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창비가 ‘창작과비평’ 창간 5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공부의 시대’ 연속 특강은 1000명 정원에 신청자 1만 명이 몰릴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먹고살기에도 버거운 시대, 대학 입시와 취업이라는 관문을 통과한 이후 공부라는 말만 들어도 넌더리가 난다는 사람들이 새삼 ‘공부(工夫)’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창비는 공부라는 단어를 새롭게 정의한다. 세상의 겉과 안을 동시에 바라보는 일, 더불어 나의 바깥을 이해하는 일, 타인과 함께 사회를 고민하는 일, 읽고 쓰고 말함으로써 참여하는 일. 이것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짜 공부’다.
‘공부의 시대’ 시리즈는 강만길, 김영란, 유시민, 정혜신, 진중권 등 5명의 특강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강만길의 공부 이야기는 1940년 소학교에서 일본어로 일본역사를 배우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중학교에 가서야 비로소 ‘단군’이 등장하는 ‘국사’책을 처음 접하고 6·25전쟁이 한창이던 52년 고려대 사학과에 입학해 식민지배시대의 공부와 해방 후의 공부가 무엇이 다른지 깨닫는 과정을 소개한다. 그러나 언제까지 식민사학 극복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해방후시대’ 대신 ‘분단시대’라는 용어를 처음 쓰기 시작했는데, 분단시대가 끝나는 시점은 ‘민족통일시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해방 후 분단체제에 안주하려는 것이 보수적 노선이라면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적으로 통일해야 한다는 것이 진보적 노선”이라며 이를 좌우 편 가르기로 몰아가는 현실은 역사 교육이 잘못된 탓이 아닌가 자책하기도 한다.
김영란에게는 늘 한국 최초 여성 대법관이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니지만, 정작 자신이 평생 해온 것은 ‘쓸모없는 책 읽기’라고 고백한다. 공부로 얻은 지식을 어디에 쓸 것인가를 따진다면 ‘쓸모없음’이지만,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자신을 찾는 과정이었다면 결국 그것처럼 인생에 ‘쓸모 있음’도 없다는 내용이다. 그 쓸모 있는 책이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아씨들’부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까지 다양한 문학작품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정계 은퇴 후 전업작가로 돌아온 유시민의 강연은 ‘공감필법(共感筆法)’이라는 책 제목을 충실히 반영한다. ‘남이 쓴 글에 깊이 감정을 이입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가상의 독자에게 감정을 이입하면서 글을 쓸 수 있다’로 요약할 수 있다. 진료실보다 현장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은 정신과의사 정혜신은 책 제목을 ‘사람 공부’라고 한 까닭에 대해 “사람에 가까워질수록 의사로서 실력은 폭발적으로 늘고, 사람이 될수록 탁월한 치유자는 절로 된다”고 말한다. ‘진중권의 테크노 인문학의 구상’은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우리 삶을 바꾸고 있다면 인문학이 다뤄야 할 주제도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디지털시대를 ‘파타피직스(pataphysics)’ ‘호모루덴스의 귀환’ ‘노동이 유희가 되는 사회’로 설명하고 이에 맞게 인문학은 “세계의 해석학에서 제작학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한 명
김숨 지음/ 현대문학/ 288쪽/ 1만3000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저자의 아홉 번째 장편소설. 20만 명이 강제 동원됐고 그중 2만 명만 살아 돌아왔지만, 이제는 생존자가 1명인 시점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강가에서 다슬기를 잡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갔던 열세 살 ‘풍길’이 어느 날 TV에서 공식적인 위안부 피해자가 1명밖에 남지 않았다는 뉴스를 접하고 지금까지 숨겨왔던 자신의 존재를 밝히기로 결심한다.
엄청나게 복잡하고 끔찍하게 재밌는 문제들
토마스 포비 지음/ 권혜승 옮김/ 반니/ 468쪽/ 2만4000원
기하학, 수학, 정역학, 동역학, 원운동, 단진동운동, 영구운동, 전기, 중력, 광학, 열, 추정. 이 단어들을 보자마자 책을 덮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영국 옥스퍼드대 공학과 교수이자 입학면접관인 저자가 자신의 전공인 물리학과 수학 분야에서 호기심을 북돋우거나 실제 대학 입시에서 사용되는 표준적인 문제들을 골라 소개했다. 대부분 저자가 직접 만든 문제라고.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허경 지음/ 길밖의길/ 140쪽/ 6000원
세월호 침몰, 가습기 살균제 피해, 강남역 묻지 마 살인, 구의역 사고 등 지금 한국 사회에 ‘이해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합리성의 기준(외연)이 달라지면 지금까지 합리적으로 보였던 일들이 이제는 ‘비합리적인 일’이자 용납될 수 없는 일이 된다. 무엇이 문제인가. 저자는 헬조선이 진짜 헬조선인 이유는 내 삶의 고유 영역을 남들이 함부로 재단하거나 심판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열일곱 살의 욕망 연습
안광복 지음/ 사계절/ 224쪽/ 1만2800원
“행복해지고 싶어요”와 “성공해야죠”는 같은 의미일까. 고교 철학교사로 ‘일상에서 철학하기’를 실천해온 저자가 “꿈이 뭐냐”는 질문 앞에서 당혹스러워하는 10대들에게 철학 처방전을 내민다. 그는 우리 삶을 이끄는 것은 꿈의 다른 이름인 ‘욕망’이며, 그 욕망을 키우고 지속하기 위한 실천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나의 핵심 덕목 찾기, 나의 이름 짓기, 인생 스토리 파악하기 등 구체적인 실천 항목도 제시하고 있다.
내게 사막은 인생의 지도이다
남영호 지음/ 세종서적/ 328쪽/ 1만5000원
사진가 남영호가 탐험가가 된 것은 2006년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면서부터다. 이어 세계 10대 사막 무동력 횡단을 목표로 중국 타클라마칸 사막, 몽골 고비 사막, 호주 그레이트빅토리아 사막, 깁슨 사막, 그레이트샌디 사막, 아라비아 엠프티쿼터 사막, 미국 그레이트베이슨 사막, 멕시코 치와와 사막,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을 원정했다. 이 책은 정복자의 기록이 아니라, 고독과 간절함 사이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해가는 과정의 이야기다.
혐오 발언
주디스 버틀러 지음/ 유민석 옮김/ 알렙/ 372쪽/ 1만8000원
페미니스트이자 철학자인 저자가 혐오 발언, 포르노그래피, 동성애자의 자기 선언, 십자가 소각, 국가 검열 문제 등 다양한 형태의 ‘상처를 주는 말들’을 다뤘다. 예를 들어 ‘검둥이(nigger)’ ‘스페인놈(spick)’처럼 차별적 의미가 담긴 혐오 발언들을 법적으로 규제한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저자는 무엇이 혐오 발언인지 아닌지를 국가가 자의적, 편파적으로 해석하고 결정하는 것이 오히려 또 다른 혐오 발언을 생산한다고 주장한다.
열일곱, 괴테처럼
임하연 지음/ 쌤앤파커스/ 312쪽/ 1만5000원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국제변호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당차게 밝히던 아이는 특목고 입시에 실패한 뒤 전형적인 엘리트 길을 접었다. 학교 공부 대신 1000권 넘는 책을 읽었고, 어려서부터 꾸준히 독학으로 6개 국어를 익혔다. 이후 괴테의 18세기 인문교육에 매료돼 고교 2학년이 되던 해 자퇴해 독자적인 르네상스식 공부법으로 미국 대학에 진학했다. 열여섯부터 스무 살까지 치열하게 살았던 시기의 자서전이자 독창적인 공부법 안내서.
또 다른 호주를 보다
권순혜 지음/ 퓨어웨이픽처스 출판부/ 389쪽/ 1만9000원
한국인 유학생 2만5000여 명, 워킹홀리데이 참가자 2만 명. 하지만 이들은 호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갔을까. 호주에서 중고교와 대학을 나온 뒤 변호사가 된 저자가 성공적인 호주 유학을 위한 안내서를 썼다. 전반부는 호주 교육제도와 공부법, 법대생의 취업 팁 등 소소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후반부는 다문화사회인 호주의 역사와 자연, 문화, 산업, 정치까지 폭넓게 기술했다.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