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7년 10월 독일 마르틴 루터는 당시 성행하던 면죄부를 비판하며 교회 개혁을 위한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했다. 올해는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해다. 개신교는 한국에 들어온 지 100년 넘는 세월 동안 ‘빛과 소금’으로서 제 역할을 해왔다.
- 하지만 한국 교회의 세속화가 우려되는 현 상황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이 교회 갱신과 회개를 위한 계기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영향력 있는 국내 목회자와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한국 교회가 종교개혁의 뜻을 이어받아 어떻게 새로워지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조명해본다. <편집자 주>
5월 1일 서울 한 호텔에서 만난 이재훈 온누리교회 담임목사(사진)는 “어느 시대든 지도자 한 사람이 바로 서면 조직과 사회를 바꿀 수 있으며, 이를 위해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며 “대한민국이 한 단계 더 발전하려면 교회가 화해와 통합의 중심지가 돼야 한다. 특히 상대방을 헐뜯지 말고 칭찬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진행하는 뜻깊은 행사가 있다면.
“우리 교회가 운영하는 케이블위성방송 CGNTV에서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라는 영화를 제작해 4월 26일 개봉했다. 서 선교사는 독일계 미국인 간호사로 1912년 32세에 광주로 와 고아와 나환자,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조선여성들을 위해 뼛속까지 조선인으로 살다 간 분이다.
종교개혁 세미나, 행사 이벤트도 중요하지만 종교개혁적인 삶을 살았던 분을 기억하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 1년 정도 준비해 영화를 만들었다. 7월에는 루터 종교개혁운동이 시작된 독일 비텐베르크 타운에서 이 영화를 일주일 동안 상영하기로 했다. 부스 이름이 ‘루터와 서서평’이라 더 큰 의미가 있다. 서 선교사의 삶이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한국 교회의 신뢰가 추락하고 있다.
“어느 시대든 지도자 한 사람이 바로 서면 조직이나 국가가 살아난다. 요즘 교회 문제는 지도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도자 몇 명만 바로 서면 교회는 충분히 일어선다. 과거를 되돌아보면 한국 사회가 교회를 믿고 의지하던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대부분이 교회 지도자였고, 민주화 시대에도 기독교인들이 큰 구실을 했다. 사회가 이렇게 혼란해진 데는 교회 책임도 크다고 생각한다.”
▼한국로잔중앙위원회 의장으로서 선교를 중요시한다고.
“로잔위원회는 전 세계 복음주의운동의 중심지다. 세계 각국의 중요 교회 지도자가 선교운동을 하려고 모인 초교파적 기관으로, 전통적인 복음선교운동을 벌이고 있다. 교회 본질은 교회다워지는 것이다. 교회가 사회 변화를 요구하기보다 사회가 교회를 보고 우리도 변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야 한다.”
▼이주민 선교에 특히 관심을 기울인다고.
“우리나라에 탈북민을 포함해 이주민이 200만 명이 넘는다. 이들은 인구절벽 및 저출산-고령화시대에 노동력으로서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이념과 지역 갈등이 큰 흐름이라면, 앞으로는 다문화 갈등이 심각해질 수 있다. 다문화 갈등 예방과 해결은 교회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 교회는 지지난해 경기 안산시에 다문화커뮤니티 M센터를 설립했다. 교회는 다문화 이주민을 받아들이고 품어 이들이 한국을 축복하고 사랑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주민을 고국으로 역파송하는 것도 추진한다고 하는데.
“한국인이 해외에 나가 선교하는 것보다 이주민을 역파송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현재 한국 교계에서 선교사 2만여 명이 해외에 나가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 문화에 적응하고 언어를 배우다 보면 선교활동에 시간이 걸리고 애로를 많이 겪는다. 그런데 한국에 와 있는 이주민 중에는 우수한 인재가 많다. 이들을 잘 교육시키고 훈련시킨 뒤 고국으로 역파송한다면 최고 선교가 될 수 있다.”
▼한국기독교학술원 신임 이사장도 맡았다고.
“온누리교회 사역 책임을 맡은 것도 어깨가 무거운데 요즘 직분이 밀려들고 있다. 하지만 ‘젊을 때 열심히 섬기라’는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소명은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은 아니고, 하기 싫은 일이 오는 것이다. 그래서 명예직이 아니라 진짜 필요한 섬김을 하라는 부르심으로 여기고 있다.”
▼한국기독교학술원은 어떤 곳인가.
“교회가 건강해지려면 신학이 건강해야 한다. 그런데 신학자들도 사회 이슈에 대한 생각이 각각 다르다. 한국기독교학술원에서는 어떤 사안에 대해 성경적 입장이 무엇인지 토론하고 정리해 젊은 신학자나 교회 지도자에게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편 가르기 철폐에 교회가 앞장서야 하지않나.
“교회가 어느 한 파의 일부가 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화해와 통합의 중심지가 돼야 한다. 교회는 어떤 한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올바르지 않으면 얘기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면 지지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이 교회의 진정한 역할이다.”
▼계층 및 빈부 갈등이 심각하다.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사람에 대한 나눔과 배려정신을 가져야 한다. 못 가진 사람은 무조건적인 투쟁을 통해서라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상생은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하루빨리 정신문화가 선진화돼야 한다. 유럽이 복지국가가 된 것은 정신문화가 업그레이드된 영향 덕분이다. 즉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내가 돈을 많이 벌어도 이 돈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청지기 정신’이 필요하다.”
▼한국 교회도 이제는 내실을 다져야 하지않나.
“유럽에서는 교회가 많이 약화됐지만 기독교적 정신은 깊이 뿌리 내렸다. 종교개혁 본고장인 독일이나 유럽은 외형적으로는 종교개혁이 사라진 듯하지만, 그들의 정신문화 속에는 종교개혁 정신이 살아 있다. 우리나라는 교회는 많지만 기독교 문화가 정착하려면 아직 멀었다. 우리 문화, 의식 속에 종교개혁 정신이 스며드는 운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소 기도하는 제목은.
“우리나라가 건강한 사회가 되도록 기도한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확정된 후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사임 연설을 하면서 유머를 구사해 의원들이 한참 웃음 지은 일이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고성이 오가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국민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우리나라는 가능성이 많은 민족이다. 오랜 세월 외세의 침략과 위기 상황에서도 항상 멋지게 역전했다. 대다수 사람이 ‘위기다, 위기다’ 하지만 나는 긍정적으로 본다. 또한 아무리 미워하는 상대방이라 해도 잘하면 잘했다고 하는 문화를 만들었으면 한다. 이것만 실천해도 지금보다 훨씬 좋은 나라가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