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마쓰 요코의 에세이집 ‘어른의 맛’을 펼쳐 ‘호사의 맛’ ‘잘 익은 맛’ ‘아련한 맛’ ‘별난 맛’ ‘기가 막힌 맛’ ‘깊은 산의 맛’ ‘남자의 맛 여자의 맛’ ‘씹는 맛’ ‘태양의 맛’ ‘기다리는 맛’ ‘따스한 맛’ 목차 사이를 헤매며 열심히 ‘어른의 맛’을 찾았다면 헛수고다. 다만 ‘눈물 나는 맛’ 편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아, 나도 어른이 되었구나 느꼈던 순간이 있었어요. 그건 바로 엄마가 해준 음식이 먹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을 때였어요. 밑도 끝도 없이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누군가의 이야기를 전하며 히라마쓰는 이렇게 덧붙인다.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어렸을 때 먹었던 엄마의 맛. 어른에게는 혼자 무릎을 끌어안고 조용히 흐느끼게 될 때가 있다.”
‘음식’과 ‘맛’ 사이에 사람을 연결하는 글쓰기. 히라마쓰의 ‘어른의 맛’에 담긴 이야기 64편에는 각각 단편소설처럼 묵직한 인생이 맛깔스럽게 녹아 있다. 음식과 맛에 대한 기가 막힌 비유와 정확한 레시피 외에도 뛰어난 계절 감각이 이야기의 맛을 더한다. 이런 식이다. “가을은 시간이 빨리 가는데도 그 뒤로 시간이 충분히 있다.” 그리고 이 계절에 그가 왜 ‘흩뿌림초밥(지라시스시)’을 만드는지 가만히 추억을 끌어낸다.
“음식은 맛이 전부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푸드칼럼니스트가 있다. 윤덕노의 신작 ‘전쟁사에서 건진 별미들’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탄생한 음식 이야기다. 6·25전쟁 중 먹을거리가 궁하던 서민들이 먹기 시작한 아귀찜과 부대찌개, 베트남전쟁을 계기로 난민들에 의해 퍼져 나간 베트남 쌀국수,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의 각기병 치료용으로 보급된 카레라이스 등이 주인공이다. 특히 ‘건빵과 별사탕’ 편에서 남자라면 한 번쯤 군대 시절을 추억할 듯하다.
그러나 변죽만 울리지 말고 접시라도 핥아야 맛을 알 것 아닌가. 이제 무엇을 먹을까. 어디로 갈까. 박정배의 ‘푸드 인 더 시티’는 ‘주간동아’에 연재 중인 맛집들을 지역별로 정리한 책이다. 포항 과메기, 장흥 된장물회, 제주 돼지두루치기, 서울 설렁탕, 부산 돼지국밥. 그 맛을 제대로 내는 집이 어디인지 콕 집어준다. 단순히 식당 소개에 머물지 않고 왜 전라도에는 피순대 문화가 다른 지역보다 강하게 남아 있을까, 통영의 다찌 문화와 마산의 통술집, 진주의 실비집 같은 독특한 음식 문화는 어떻게 탄생하고 변형돼 오늘날까지 이어져왔을까 같은 궁금증도 함께 풀어준다.
먹는 이야기가 정겨운 책 한 권 더. ‘수짱’ 시리즈로 유명한 일본 만화가 마스다 미리의 신작 ‘너의 곁에서’다. 이 책의 주제는 ‘숲’이지만 이야기 곳곳에 일본의 최상급 간식거리가 줄줄이 등장한다. 나무 그늘에 자리 펴고 앉아 가족, 친구들과 오손도손 먹고 싶어지는 것들이다.
한국의 일본 일본의 한국
허문명 외 13명 지음/ 은행나무/ 380쪽/ 1만6000원
‘동아일보’가 2015년 한일 수교 50년을 맞아 기획한 ‘수교 50년, 교류 2000년-한일, 새로운 이웃을 향해’ 시리즈를 책으로 엮었다. 1부 ‘일본 안의 백제를 가다’, 2부 ‘일본에 뿌리 내린 한반도 문화를 찾아’, 3부 ‘조선 통신사의 길을 따라서’에서 알 수 있듯 14명의 기자가 일본 열도에 남아 있는 한반도 도래인들의 숨결을 찾아 나섰다. 2015년 서재필언론문화상, 2016년 일한문화교류기금상을 수상했다.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전 3권
조영남 지음/ 민음사/ 1권 558쪽 2만5000원, 2권 364쪽 2만2000원, 3권 439쪽 2만3000원
‘중국은 어떻게 개혁·개방에 성공했을까’라는 질문에 저자는 정치학자로서 세 가지 원인을 꼽는다. 덩샤오핑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정치 리더십, 효과적인 정치제도 수립과 유능한 당정 간부의 충원, 적절하고 실현 가능한 개혁 전략과 정책의 선택. 1권 ‘개혁과 개방’, 2권 ‘파벌과 투쟁’, 3권 ‘톈안먼 사건’으로 구성된 이 시리즈는 1976년 마오쩌둥의 사망부터 92년 공산당 14차 당대회까지 다뤘다.
위대한 작가가 되는 법
찰스 부코스키 지음/ 황소연 옮김/ 민음사/ 152쪽/ 1만 원
‘“당신은 훌륭한 작가요.” 그는/ 말했다, “하지만 인간으로선/ 아주/ 개차반이야!”’(‘유명한 시인을 만나다’ 중에서) 한 편의 콩트를 읽는 듯하지만 이건 시다. ‘어떤 보호막도 겉치장도 없는 궁극의 자연스러움’이라는 시인의 말대로 그의 시는 거침없이 달린다. ‘나이 따위, 혜성처럼 나타나는 천재들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 맥주나 더 마신다/ 점점 더 많이’(‘위대한 작가가 되는 법’ 중에서). 이 시집에서 열정 가득한 미치광이를 만날 수 있다.
천재와 괴짜들의 일본 과학사
고토 히데키 지음/ 허태성 옮김/ 부키/ 432쪽/ 1만8000원
일본에서 스물다섯 번째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는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자신도 모르게 ‘일본은 받는데 우리는 왜 못 받나’라는 물음이 튀어나온다. 신경생리학자이자 과학저술가인 저자가 일본 과학의 힘을 분석했다. 1854년 개국으로 후쿠자와 유키치가 과학 보급에 나선 이래 2012년 야마나카 신야가 열여섯 번째로 과학 분야 노벨상을 받기까지 일본 과학자들의 150여 년 분투기.
생각과 착각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392쪽/ 1만5000원
“왜 ‘먹고 싶은 요리 다 시켜! 난 짜장면’이라고 말하는 직장 상사가 많은가”(이중구속). “왜 어떤 네티즌들은 악플에 모든 것을 거는가”(자기효능감). “왜 멀쩡한 사람도 예비군복을 입으면 태도가 불량해지는가”(몰개성화). 우리는 대체로 자신의 생각이 합리적이라고 믿지만 거기에는 수많은 착각과 오류가 공존한다. 이러한 착각과 오류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자신의 생각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
가치관의 탄생
이언 모리스 지음/ 이재경 옮김/ 반니/ 201쪽/ 2만2000원
고고학자인 저자는 ‘공평, 공정, 사랑과 증오, 위해 방지, 신성한 것에 대한 합의’ 같은 기본 가치가 10만 년 전쯤 출현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기본 가치는 인간의 생물학적 진화에 따라 크고 빠른 뇌를 확보하면서 생겨났고, 결국 인간의 지력이 문화 발명과 재발명을 가능케 했다. ‘에너지 획득 방식에 따른 인간 가치관의 변화’를 주장하는 모리스의 이론에 대한 또 다른 학자 4명의 논평도 수록했다. 2010년 출간돼 화제를 모은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의 후속작.
우리말 절대지식:천만년을 버텨갈 우리 속담의 품격
김승용 지음/ 동아시아/ 600쪽/ 2만5000원
‘가까운 무당보다 먼 데 무당이 영하다’는 속담에는 평소 친근한 것은 결점만 보이고, 반대로 멀리 있거나 잘 모르는 것은 좋은 줄로만 안다는 뜻이 담겨 있다. ‘제 골 명창 없다’도 같은 의미로 쓰인다. 10년간 3091개 속담을 수집해 정리하고 302장 도판으로 이해를 도왔다. ‘가난한 상주 방갓 대가리 같다’는 속담에서 ‘방갓’이 무엇인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용선생의 시끌벅적 한국사 전 10권
금현진 외 7인 지음/ 이우일 그림/ 사회평론/ 각 권 240~340쪽/ 1~5권 각 1만3800원, 6~10권 각 1만4800원
출간 4년 만에 100만 부가 팔린 어린이 역사 베스트셀러의 전면 개정판이 나왔다. 이번 책에는 2015~2016년 개편된 초등 5, 6학년 사회교과서 내용을 반영하고 최근 역사학계 연구 성과와 사회적 이슈, 최신 통계를 소개했다. 예를 들어 2012년 중국 지안시에서 발견된 고구려비의 실물과 탁본 사진을 볼 수 있으며, 고대 국가의 발전 계기를 왕권 강화보다 사회, 경제 변화로 설명하는 등 다양한 해석과 관점을 보여준다.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