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것들’은 제목이 예언적이다. 프랑스 원제목도 ‘미래(L’Avenir)’다. 누구에게나 닥쳐올 일이란 뜻일 테다. 우리의 미래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프랑스 중견감독 미아 한센 러브는 우리 삶의 후반부에서 만나게 되는 피할 수 없는 일들을 가족 멜로드라마의 틀 속에서 간결하게 펼치고 있다. 멜로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음악도 가급적 제한하고, 그 대신 흐린 하늘, 나뭇잎소리, 비 오는 소리 등으로 감정을 보완하는 식이다. 마치 풍경화처럼 화면은 많은 말을 참고 은밀히 속내를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은 고교 철학교사인 나탈리(이자벨 위페르 분)다. 영화는 나탈리가 가족과 함께 남편 고향인 프랑스 북부 브르타뉴 해변을 찾아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제법 강한 바람이 불고 있고, 하늘은 잔뜩 흐린 채 간혹 비를 뿌린다. 큰딸과 아들은 이제 막 10대에 이른 것 같다. 네 명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프랑스 낭만주의 작가 샤토브리앙의 묘 앞에 선다. 이곳은 샤토브리앙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는 죽어서도 땅 끝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바람소리를 듣기를 원했다. 묘비에는 ‘파도와 바람소리만을 듣고자 했다’는 ‘영원한 방랑자’ 샤토브리앙의 유언이 적혀 있다. 초가을 쌀쌀한 바람이 부는 바닷가에선 묘비명처럼 파도와 바람소리만 들린다. 아마 나탈리의 미래가 바다 끝에서 고독하게 맞는, 파도와 바람일 거라는 암시일 테다. 더 나아가 ‘다가오는 것들’에 따르면, 우리의 ‘미래’는 흐린 하늘에 간혹 비가 내리고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부는 날이라는 뜻이리라.
영화 ‘다가오는 것들’이 주목하는 점은 삶의 후반기에 경험하는 소중한 것들과의 이별이다. 먼저 25년간 함께 살았던 남편이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도 철학교사다. 특히 칸트의 맑고 정직한 윤리를 강조하던 남자다. 성장한 아이들은 이미 떠났고, 나탈리는 졸지에 혼자 남는다. 철학책으로 빽빽하던 서가에서 남편의 책들이 빠져나가 숭숭 빈 공간이 생겼는데, 나탈리의 지금 처지가 후줄근해진 서가 같다. 나탈리는 사람이 대개 그렇듯, 이게 원치 않는 이별의 첫 신호인지 잘 모른다.
‘다가오는 것들’이 가장 강조하는 슬픔은 어머니, 제자와의 이별이다. 외로움에 늘 자살소동을 일으키던 유일한 혈육인 나탈리의 어머니가 결국 그렇게도 가기 싫어하던 요양소에서 죽는다. 이때 영화에선 처음으로 음악이 나온다. 슈베르트의 가곡 ‘물 위에서 노래한다(Auf dem Wasser zu singen)’로, 시간의 흐름을 안타깝게 여기는 내용이다. 자식처럼 아끼던 제자는 나탈리와 철학적으로 갈라서고(그의 반론은 나탈리의 가슴에 상처를 낸다), 또 자기의 연인을 찾아 떠난다. 영화 후반부에서 제자와 헤어진 뒤 눈으로 덮인 길을 나탈리가 혼자 걸을 때 영국 가수 도노반의 ‘깊은 평화(Deep Peace)’가 마치 진혼곡처럼 연주된다. ‘다가오는 것들’은 삶의 후반부에서 소중한 대상일수록 더 큰 상처를 남기고 떠난다는 ‘평범한’ 사실을 냉정하게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