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도 ‘자전거족’을 말릴 수 없었다. 5월 6일과 7일, 연휴의 마지막 주말은 미세먼지로 인한 대기오염으로 야외활동이 어려웠지만 한강공원 자전거 도로에는 꽤 많은 자전거가 나와 있었다. 서울 여의도 한강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공원과 보도 사이에 자리한 자전거 도로는 이미 자전거로 꽉 차 있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겨우내 쉬고 있던 자전거 동호인이 한강공원이나 자전거 도로로 쏟아져 나오자 일부 시민이 불편함을 토로하고 있다.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고 자전거 운동을 즐기는 일부 ‘얌체 자전거족’ 때문이다. 이들은 자전거 도로의 교통표지판을 준수하지 않는 것은 물론, 과속 및 보도 난입으로 보행자의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 게다가 술을 마시고 자전거를 타는 등 공공질서를 지키지 않아 다른 자전거 이용자까지 불편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한강변과 외부 도로 사이에는 자전거 도로가 나 있다. 이 때문에 보행자는 자전거 도로를 건너야만 한강변에 있는 공원이나 보도를 이용할 수 있다. 사람이나 자전거 수가 적으면 사고가 날 확률이 극히 낮겠지만 주말의 한강공원은 나들이객으로 꽉 차 있었고, 자전거들이 끊임없이 자전거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의 이용객 현황에 따르면 3월 한 달간 한강공원 자전거 이용객은 총 147만7278명으로 2월 88만8555명에 비해 크게 늘었다. 날씨가 풀리고 자전거 도로가 정비돼 자전거 이용 환경이 좋아졌기 때문. 게다가 서울시의 자전거 대여 사업인 ‘따릉이’ 덕에 한강공원에 드나드는 자전거 이용 인구도 매년 늘고 있다. 지난해 3월에는 자전거 이용객이 약 128만 명이었지만 올해는 그보다 20만 명가량 늘어났다.
“공원에 신호등 없는 차도가 있는 격”
이처럼 매주 한강변이 자전거로 붐비다 보니 자전거 도로에는 횡단보도가 그려져 있다. 자전거 이용자와 보행자의 충돌을 막기 위해서다. 횡단보도 전방에는 ‘서행’ 표지판이, 횡단보도 바로 앞에는 ‘멈춤’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신호등이 따로 없으니 자전거 이용자가 속도를 줄여 사고를 예방하자는 취지다. 특히 사람으로 붐비는 공원 앞 자전거 도로의 횡단보도에는 ‘우선멈춤’이라는 글씨가 크게 쓰여 있다.그러나 5월 6, 7일 이틀간 한강 자전거 도로를 지켜본 결과 단 한 대의 자전거도 횡단보도 앞에서 서지 않았다. 연인과 함께 한강에 소풍을 나온 서울 마포구 윤모(28) 씨의 호소다.
“공원에서 뛰어노는 아이도 많은데 웬만하면 서행하거나 횡단보도 앞에서 멈춰줬으면 좋겠어요. 2시간째 공원에 있는데 자전거 도로에서 아찔한 광경을 열 번 넘게 본 것 같아요.”
특히 보행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것은 질주하는 자전거들이다. 서울 금천구의 박모(27) 씨는 “한강 외곽의 보도와 공원 사이에 만들어진 왕복 1차선 자전거 도로에는 신호등이 없다. 횡단보도가 있지만 그 앞에서 속도를 줄이는 자전거가 드물어 도로를 건널 때마다 부딪힐까 봐 무섭다”고 밝혔다. 이 때문일까. 자전거 도로 곳곳에는 시속 20km 미만 주행을 당부하는 표지판이 서 있었다. 과속에 따른 충돌사고를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일부 자전거 이용자는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빠른 속도로 자전거 도로를 달렸다.
자전거 이용자에게도 빠르게 달리는 자전거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찾은 김모(24) 씨는 “간혹 무리를 지어 주행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속도가 빠른 데다 자전거 간 간격도 좁아 자칫 사고가 나면 연쇄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간혹 이들에게 추월당하면 사고에 휘말릴까 싶어 일부러 속도를 줄여 안전거리를 확보한다”고 말했다.
일부 자전거 폭주족은 시민들이 쉬는 한강공원 안으로 자전거를 타고 들어오기도 한다. 이들은 대부분 공원 내부 공터를 달리며 자전거 묘기를 뽐낸다. 주말을 맞아 가족과 함께 한강공원을 찾은 신모(35·여) 씨는 “공원 근처에 자전거 묘기를 연습하는 공간이 따로 있는데도 왜 공원 안까지 들어와 민폐를 끼치는지 모르겠다”며 눈살을 찌푸렸다.
보도 난입에 음주운전까지
실제로 한강공원 일대에서 일어나는 안전사고 대다수가 자전거로 인해 발생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안호영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받은 2012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한강공원, 운동장 사고 현황’ 통계에 따르면 4년간 한강공원에서 일어난 전체 사고 1959건 중 1173건(약 60%)이 자전거 관련 사고였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관계자는 “2015년부터 자전거 관련 사고를 막고자 자전거 도로 횡단보도 앞에 과속방지턱과 표지판을 설치하는 등 안전시설을 확충해 자전거 관련 사고가 감소하는 추세인 것으로 알고 있다. 올해부터는 ‘자전거·보행자 종합안전대책’ 연구 용역을 발주해 관련 대책을 수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외에도 일부 자전거 이용자가 한강변에서 술을 마신 뒤 자전거를 타는 ‘자전거 음주운전’도 골칫거리다. 5월 7일 저녁 여의도 인근 한강변 편의점 앞 간이 테이블에서는 시민들이 캔맥주를 마시며 해 질 녘의 강바람을 맞고 있었다. 테이블 앞 공터에는 이들이 타고 온 자전거가 죽 늘어서 있었다. 술을 마신 뒤 자전거를 타고 편의점을 빠져나가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
주말마다 자전거를 타려고 한강을 찾는다는 대학생 이호준(26) 씨는 “만취 상태로 자전거에 올라탄 사람이 휘청대다 크게 다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심지어 취기 탓에 보도로 난입하는 경우도 있다. 자전거도 시속 30km 이상 달릴 수 있는 일종의 차인데 많은 사람이 이를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도로교통법 제2조 17항에 따르면 자전거도 차로 간주돼 술을 먹고 안장에 앉는 순간 음주운전 단속 대상이 된다. 하지만 현행법으로는 자전거 음주 이용자에 대한 처벌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같은 법 제44조의 음주운전 처벌 대상 조항에 자동차만 있고 자전거는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2월 자전거 음주 이용자에게 20만 원 이하 과태료를 물리는 법안을 제출했지만 아직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