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게 아내는 단순한 배우자가 아니다. 가장 든든한 참모이자 동지, 그리고 거울이다. 문재인 대통령 곁에는 36년을 함께한 김정숙(63) 여사가 있다. 김 여사는 문 대통령과 두 번의 대선을 치른 끝에 5월 10일 마침내 ‘퍼스트레이디’ 가 됐다.
선거 기간 내내 ‘문재인의 호남특보’를 자처한 김 여사는 이번 대선을 승리로 이끈 대표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호남은 지난해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에게 혹독한 시련을 안겨줬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60%대의 높은 지지율을 안겼다. 이를 두고 지역민들은 “김정숙 여사의 진심이 통한 덕분”이라고 말한다.
김 여사는 2012년 총선을 치르면서 본격적인 정치 내조의 길로 들어섰다. 지난해 추석부터는 매주 화요일 1박2일 일정으로 호남을 찾았다. 올해 설까지는 광주, 설 후에는 전남 섬지역을 훑었다. 광주에서는 호텔 대신 허달재 의재미술관장이 운영하는 ‘춘설헌’에 묵었다. 그다음 날 아침에는 인근 목욕탕을 찾아 ‘문재인 안사람’이라고 밝힌 뒤 마을 주민들과 탕 안에 둘러앉아 솔직한 민심을 들었다. 지난 8개월 동안 김 여사와 전 일정을 소화한 문재인 선거대책위원회(선대위) 유송화 팀장은 “선거 즈음해서는 한 달간 광주에 살다시피 하면서 시민 한 분 한 분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선대위 측에 시민들의 요구사항을 수시로 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효자’ 만든 효부
민심을 살피는 과정에서 김 여사가 가장 중점을 둔 건 바로 ‘어르신 공경’. 어디에 가든 어르신들이 계신 곳을 가장 먼저 찾아가 낮은 자세로 인사드렸다. 고령인구가 많은 도서지역도 여러 번 방문했다. 노인복지회관을 찾아 배식봉사를 하고, 주민들 불편사항을 경청한 뒤 마을회관에서 하룻밤을 묵는 식이었다. 전남 소안도에서는 고(故) 김남두 독립유공자의 며느리인 김양강 할머니에게 도다리쑥국을 직접 끓여드렸다. 이 같은 행보 덕에 김 여사가 다녀가는 곳마다 문재인 대통령은 ‘효자’로 불렸다.하지만 초반에는 호남 전역에 퍼진 ‘반문’(반문재인) 정서에 마음 아파하며 눈물짓는 날도 많았다. 선대위 관계자는 “쓴소리 하시는 분들의 손을 잡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호남 주민들을 진작 찾아뵈었어야 하는데 너무 죄송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밝혔다.
김 여사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도 그간의 애환을 솔직하게 밝혔다. 김 여사는 “2012년 대선에서 낙선하고 처음 광주에 갔을 때 늦은 저녁 아파트 밀집촌을 지나는데 그 불빛 속에서 내가 앓았던 절망감, 상실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지만 이번 대선을 준비하면서 많은 분과 진솔한 얘기를 나누며 서로가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세 기간 김 여사는 타고난 친화력과 명랑한 성격 덕에 ‘유쾌한 정숙 씨’로 불렸다. 서글서글한 인상과 호탕한 웃음으로 문 대통령의 다소 고지식해 보이는 이미지를 보완한다는 평을 받는다. 2015년 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주류-비주류 의원 간 갈등이 폭발하면서 내홍에 휩싸였을 때는 김 여사가 최고위원들을 서울 홍은동 자택으로 초대해 직접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고 샴페인 선물에 손편지까지 건네면서 내조했다.
김 여사의 세련된 옷차림도 유세 기간 화제를 모았다. 채도가 낮은 정중한 슈트 차림으로 지적이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연출했다. 문 대통령의 ‘유세 패션’도 김 여사가 직접 챙겼다. 문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한 이후 백화점 방문을 자제해온 김 여사는 주로 서울 동평화시장에서 옷을 구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여사는 1954년 서울 출생으로 문 대통령보다 한 살 연하다. 숙명여자중·고교를 거쳐 1974년 경희대 성악과에 입학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재수해 경희대 법대 3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그해 대학축제에서 이뤄졌다. 평소 알고 지내던 법대 선배가 프랑스 미남 배우 알랭 들롱을 닮은 친구가 있다며 김 여사에게 문 대통령을 소개시켜준 것. 하지만 김 여사는 당시 문 대통령의 성의 없어 보이는 차림새에 마음이 상했고, 그 길로 두 사람은 캠퍼스에서 만나면 인사 정도만 나누는 사이에 머물렀다고 한다.
애정·충고의 ‘단짠단짠’ 내조법
두 사람이 가까워진 건 이듬해 학내에서 열린 유신 반대시위 현장에서다. 최루탄을 맞아 기절한 문 대통령을 김 여사가 발견하고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면서 사랑이 싹텄다. 김 여사는 유신 반대시위로 문 대통령이 수감됐을 때도, 강제징집돼 특전사에 배치됐을 때도, 사법고시를 준비할 때도 늘 문 대통령의 곁을 지키며 뒷바라지를 했다.
김 여사는 때로는 엉뚱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문 대통령을 웃음 짓게 했다. 문 대통령이 구치소에 수감돼 있을 때는 야구를 좋아하는 문 대통령을 위해 경남고가 전국야구대회에서 우승한 소식이 실린 신문을 가지고 면회를 갔다고 한다. 또 입대 후 첫 면회에 통닭이나 떡 대신 새하얀 안개꽃을 한 아름 들고 가 문 대통령을 당황케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그날 문 대통령은 김 여사의 순진하고 해맑은 모습에 ‘평생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두 사람은 문 대통령이 사법고시에 합격한 이듬해인 1981년 결혼했다. 그때까지 서울시립합창단에서 활동하던 김 여사는 첫아이를 낳고 8개월 됐을 때 남편을 따라 부산으로 내려가면서 음악인의 길을 접었다.
문 대통령은 이번 대선 기간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의 아내를 ‘단짠단짠’(단걸 먹으면 짠 음식이 먹고 싶다는 뜻)이라고 표현했다. 평소 상냥한 모습으로 애정을 쏟지만 남편에게 약이 된다고 생각하면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 문 대통령은 “내가 힘들어 보이면 먼저 ‘와인 한잔하자’며 위로를 건네다가도 호남지역 어르신의 말씀을 전할 때는 가차 없이 잔소리를 퍼붓는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부부는 슬하에 1남 1녀를 뒀다. 장남 준용(35) 씨는 건국대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패션 명문 파슨스스쿨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뒤 강사이자 프로그래머, 미디어 아티스트로 활동 중이다. 딸 다혜(34) 씨는 결혼해 아이를 키우며 평범한 가정주부로 지낸다. 부산에서 회사를 다닌 사위는 결혼 직후 미국 로스쿨 입학을 준비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빈자리였던 영부인의 역할을 김 여사가 어떻게 해낼지 국민의 관심이 쏠린다. 이에 대해 김 여사는 최근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남편이 광화문에서 퇴근한 후 시장에서 국민과 막걸리 한잔할 수 있는 대통령을 꿈꾼다면, 나는 시장에서 편하게 장을 보며 남편이 들을 수 없는 실제 민심을 듣고 이를 가감 없이 전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