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1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새누리당 의원총회가 열리는 서울 여의도 국회로 들어서고 있다. 박 당선인 왼쪽은 정진석 국회 사무총장, 오른쪽은 김기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
반면,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민주당)은 대통령선거(대선) 패배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집권세력 독주를 견제할 만한 힘이 현재로선 약하다. 이 때문에 새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개혁 과제를 대대적으로 추진하려 한다. 박 대통령은 2월 18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토론회에서 “새 정부가 5년간 추진할 국정과제 78%를 올 상반기에 집중 실행에 옮기겠다”고 밝혔다. 힘이 있을 때 속도전을 펼치겠다는 의지다. 박 대통령은 또한 “초반에 이런 모멘텀(전환 국면)을 놓치면 시간을 끌면서 시행이 안 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처음 3개월, 6개월 때 거의 다하겠다는 각오로 붙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공산이 큰 거대 여당, 그리고 아직은 견제 기능을 회복하지 못한 야당 때문에 박근혜 정부의 초기 개혁 드라이브에 상당한 힘이 실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탈(脫)여의도’를 지향하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달리 박 대통령은 이처럼 좋은 여의도 정치환경을 적극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5선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당 대표, 비대위원장 등을 거친 관록이 발휘될 수 있다.
김정현 민주당 부대변인은 “이명박 전 대통령은 탈여의도 행보 탓에 실패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개연성이 높다. 박근혜 대통령이 성공하려면 ‘친(親)여의도’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야당 대표와의 정례 회동 등을 통해 국정운영에서 협조를 얻어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무형 내각, 청와대 독주 예상
문제는 정치권과의 소통이다. 인수위 시절 보여준 ‘깜깜이’ 인사, 불통 인수위 모습이 취임 후 또 다른 형태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 특히 내각이 철저히 실무형으로 구성되고 여당 지도부도 약체로 평가되는 만큼 청와대 독주, 정확히 말하면 박 대통령의 정치권 장악이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책임총리로 지명한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는 기자회견에서 책임총리 구실에 대해 “대통령을 정확하게, 바르게 보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조차 인사청문회에서 “‘의전 총리’ ‘대독 총리’가 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다”고 따졌다.
여기다 현재 여당 지도부는 박근혜 정부 초기 거의 목소리를 내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황우여 대표 캐릭터 자체가 온건, 원만형이다. 친박(친박근혜)계인 이혜훈, 정우택, 유기준, 김진선 최고위원도 박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할 스타일이 아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지난해 전당대회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뜻대로 짜였다.
‘친박계의 미스터 쓴소리’로 부르는 유승민 의원은 새 정부의 당청 관계에 대해 “초반부터 당은 당대로 중심을 잡아 잘못된 건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면서 야당 구실을 함께 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황우여 대표 체제가 그런 구실을 수행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뉘앙스다.
친이(친이명박)계 비주류인 심재철 최고위원 정도가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뒷받침해줄 우군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다만, 친이계 비주류는 ‘개헌론’을 무기로 여권 안에서 독자세력화를 모색할 태세여서 향후 입지가 주목된다.
여야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개헌 추진 국회의원 모임’은 2월 19일 첫 회의를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당초 명칭은 ‘분권형 개헌 추진 국회의원 모임’이었다. 제왕적 대통령제 권한을 분산하는 차원에서 4년 중임제와 분권형 대통령제에 대해 논의할 것임을 예고했다. 그러나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에만 집중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분권형’이라는 단어가 빠졌다.
이 모임에 참여한 새누리당 의원은 대부분 친이계 비주류다. ‘MB(이명박)계 군기반장’이라고 불리던 이재오 의원을 비롯해 정몽준, 정의화, 주호영, 정병국, 김정훈, 권성동, 조해진, 이군현 의원이 여당 측 발기인이다. 이군현 의원은 새누리당 간사를 맡았다. 이를 두고 친박계 주류인 조원진 당 전략기획본부장은 “뜻은 좋지만 적절한 타이밍이 아닌 것 같다. 새 정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이런 지적에 주호영 의원은 “발기인에 친박계 의원도 있고, 박 대통령도 개헌 논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으로 안다”며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 초기 여당 비주류가 사실상 대통령 권한 분산을 위한 개헌론을 들고 나온 데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많다.
친이계 비주류에서는 개헌론 외에도 여당 안에서 야당 구실을 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정의화 의원은 2월 20일 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전관예우 논란이 이는 일부 장관 후보자에게 ‘야당 수준’의 비판을 했다. 정 의원은 박 대통령이 지명한 후보자를 겨냥해 “전관예우를 통해 천문학적인 돈을 받는 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이분들이 청문회라는 게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당과 국회를 ‘졸(卒)’로 아나 싶었다”고 말했다.
박근혜식 카리스마
2월 7일 북핵 문제 해법을 마련하려고 국회의사당에서 회동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청와대에서는 허태열 비서실장과 이정현 정무수석이 투톱을 형성해 여의도 정치에 깊숙이 간여하겠지만, 두 사람은 박 대통령 복심(腹心)이다. 허 실장은 관료 출신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어 대(代)를 이어 보좌하는 셈이다. 그는 관료 특유의 진중함을 지녔다. 취임 일성이 “귀는 있는데 입은 없는 것이 비서 아니겠느냐”였다. 정무적 드라이브를 강력하게 걸기엔 한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
이 수석은 박 대통령이 “참으로 헌신적인 분”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그동안 박 대통령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보인 점을 감안한다면 ‘심기 보좌’에 집중할 개연성이 높다. 민주당 대변인은 “이 수석이 박근혜 정권에서 막강해진 청와대 경호실 제2 경호실장 구실을 해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혹평했다.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4·24 재·보궐선거(재보선) 직후인 5월, 당 대표를 비롯한 새 지도부는 지방선거가 끝난 뒤인 내년 5월 새로 선출한다. 이 과정에서 친박 핵심으로 복귀한 김무성 전 원내대표 세력과 이재오 의원을 중심으로 한 친이계 비주류 사이에 당권 경쟁이 벌어지는 상황도 가상해볼 수 있다.
새 정부의 대야 관계 정립도 중요하다. 박 대통령은 대선 때 야당을 국정운영 동반자로 여기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러나 최근 정부조직 개편안 국회 처리와 관련해 야당을 정면 비판했다가 며칠 후 다시 간곡히 협조를 요청하는 등 전략 부재를 노출했다.
현재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체제로 운영되는 민주당은 5월 4일 전당대회(전대)를 열어 새 지도부를 선출한다. 전대 문제를 놓고 내부 진통을 겪지만, 4월 재보선을 거친 후 지도 체제가 정비되면 야당 선명성을 과시하는 차원에서라도 ‘허니문’ 기간 없이 새 정부의 국정운영에 강력한 제동을 걸 수 있다.
여기에 ‘안철수 변수’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에 머무는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후보가 귀국해 4월 재보선을 앞두고 신당을 창당하거나, 민주당에 합류할 경우 가뜩이나 저조한 박근혜 정부의 지지율을 잠식할 것으로 보인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박 대통령에 대한 국민 기대는 크지만, 막상 당선인 시절 업무수행에 대한 평가는 별로 높지 않다”면서 “정부조직 개편안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기형적 상황을 접한 국민이 정권 초기 박근혜 정부에 실망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