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 바비큐와 잘 어울리는 렉스 골리앗 와인들(왼쪽). 렉스 골리앗 인형을 마주 보고 있는 와인메이커 마크 퍼거슨.[사진 제공 · 김상미] [사진 제공 · 길진인터내셔날]
중세시대 토스카나에서는 피렌체와 시에나 간 영토 싸움이 치열했다. 당시 피렌체의 상징은 검은 수탉, 시에나는 흰 수탉이었는데 피렌체가 더 많은 땅을 차지하면서 검은 수탉은 승리의 상징이 됐다. 지금은 이 수탉이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의 심벌로서 전통과 품질을 대변하고 있다.
미국에도 전설적인 닭이 있다. 20세기 초 텍사스의 한 서커스단에서 활약한 렉스 골리앗(Rex-Goliath)이라는 거대한 수탉이다. 몸무게가 21kg이나 되는 렉스 골리앗은 거구를 뽐내면서도 성격이 온순하고 쾌활해 큰 사랑을 받았다. 교통이 불편하던 당시에도 미국 전역에서 많은 사람이 렉스 골리앗을 보려고 수만 마일을 달려왔다고 하니 렉스 골리앗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100년이 지난 지금, 수탉 렉스 골리앗이 와이너리 ‘렉스 골리앗’으로 되살아났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한 와이너리 이름과 와인에 ‘렉스 골리앗’이 붙은 것. 부담 없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와인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심지어 이 와이너리는 텍사스 서커스단 현수막에 있던 수탉 렉스 골리앗의 그림을 레이블 이미지로 활용하고 있다.
렉스 골리앗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
렉스 골리앗은 다양한 포도 품종으로 총 17가지 와인을 생산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샤르도네, 메를로, 카베르네 소비뇽 등 3종이 수입되고 있다. 샤르도네는 밝은 레몬색과 열대 과일향이 매력적이다. 묵직하면서도 질감이 매끄럽고 맛이 상큼해 해산물이나 닭 요리와 두루 잘 어울린다. 메를로는 무게감과 산도가 적당하고 자두 같은 붉은 과일 맛이 난다. 매콤한 향도 약간 있어 삼겹살 또는 소시지 바비큐와 즐기기에 좋다. 카베르네 소비뇽은 묵직하면서도 과일향이 진하고 타닌이 부드러워 쇠고기 요리와 잘 맞는다.
상황과 음식에 맞춰 와인을 고를 줄 알아야 진정한 와인 애호가다. 여름 보양식이나 바비큐를 가족 또는 친구와 유쾌하게 나누는 자리에 천천히 음미하며 즐기는 고급 와인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럴 때야말로 렉스 골리앗처럼 2만 원 정도에 구매할 수 있는 부담 없는 와인이 제격이다.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와인 렉스 골리앗은 보통 사람을 위한 소박한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