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일스’는 재즈 음악계의 전설 마일스 데이비스의 ‘전기영화(Bio-Pic)’다. 아마도 재즈 팬에겐 데이비스에 관한 영화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반가운 소식일 테다. 음악가 관련 전기영화는 수없이 만들어졌지만, ‘재즈의 왕’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데이비스를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는 없었다. 그와 관련해 영화적으로 유명한 작품은 프랑스 루이 말 감독의 ‘사형대의 엘리베이터’(1958)다. 여기서 데이비스가 음악을 담당했는데, 거의 즉흥적으로 연주한 트럼펫 사운드는 재즈 팬에겐 그의 최고 연주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마일스’의 감독 겸 주연인 돈 치들은 코미디 배우로 더 유명하다. 이번이 감독 데뷔작이다. 그는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오션스 시리즈’에서 자의식 가득한 흑인 멤버로 나와 강한 인상을 남겼다. 뭐든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흑인이기 때문에 차별받아서 그런 거라고 불평하는 탄약 전문가였다. 그 배역은 물론 패러디이지만, 치들의 인종적 자의식을 짐작게 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 자신의 음악적 영웅이자 ‘흑인’ 음악가의 영웅이기도 한 마일스 데이비스의 전기영화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영화 ‘마일스’가 강조하는 것은 전성기 시절 데이비스의 ‘영웅적’ 활약이 아니다. 데이비스는 1970년대 중반 약 5년간 은둔생활을 했는데 영화는 바로 그 시절, 곧 ‘암흑기’를 다룬다.
‘마일스’에 따르면 그때 데이비스는 거의 폐인처럼 살았다. 지금도 팬들에겐 ‘의문의 은둔’으로 남아 있는 그 기간 데이비스는 마약과 섹스의 포로가 돼 방탕하게 살았다. 말하자면 ‘마일스’는 자신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삶이 ‘천재’에겐 마치 피할 수 없는 운명인 양 묘사하고 있다. 종종 냉철한 철학자 같던 데이비스의 평소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삶의 시궁창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재의 파괴적인 삶은 과거 전 부인과의 사랑과 비교된다. 현재가 위험하면 할수록 과거는 꿈처럼 달콤하게 전개된다. 게다가 과거가 회상될 때면 데이비스의 걸작이 끝없이 연주된다. 특히 전 부인과의 결혼생활과 겹치는 ‘컬럼비아레코드 시대’(대략 1955~75년) 발표작이 중요하게 쓰이고 있다. 이를테면 쿨재즈의 걸작으로 남은 앨범 ‘Kind Of Blue’(1959)의 ‘So What’, 피아니스트 길 에번스와 협연한 것으로 유명한 앨범 ‘Sketches Of Spain’(1960)의 ‘Solea’ 같은 곡들이다.
사실 지금도 할리우드에선 주인공과 주요 인물이 모두 흑인인 영화를 잘 만들지 못한다. 투자에서부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재즈의 전설인 데이비스 관련 전기영화가 이제야 발표된 데는 이 같은 영화 제작의 현실적 문제도 이유가 됐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치들의 ‘마일스’는 반가운 소식이다. 데이비스가 5년의 암흑기 끝에 마침내 무대에 돌아오는 장면은 ‘왕의 귀환’처럼 화려하게 표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