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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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구단주에 인수된 첼시, 유망주 장기 계약으로 EPL 새바람

[위클리 해축] 美 억만장자의 새로운 투자처가 된 축구… MLB 경영시스템 확산

  • 박찬하 스포티비·KBS 축구 해설위원

    입력2025-11-0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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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드 볼리 첼시 공동 구단주 겸 회장. GETTYIMAGES

    토드 볼리 첼시 공동 구단주 겸 회장. GETTYIMAGES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를 비롯한 유럽축구에도 큰 변화를 몰고 왔다. 특히 대러시아 제재 여파로 구단주가 바뀐 첼시가 직격탄을 맞았다. 현 첼시를 만들어낸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의 퇴장은 해당 팀뿐 아니라, 유럽축구의 패러다임을 통째로 바꿔버렸다.

    아브라모비치는 첼시에 구단주 이상의 의미를 가진 인물이다. 런던 연고임에도 성적과 인기 모두 ‘그럭저럭’이던 첼시를 인수해 모든 대회에서 우승을 노리는 팀으로 탈바꿈시켰기 때문이다. 그의 손에서 첼시는 약 19년간 리그 우승 5회, UEFA 챔피언스리그 2회, FA컵 5회 등 굵직한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아브라모비치와 갑작스레 이별한 첼시는 몇 개월 만에 미국 자본으로 넘어갔다. 첼시는 2022년 5월 미국 재벌 토드 볼리가 이끄는 투자 컨소시엄에 인수됐다. 볼리는 메이저리그베이스볼(MLB) LA 다저스 구단주이기도 하다.

    아브라모비치와의 갑작스러운 이별

    최근 미국 억만장자들에게 축구가 새로운 투자처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EPL뿐 아니라 자국 리그인 메이저리그사커(MLS), 이탈리아, 브라질 등 대륙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꽤 많은 투자금이 흘러들어가고 있다. 당연히 아브라모비치가 인수할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구단이 된 첼시는 매력적인 매물이었다. 볼리는 과거 첼시 인수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적도 있다. 

    아브라모비치를 두고 첼시 선수단에 너무 많이 개입한다거나 감독을 충동적으로 경질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브라모비치가 없었다면 지금의 첼시는 없었기에 갑작스러운 구단주 변화에 기대보다 걱정이 따랐다. 더구나 볼리를 비롯한 새 수뇌부는 MLB, NBA(미국프로농구), NFL(미국풋볼리그) 등 미국 스포츠에는 능통하지만 축구에는 문외한이라는 점도 우려를 키웠다. 

    역시나 처음에는 축구를 모르는 미국인들의 기묘한 경영 방식이 문제가 됐다. 구단을 장악한 수뇌부는 철저히 미국 방식으로 유럽 축구단을 운영하려 했다. 미래 성적을 담보할 특급 유망주를 받는 트레이드 시도가 대표적이다. 이는 미국 스포츠에선 흔한 팀 운영이지만 유럽축구에서는 아주 생소한 형태다.



    다행히 새 수뇌부는 잉글랜드에 도착하자마자 몇 번의 실패를 맛봤고 빠르게 유럽축구 시스템을 이해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유럽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던 미국 방식을 적절히 접목하기 시작했다. 볼리를 비롯한 컨소시엄은 첼시에 입성하기 전부터 그 나름 시나리오를 수립했다. 투자처를 첼시에만 국한하지 않고 확대하는 게 뼈대다. 다른 리그, 다른 팀까지 인수해 MLS의 마이너리그와 비슷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2023년 프랑스 RC 스트라스부르를 인수한 것도 이 계획의 일환이다. 일종의 ‘팜(farm)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가능성 있는 유망주를 영입하고 선수 육성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첼시는 새로운 구단주의 등장과 함께 파격적인 선수 영입 행보를 보였다. 즉시 전력감이든, 유망주든 나이가 어려야 첼시의 스카우트 레이더망에 들어왔다. 유망주는 10대 선수가 대부분이고, 즉시 전력감이라도 20대 초반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선수들을 영입해 기존 유럽축구계에서는 행하지 않던 7~8년, 심지어 9년짜리 초장기 계약을 맺는 것이다. 첼시 모이세스 카이세도의 계약 기간은 8년, 엔소 페르난데스는 9년, 콜 파머는 7년에 달한다. 

    첼시의 모이세스 카이세도(왼쪽)와 엔소 페르난데스. 뉴시스

    첼시의 모이세스 카이세도(왼쪽)와 엔소 페르난데스. 뉴시스

    선수 영입 선순환 구조 정착

    기존 EPL 구단들은 거액의 이적료를 들여 선수를 영입하면서도 길어야 5년 정도 계약을 맺는 게 일반적이었다. 첼시는 달랐다. 이미 미국 스포츠계에선 초장기 계약이 너무나 익숙한 관행이다. 이런 방식에는 회계상 이점도 있다. 이적료를 많이 줘도 계약 기간이 길면 회계 장부상 1년 지출 금액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가령 같은 이적료 1000억 원이어도 5년 계약이면 한 해 200억 원, 10년이면 100억 원 지출로 간주된다. 쉽게 말하면 장기 할부 같은 개념이다. 

    첼시는 돈을 많이 벌어들이는 구단이지만 그만큼 지출도 많다. 축구장 건설 계획도 있는 데다, 전 세계 유망주들을 쓸어 담는 정책을 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초장기 계약, 저연봉 정책을 구단 운영 기조로 삼은 것이다. 다만 이적료를 회계 장부에 7~8년씩 나눠서 기재하는 방식은 편법으로 간주돼 곧바로 UEFA와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으로부터 철퇴를 맞았다. 이제는 아무리 긴 계약을 맺어도 이적료는 회계상 5년까지만 인정된다. 

    미국 수뇌부의 새로운 첼시 운영 방식은 수십 년간 자리 잡아온 유럽축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신호탄이 되고 있다. 아직까지는 미국식 방식이 이렇다 할 문제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 선수를 많이 영입하는 방식인 만큼 다른 팀에 이적시켜 엄청난 이적료 이익을 얻고, 또 새로운 선수를 영입하는 선순환 구조다. 젊은 선수들도 이를 알고 첼시를 선택한다. 몇 년 뒤 초장기 계약자들의 활약상이 궁금해질 따름이다. 20대 선수를 30대까지 붙들어놓은 첼시의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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