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대표하는 작품을 볼까요. 반만 년 전 고조선과 비슷한 시기 메소포타미아에는 수메르 민족이 세운 우르크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맨 위 작품의 왼쪽 남자가 우르크 왕 길가메시(Gilgamesh)입니다.
높이가 4.3m에 이르는 엄청난 크기의 길가메시 조각을 통해 우리는 수천 년 전 탁월한 문명을 남기고 사라진 수메르 민족의 모습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수메르는 ‘검은 머리의 사람들’이란 의미라고 합니다. 이 작품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양쪽 어깨 위에 봉처럼 둥글게 꼰 헤어스타일과 얼굴 폭만큼 큰 직사각형의 장식적인 수염입니다. 이런 스타일은 길가메시 오른쪽에 있는, 사람 얼굴을 한 짐승 라마수(Lamassu)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길가메시의 팔과 어깨, 의복에서도 장식적인 요소가 나타납니다. 양팔에 손목시계 형태의 팔찌와 완식(腕飾)이 표현돼 있고, 옷자락 끝단에 빗살무늬처럼 규칙적인 선들이 음각돼 있습니다.
길가메시의 얼굴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고 발은 옆으로 걸어가는 모습이어서 마치 이집트 벽화를 보는 듯합니다. 머리는 큰 편이고 불교 인왕(금강역사)상처럼 왕방울 같은 눈을 부릅뜬 채 아래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울퉁불퉁한 종아리 근육, 굵고 단단한 두 팔을 통해 길가메시의 건장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왼팔로는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동물의 왕 사자의 목을 조르고 있고, 오른손으로는 뱀을 움켜쥐고 흡족한 마음으로 기념촬영을 하는 것 같습니다. 뱀은 길가메시의 영생(永生)을 빼앗은 존재이기에 더욱 꽉 잡고 있는 듯합니다. 이 조각은 당시 가장 강력한 인간, 위대한 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길가메시는 하늘의 신 어머니와 우르크 왕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3분의 2는 신이고, 3분의 1은 인간입니다. 혈기왕성한 젊은 나이에 지나치게 거만하고 난폭해 남성들은 무력으로, 여성들은 초야권으로 괴롭혔다고 합니다. 참다못한 우르크 백성들이 신들에게 도움을 청하자, 진흙으로 산양(山羊)처럼 생긴 강력한 엔키두(Enkidu)를 만들어 길가메시와 싸우게 합니다. 그러나 둘은 싸우다 지쳐서 나중에는 친구가 됩니다. 이때 길가메시를 유혹하기 위해 미(美)와 사랑의 여신 이슈타르(Ishtar)가 구애를 하지만 참담하게 거절당하죠. 이에 화가 난 이슈타르가 하늘의 들소, 라마수를 풀어 복수하려 하나 이 또한 길가메시가 단숨에 제압합니다. 맨 위 작품 오른쪽 조각이 바로 그 라마수입니다. 얼굴은 사람인데 몸은 들소이고, 하늘에서 내려와 날개가 있습니다. 각도에 따라 앞에서는 4개, 옆에서는 5개의 다리로 보이는 것은 착시현상을 이용하는 초현실주의 작가 패트릭 휴스(Patrick Hughes)를 연상케 합니다. 라마수는 이집트 스핑크스와 유사한 반인반수의 존재로 큰 성벽 입구를 지키는 석상(石像) 모습으로 많이 제작됐으나 제국주의 시대에 열강들이 엄청난 공력으로 반출해가 지금은 루브르박물관, 영국박물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페르가몬미술관 등에 뿔뿔이 흩어져 안전하게 보관돼 있습니다. 반면, 현지에 남아 있던 라마수 석상들은 최근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의해 파괴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길가메시와 엔키두, 이슈타르와 라마수에 관한 이야기는 수메르인들이 발명한 진흙글씨(설형문자)로 기록된, 세계 최초 대서사시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수천 년간 잊힌 이야기를 19세기 서양의 한 학자가 우연히 발견했죠. 이것이 ‘길가메시 서사시’로, 인간의 삶과 죽음의 의미, 홍수설화 등 성경과 관련된 이야기가 담겨 있어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단군신화에 비견될 수 있는 길가메시 이야기는 최근 일본이 게임 콘텐츠로 개발했고, 각국이 다양한 문화상품으로 응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