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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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천적 자존감 아크의 ‘awesome’

[미묘의 케이팝 내비]

  • 미묘 대중음악평론가

    입력2025-08-03 09: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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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대 힙합과 일본적 요소를 결합한 신곡 ‘awesome’을 선보인 보이그룹 ‘아크(ARrC)’. 미스틱스토리 제공

    2000년대 힙합과 일본적 요소를 결합한 신곡 ‘awesome’을 선보인 보이그룹 ‘아크(ARrC)’. 미스틱스토리 제공

    7인조 보이그룹 ‘아크(ARrC)’의 신곡 ‘awesome’ 뮤직비디오는 강렬한 이미지의 충돌이 먼저 눈에 띈다. 디스코 사운드의 인트로와 함께 일본 학원 폭력물 영화처럼 시작된다. 불량한 학생들이 폐허로 만들어버린 학교, 테러 대상이 된 듯한 교사, 과장되게 개조한 오토바이와 폭주족, 그리고 검도장…. 오컬트적 장면이 쏟아진다. 특히 흥미로운 건 도깨비 같은 모습을 한 존재들이다. 여러 문화를 혼합한 것이라고 밝히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일본 전통극 ‘노(能)’를 연상케 한다. 검은 배경에 일본어로 거칠게 휘갈긴 붓글씨가 등장할 때면 자못 긴장감이 느껴진다. 다만 그 내용은 “맛있게 드세요, 성장기에는 우유” “검도장에서는 발을 깨끗이” 같은 귀엽기까지 한 것들이다.

    노래는 불행에 굴하지 않고 낙천적인 마음으로 넘어서겠다는 메시지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한다. “이어폰 한쪽 사라져도 awesome” “어차피 이미 다 엎어진 물 유쾌하게” 같은 가사들이 귀에 꽂힌다. 2000년대 힙합을 전면에 내세운 비트와 래핑은 기세 좋게 흐른다. 이후 보컬 파트가 차분한 위로처럼 들어설 때는 카메라가 전혀 다른 공간을 비춘다. 붉은 벽돌, 반지하 창문 등 한국의 낙후된 주택가다. 딱히 고난의 공간 같지는 않다. 힙합풍 그라피티가 그려져 있고, 노변에는 패브릭 카우치가 놓여 있어 오히려 힙합의 ‘게토 로망’을 패러디한 것만 같다.

    인정투쟁 내려놓고 즐기기

    미스틱스토리 소속인 아크는 지난해 7월 데뷔한 신인 그룹이다. 데뷔곡 ‘dummy’부터 특징적인 건 이들이 R&B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K팝 댄스곡에서 R&B는 유려한 감성, 정서적 이입이 필요할 때 끌어오는 대상이다. 다만 아크의 R&B 보컬 파트는 멜로디가 어디로 흐르는지 길을 잃게 만든다. 안심케 하기보다 충격과 환상을 제공하는, 좀 더 공격적인 용도다. ‘awesome’도 비슷하다. R&B가 발돋움처럼 작용해 활기찬 랩 파트를 더 친근하게 들리도록 한다.

    그간 K팝에서 랩은 ‘진짜 힙합’보다 부족한 것으로 여겨졌고, 그래서인지 ‘인정받아야 한다’는 의지가 강한 영역이었다. 더 본격적으로 ‘실력파’이면서 ‘트렌디’해야만 했다. 다만 최근 몇 년간 K팝은 이런 콤플렉스를 조금 내려놓은 것 같다. 힙합을 자유롭게 인용하거나 패러디하기도 하고, 인정투쟁하기 보다 노래와 콘셉트 안에서 도구적으로 잘 사용하면 된다는 분위기가 엿보인다. ‘awesome’의 랩이 즐겁고 씩씩하게 들리는 것도 25년 전 지누션처럼 어떻게 들릴지를 두려워하지 않는 영향이 분명 있다.

    뮤직비디오가 일본풍을 끌어온 방식도 비슷한 결 같다. 일본적 요소를 차용할 때 ‘너무 일본풍’이면 안 된다는 게 K팝의 금기 중 하나였다면 이 곡은 그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내용도 도깨비들이 한국의 낙후된 아파트에서 공포물처럼 등장해 멤버들과 사이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이를 한일관계 화해 주장으로 해석한다면 과하겠다. 다만 어떤 해석이 제기되더라도 유쾌하게 받아넘길 수 있으려면 상당한 자존감을 필요로 한다. 한국과 일본, 힙합과 K팝, 과거와 혁신이 이만큼 어지럽게 뒤엉킨 채로 말하는 낙천은, 더 큰 울림을 주는 패기가 아닐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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