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일본 도쿄로 가는 항공편은 김포국제공항(김포공항)과 인천국제공항(인천공항)에서 이용할 수 있다. 서울 광화문역에서 지하철 5호선을 타고 김포공항역까지 가는 데 40분이 걸린다. 요금은 1450원. 플랫폼을 오르내리는 시간과 열차를 기다리는 시간 등을 보태면 대략 1시간 10분이면 서울 강북 중심에서 김포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밟을 수 있다.
광화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울역이 있다. 공항철도 AREX를 타고 서울역에서 인천국제공항역까지 가는 데 일반은 58분, 직통은 43분 걸린다. 요금은 일반 4150원, 직통 8000원. 공항철도는 서울지하철보다 더디게 오니 여타 시간을 보태면 1시간 30여 분 뒤 수속할 수 있다. 그런데 인천공항은 이용자가 너무 많아 출발 2시간 전에는 도착해야 한다. 김포공항은 ‘할랑’하니 30분 전에만 도착해도 수속이 가능하다.
인천공항발(發) 비행기는 전부 일본 혼슈 지바현 나리타국제공항에 내린다. 나리타국제공항에서 가장 빠른 전철인 익스프레스를 타고 도쿄 신주쿠로 가려면 3190엔(약 3만2000원)을 내고 76분간 달려가야 한다. 김포공항발 비행기는 모두 도쿄 하네다공항에 도착하는데, 하네다에서 시나가와(品川)까지 가려면 410엔짜리 게이큐(京急)전철을 타고 13분(쾌특) 또는 20분(급행)만 달리면 된다. 이런 현실에서 당신이 도쿄로 간다면 어느 공항을 이용할 것인가.
김포공항이 ‘손가락만 빤’ 사연
김포공항과 인천공항 간 직선거리는 약 32km이다. 시속 800여km로 나는 비행기에게 32km는 ‘눈 깜짝’하면 지난다. 따라서 두 공항을 이용하는 항공기에 대한 접근관제는 서울지방항공청 한 군데서 하고 있다. 두 공항에서 뜨고 내리는 항공기는 같은 공역(空域)을 사용하는 것. 그런데 북쪽으로는 비행금지구역인 휴전선이 있어 공역이 제한된다. 공역이 포화되면 항공기를 더 받으려 해도 받을 도리가 없다.
인천공항은 이용객이 넘쳐나, 올해 말 오픈을 목표로 제2터미널 공사를 하고 있다. 5조 원이 투입된 대공사다. 반면 김포공항 활용률은 60%대에 머물고 있다. 해외로 가는 길은 인천공항보다 김포공항이 훨씬 더 편리하니 인천으로 몰리는 항공기를 김포로 분산하면, 우리는 5조 원을 쓰지 않고도 여객을 처리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인천공항은 ‘지으면서’ 김포공항은 ‘놀리고’ 있는 것일까.
돈이 남아돌아서? 아니다. 예산은 항상 부족하다. 정답은 ‘인천공항을 동북아 허브로 만든다’는 정책 때문이다. 2001년 인천공항을 개장하면서 우리는 ‘인천은 국제선, 김포는 국내선’으로 한다는 방침을 정했는데, 이는 일본을 따라 한 것이었다. 1978년 나리타국제공항을 개장한 일본은 이곳을 동북아의 중심 공항으로 만들고자 ‘국제선은 나리타, 기존의 하네다는 국내선 전용’으로 돌렸다.
이 때문에 국제선이 없는 일본 중소도시에 사는 사람이 외국으로 가려면 하네다공항으로 날아와 다시 나리타국제공항으로 가야 했다. 옛날엔 두 공항을 잇는 전철이 없어 매우 불편했다. 지금은 1760엔짜리 전철 게이큐가 있지만 92분을 가야 한다. 중소도시에서 출발하는 국내선의 도착 시간이 늦으면 도쿄에서 자야 한다.
인천공항을 개장할 무렵 일본은 적극적으로 ‘지방의 세계화’를 추진했다. 한국, 중국 등 가까운 외국과 협정을 맺어 일본 중소도시로도 국제선 항공기가 들어오게 한 것이다. 그 항로로 한국과 일본의 항공기가 동수(同數)로 취항했는데,얼마 뒤 한국 여객기로 여객이 쏠리는 ‘희한한’ 현상이 일어났다.
이유는 알고 보니 간단했다. 하네다공항에 내려 전철을 갈아타거나 하룻밤을 잔 뒤 나리타국제공항으로 가서 미국이나 유럽행 항공기를 타는 것보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것이 갈아타는 데 훨씬 더 편리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입이 벌어졌고, 인천공항은 급성장했다.
한국은 중국을 상대로도 같은 효과를 올렸다. 2008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크게 확장하기 전까지 베이징 서우두국제공항은 매우 붐볐다. 중국 지방도시에서 국내선을 타고 와 서우두국제공항에서 외국으로 가는 국제선을 갈아타야 하는 승객은 불편했다. 이 불편함이 중국 지방도시와 인천을 잇는 노선이 개설되면서 해소됐다. 서우두국제공항보다 인천공항에서 갈아타는 것이 편리할 뿐 아니라, 가격 면에서도 유리했던 것이다.
국토부와 국회는 일본을 배워라!
항공사는 대부분 자국에서 발생하는 여객으로는 좌석을 채우지 못하기에 환승객을 유치한다. 외국 공항을 이용해야 하고 또 기다려야 하는 환승의 불편함은 저렴한 가격으로 보상했다. 인천공항은 서우두국제공항보다 편리한 데다 요금까지 저렴하다 보니 중국 지방도시 여객이 대거 인천공항으로 몰렸다. 그 덕분에 인천공항과 한국 항공사들은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그러는 사이 국내선 전용으로 고정된 김포공항은 ‘손가락만 빨았다.’
하네다공항 또한 판박이였다. 국제선과 국내선을 구분한 탓에 일본 여객이 대부분 인천공항으로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안 일본은 고민했다. 한중 수교 이듬해인 1993년 이원종 당시 서울시장은 베이징과 도쿄 사이에 자리한 서울을 동북아 중심으로 만들고자 베이징-서울-도쿄를 잇는 ‘베세토(BESETO) 벨트’를 제시했다. 그리고 한중일은 하나의 경제권이 돼갔기에 3국을 오가는 사업가가 급증했다.
서울에서 베이징이나 도쿄까지 비행시간은 1시간 남짓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영인 출신이다. 서울시장 시절 그는 서울 도심에서 인천공항까지 가 비행기를 타는 데 3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낭비라 보고, 김포공항에 일본과 중국으로 가는 노선 신설을 추진했다. 이를 하네다공항이 반겼기에 2003년 김포공항-하네다공항 노선이 만들어졌다. 이어 김포공항과 상하이(훙차오국제공항 · 2007년), 베이징(2011년) 등을 잇는 노선도 만들어졌다. 김포공항은 근거리 국제공항 노릇도 하게 된 것이다.
2010년 이를 본 일본이 선수를 쳤다. 네 번째 활주로를 개장하면서 하네다공항을 국내 겸 근거리 국제공항으로 전환한 것. 그러자 가까운 외국으로 나가려는 일본인 여객들이 바로 하네다공항으로 돌아왔다. 나리타국제공항도 성장했다. 도쿄 도심을 잇는 전철 등이 건설되고 장거리 항공편을 여전히 독점한 덕분이었다. 여객 증가에 맞춰 나리타국제공항은 현재 세 번째 활주로를 짓고 있다.
인천공항의 포화와 김포공항의 쇠퇴를 바라보는 항공 관계자들은 “일본 따라 하기를 왜 지금은 못 하는가”라고 질문한다. 이들은 대략 2000km를 경계로 국제선을 나누면 두 공항이 동반 발전할 것이라고 본다. 서울-홍콩은 대단히 붐비는 항로인데, 거리는 약 2200km이다. 좀 더 적극적인 이들은 서울-홍콩 승객도 김포공항을 이용할 수 있도록 2200km를 경계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하네다공항도 홍콩 노선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인천공항의 근거리 국제선을 전부 없애자는 얘기는 아니다. 현재 인천공항은 국내 지방 손님들을 위해 국내선을 일부 유지하고 있고 있다. 그와 비슷하게 외국 환승객을 위해 오사카, 도쿄, 베이징, 상하이, 다롄(大連) 등의 근거리 국제노선도 유지하게 한다. 그럼 장거리 항로를 통해 인천공항에 도착한 승객은 근거리 항공망을 갈아타고 최종 목적지로 갈 수 있다. 김포공항은 근거리 여행만 하는 승객만 찾게 하는 것이다.
일본이 증명한 이 간단한 분리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국토교통부(국토부)가 ‘인천공항 허브화 전략’을 금과옥조로 여기기 때문이다. 전후 사정을 아는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다. 국회 건설교통위원회가 열리면 이들은 건성으로 “왜 김포를 근거리 국제공항으로 전환하지 못하느냐”는 질문만 던질 뿐이다. 그에 대해 국토부는 “김포공항 주변 주민들의 소음 민원이 많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내놓고는 그냥 넘어가고 있다.
국내선 전용으로 전환한 뒤 김포공항 주변 상권은 크게 위축됐다. 충분히 성장한 인천공항이 포화상태로 몸살을 앓고 있다면 김포공항의 상권을 살리면서 동시에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여객을 처리하는 게 현명한 선택 아닐까. 국토부는 국민 여론이 형성될 때까지는 먼저 깃발을 들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복지부동.
KTX를 운영하는 코레일은 SRT가 개통되자 지난해 말 13년간 유지해온 ‘경부선은 서울역, 호남선은 용산역’ 정책을 파기했다. KTX의 경쟁력은 올라갔고, 소비자도 편리해졌다. 그런데 왜 공항은…?
김포공항 측 “소음 피해 보상할 용의 있다”인천공항은 섬에 건설됐기에 소음 민원이 없어 24시간 이착륙이 가능하다. 이용하는 여객이 적은 한밤중에는 화물기나 환승 승객을 위한 항공기만 띄우고 낮에는 여객기가 이착륙하니 세계적인 공항이 됐다. 그래도 약간의 불편함은 있다.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돌아오는 일부 국적기는 새벽 4시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그런데 서울 도심으로 가는 차편이 없어 5시 반까지는 대합실에서 버텨야 한다. 싱가포르를 비롯해 동남아시아에서 오는 여객기는 조금 나아서 오전 6~7시쯤 인천공항에 착륙한다. 몽골이나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노선을 다니는 국적기가 주로 새벽에 인천공항에 내리는데, 이는 주기(駐機)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다. 김포공항을 비롯해 도심에 가까운 비행장은 주변 주민들의 숙면을 위해 야간에는 항공기 이착륙을 금하고 있다. 따라서 늦은 시간 그곳에 도착한 비행기는 하룻밤을 머물렀다가 떠나야 하는데, 그럼 주기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따라서 항공사들은 비행금지 시간 전 승객을 싣고 출발할 수 있도록 항공편 일정을 짠다.
김포공항은 23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모든 항공기의 이착륙을 금지하는 비행금지 시간을 적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소음 민원 탓에 활주로 인근 소음 지역 주민에게는 1993년부터 약 4000억 원의 보상금을 지불하고 있다. 소음 피해는 창을 열어야 하는 여름철에 특히 심각하다. 그래서 창을 열지 않아도 더위에 견딜 수 있도록 에어컨을 설치해주는 등 지원을 해주고 있다.
근거리 국제공항으로 지정되면 김포공항은 옛 영화를 되찾는다. 비행금지 시간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비행허용 시간대 항공기 급증으로 소음 피해는 늘어난다. 김포공항을 관리하는 한국공항공사 측은 “비행 편수 증가에 따른 소음 피해를 보상할 용의가 있다”고 말한다. 사업자는 보상하겠다는 데 허가권을 쥔 국토교통부는 여론 눈치만 보고 있다. 영혼이 없는 행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