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제4조는 ‘계약직은 2년까지만, 이후에는 정규직으로 채용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사용자는 이 조항을 ‘2년 단위로 마음껏 계약직을 채용하면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노동자 권익 보호를 위해 만든 규정이 실제로는 노동자를 2년 만 ‘쓰고 버리는’ 근거가 되고 만 것이다.
기간제 근로자, 즉 계약직 노동자에게 2년은 ‘희망고문’ 시간이다. “일 잘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겠다”는 말 한마디에 야간근무와 위험한 업무를 도맡으며 어떻게든 정규직이 되려고 발버둥치다 별다른 이유 없이 버림받는 게 현실. 이런 상황에서 대법원이 주목할 만한 판결을 내놓았다. 11월 10일 대법원은 “계약직이라도 정규직 전환을 기대할 만했다면 계약기간이 끝났더라도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4년간의 지루한 송사 끝에 기간제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을 인정한 것이다.
2년 계약직으로 업무를 시작한 A씨는 계약기간이 만료될 무렵 회사 측으로부터 인사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정규직 전환이 안 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A씨 외 계약이 끝난 다른 직원은 모두 정규직이 된 터였다. A씨는 1차 인사평가에서 최고 등급을 받았는데도 정규직 전환이 안 된 것은 부당하다며 2012년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선 회사가, 중앙노동위원회에선 A씨가 이겼다. 그러자 회사 측은 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1심 행정법원은 또다시 회사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에서는 다시 A씨가 이겼다. 매번 엎치락뒤치락하던 싸움은 결국 대법원에 가서야 결론이 났다. 대법원은 “근로계약이 갱신될 수 있다는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되는 경우 사용자가 부당하게 근로계약 갱신을 거절하는 것은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효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이는 기간제법의 입법 취지와 규정 내용, ‘갱신기대권’ 법리 등을 토대로 일정한 경우 계약직 근로자에게 정규직 전환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이 형성될 수 있고, 이때 사용자가 ‘합리적 이유 없이’ 정규직 전환을 거절하면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효력이 없다는 점을 명시한 최초의 대법원 판결이다. 아울러 기간제법 시행 전은 물론, 시행 후 신규로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도 갱신기대권이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을 원치 않는 회사 측이 갱신기대권을 인정받을 만한 내용을 아예 시행하지 않을 개연성도 있다. 그동안 ‘전환 가능성’을 열어뒀던 회사가 근로계약서나 취업규칙에서 그 가능성을 삭제하고, 아예 인사평가를 시행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법을 악용하는 데서 나아가 판례까지 비켜 가려는 시도를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정당한 기대권을 인정한 판례에만 의지할 게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노동자 처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제대로 된 근로계약서를 쓰는 일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혼자 대응하기는 어려운 만큼 노동조합을 통해 단체교섭을 하는 등 함께 해결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입법적으로는 계약직을 고용할 수 있는 업무와 직종을 제한하는 사용제한 규정을 명백히 하고, 구제 절차를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노동법원을 도입하는 것도 중요하다. 함께 사는 세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