자들은 이곳을 공동 거실로 사용하면서 소탈한 소통을 나눈다. 2011년 4월 입주한 ‘소행주’ 1호가 알려진 후 이 같은 주거형태를 꿈꾸는 또 다른 희망자들이 모여 지은 ‘소행주’ 2호도 지난해 7월 역시 성미산마을에 문을 열었다. 이곳에는 보통 가족과 함께 1인 가구 5명도 입주했다.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전통적 가정과 1인 가구가 더불어 살아가는 ‘소행주’ 2호는 독일에서 2006년 이후 확산된 다세대공동주거(Mehrgenerationshauser)와 닮았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012년 현재 독일 전역에 다세대공동주거 시설이 약 500개 있다. 부부 가족, 한부모 가족, 노인 및 청년 단독 가구 등 다양한 유형의 가정이 한 주택에 모여 사는 형태로, 독일에서는 이런 주거형태가 고령화·저출산 시대에 적합하다고 평가한다”고 소개했다. 마침 서울시도 7월 한 지붕 아래 1~2인 가구 여럿이 함께 사는 새로운 형태의 공공임대주택 ‘우리동네 두레주택’을 선보일 예정이다. 1인 가구 증가에 맞춰 우리나라에서도 ‘따로 또 같이’ 주거 문화가 확산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