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령이란 말을 아십니까. 흔히 ‘강화도령인가(왜 우두커니 앉았나)’라고 씁니다. 넋 놓고 앉아 있는 사람에게 하는 표현이지요. 이 강화도령은 조선 철종(哲宗·1831~1863)의 별명입니다.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철종, 즉 이원범의 할아버지는 사도세자의 서자(은언군)였고 철종의 아버지는 은언군의 서자였으며 이원범 역시 서자였습니다. 이원범의 아버지와 형이 역모사건에 연루돼 사사를 당한 뒤 그의 가족은 모두 강화도로 유배를 가 왕족 아닌 평민으로 살게 됩니다. 이원범이 13세 때입니다. 이원범은 거기서 5년 동안 허드렛일을 하면서 술 취한 이가 욕지거리를 해도 참아야 하는 역적의 후손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다 헌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당시 대왕대비인 순원왕후와 외척이 어수룩한 이원범을 순원왕후의 양자로 들여 왕위에 올리지요. 훌륭한 왕 후보들을 물리치고 말입니다. 조선 역사상 가장 쇼킹한 사건입니다. 자격이 전혀 없는 이를 왕으로 들이려고 얼마나 많은 언론플레이와 쇼를 했겠습니까. ‘강화도로 이원범을 모시러 갔더니 오색무지개가 펼쳐지고 양들이 몰려와 무릎을 꿇었다’ ‘순원왕후의 꿈에 나타난 아이가 만나보니 딱 이원범이었다’ 등 믿기 어려운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그런데 왜 어리석고 준비되지 않은 이원범을 굳이 왕으로 삼았을까요. 순원왕후 뒤에는 순조-헌종 2대에 걸쳐 왕비를 낸 세도가 안동 김씨 가문이 있었습니다. 순원왕후는 순조의 비이자 안동 김씨 출신으로, 가문의 권세를 유지하고자 영특하고 능력 있는 후보를 배제한 채 쉽게 조종할 수 있는 이원범을 왕으로 삼은 것이지요.
효명세자와 헌종 때도 수렴청정을 한 순원왕후는 철종이 즉위한 뒤 다시 3년간 수렴청정을 합니다. 수렴청정이 끝난 뒤에도 철종은 스스로 뭘 해볼 수 없었습니다. 외척이 모든 힘을 쥐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철종은 ‘내가 이러려고 왕이 됐나’ 자괴감이 들었을 겁니다. 결국 그는 정사를 멀리하고 주색에 빠져 32세에 요절합니다. 영화 ‘군도 : 민란의 시대’의 배경이 바로 이 철종 때입니다. 세도가의 수탈과 횡포가 어찌나 심했던지 온 사방에서 다 들고 일어났으니까요.
당대 양반들은 겉으로 철종을 ‘전하’라고 불렀으나 뒤로는 비웃었습니다. 서자의 서자의 서자 출신에, 배운 것도 아는 것도 없었으니까요. 양반들은 그를 ‘강화도령’이라고 부르며 놀렸지요. ‘강화도령=철종’이라는 인식은 백성에게도 차츰 번져나가 그 뒤로 아무 의지 없이 넋 놓고 있는 사람을 일컬어 강화도령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그럼 이 시대 강화도령은 누구일까요.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요. 우리도 수첩공주를 지도자로 앉혔으니까요. 연설문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고, 남이 적어준 것 외에는 말할 줄도 몰랐습니다. 국정운영도 지인에게 맡기고 국가 재난이 닥쳐도 관저에서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파면됐으나 이제 시작임을 다들 압니다. 무능한 사람을 가장 중요한 자리에 앉힌 이들까지 청산하지 않으면 철종 이후 조선처럼 망국의 길,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김승용은 국어학과 고전문학을 즐기며, 특히 전통문화 탐구와 그 가치의 현대적 재발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속담이 우리 언어문화 속에서 더욱 살찌고 자랄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고자 10년간 자료 수집과 집필 끝에 2016년 ‘우리말 절대지식’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