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발생한 테러가 유럽을 또다시 뒤흔들고 있다.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3월 22일 자행한 브뤼셀 자벤템국제공항과 지하철 말베이크역에서의 자살 폭탄테러 공격으로 수십 명이 사망하자, 벨기에는 물론 유럽 각국이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이번 테러 공격은 지난해 11월 13일 무고한 시민 130명이 희생된 프랑스 파리 테러와 닮은꼴이다. 역시 민간인이 많이 모이는 공항과 지하철역을 노렸다.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이른바 ‘소프트 타깃’ 테러로 공포심을 극대화하는 것이 주요 목표다.
유럽연합(EU) 28개 회원국 정상들이 브뤼셀 테러 발생 직후 몇 시간 만에 “개방된 민주주의 사회에 대한 공격”이라며 긴급히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도 공포심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하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였다. EU 정상들은 “이번 테러는 관용이라는 유럽의 가치를 지키려는 우리의 의지를 강화할 뿐”라면서 “EU는 단결해 증오와 폭력적 극단주의, 테러에 결연히 맞서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렇듯 발 빠른 반(反)테러리즘 공동성명 발표는 매우 이례적이다.
이와 함께 브뤼셀 테러는 테러조직들이 유럽 곳곳에서 비밀리에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도 증명했다. 과거에는 하나의 테러조직이 적발될 경우 다른 테러 조직이 잠수하곤 했지만, 이제는 한 조직이 붕괴돼도 다른 조직이 대규모 공격을 감행할 만큼 견고한 네트워크를 갖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조직력을 가능케 한 요인 가운데 하나는 EU 내에서 자유통행을 보장하는 솅겐조약이다. 솅겐조약에는 EU 28개 회원국 가운데 22개국과 스위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 등 비(非)EU 4개국이 가입했다. 외국인은 솅겐조약의 한 가입국에서 비자를 받으면 검문·검색 없이 다른 가입국들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 유럽으로 이민을 오거나 난민으로 들어온 무슬림은 솅겐조약에 따라 그동안 자유롭게 가입국을 왕래해왔다. 이들에 대한 검문·검색은 전혀 없었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할 때 테러 방지 실패의 책임을 벨기에 측에만 묻기도 어렵다. 토마스 데메지에르 독일 내무부 장관이 “(테러를 사전 예방하지 못한 것은) 벨기에 때문이 아니라 유럽 내 이동의 자유 때문”이라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마뉘엘 발스 프랑스 총리 역시 “브뤼셀 테러는 벨기에뿐 아니라 이동의 자유를 초석으로 삼은 EU 모든 회원국의 취약점을 악용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유럽은 이제 IS가 가공할 만한 상시 공격 능력을 갖췄을 가능성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브뤼셀 테러는 솅겐조약을 다시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국제정치 컨설팅업체 유라시아그룹의 이언 브레머 사장은 “파리 테러로 솅겐조약이 국가안보 문제가 됐고, 브뤼셀 테러 역시 같은 범주에 속한다”고 지적했다. 국제정보업체 스트랫포의 아드리아노 보소니 유럽 문제 애널리스트도 “EU 회원국들은 자국 안보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앞으로 국경을 통제하는 방안을 도입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솅겐조약에 따르면 가입국은 긴급한 경우 6개월간 국경을 통제할 수 있다. 일부 가입국은 이 기간을 2년으로 늘릴 것을 주장하고 있다. 현재 분위기를 볼 때 국경 통제 기간은 2년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사실상 솅겐조약 폐기나 다름없는 결과다. 솅겐조약을 폐기할 경우 각종 수출입 통로가 막힐 뿐 아니라, 출퇴근을 위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던 EU 시민 1700만여 명의 이동도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한 손실액만 10년간 1100억 유로(약 146조3400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게다가 영국의 EU 탈퇴를 뜻하는 브렉시트(Brexit)에도 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 6월 국민투표가 예정된 가운데 브렉시트에 찬성하는 영국독립당은 “EU 회원국 유지는 영국을 더 위험한 상황으로 밀어 넣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EU 잔류를 강조해온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의 정치적 입지는 위태롭게 됐다.
가장 주목할 점은 유럽에서의 잇단 테러 공격을 통해 ‘이슬람 대 기독교’의 종교전쟁으로 몰고 가려는 IS의 의도다. 이번 테러 직후 이들이 ‘칼리프의 전사들이 이슬람과 싸우는 십자군 국가 벨기에를 공격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점도 이런 맥락이다. 유럽의 극우 정치인들 역시 증오의 막말을 서슴지 않고 있다.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는 “브뤼셀 테러는 이슬람의 야만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증오는 증오를 낳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브뤼셀 테러는 파리 테러와 함께 이슬라모포비아(Islamophobia·이슬람 혐오증)를 더욱 확산하는 계기가 될 게 분명해 보인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경우 더 많은 무슬림 젊은이가 극단주의에 빠지면서 IS에 가담할 가능성 역시 높아질 것이다.
브뤼셀의 EU 본부 앞에는 ‘유럽통합의 아버지’라 부르는 로베르 쉬망 프랑스 외무부 장관의 기념비가 있다. 테러가 발생한 말베이크역에서 수백m 거리다. 1950년 5월 9일(EU는 이날을 ‘유럽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쉬망이 “유럽은 뭉쳐야 산다”면서 주창했던 ‘하나의 유럽’이라는 이상이 테러 앞에 흔들리고 있다. 브뤼셀을 타깃으로 삼은 IS의 의도가 효과를 발휘하는 셈이다.
유럽연합(EU) 28개 회원국 정상들이 브뤼셀 테러 발생 직후 몇 시간 만에 “개방된 민주주의 사회에 대한 공격”이라며 긴급히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도 공포심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하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였다. EU 정상들은 “이번 테러는 관용이라는 유럽의 가치를 지키려는 우리의 의지를 강화할 뿐”라면서 “EU는 단결해 증오와 폭력적 극단주의, 테러에 결연히 맞서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렇듯 발 빠른 반(反)테러리즘 공동성명 발표는 매우 이례적이다.
알면서도 막지 못했다
IS는 무엇보다 ‘유럽의 수도’라는 말을 들어온 브뤼셀을 테러 대상으로 삼아 유럽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이미지를 부각하는 데 성공했다. 유럽 각국의 허술한 보안 태세가 브뤼셀 테러를 막지 못했다는 것. 벨기에 수사당국은 이번 테러에 앞서 3월 18일 파리 테러의 주범이자 IS 조직원인 살라 압데슬람(26)을 체포한 바 있다. 압데슬람은 브뤼셀에서 동쪽으로 1.5km 떨어진 몰렌베이크에 은신해 있었다. 전체 인구 10만 명인 몰렌베이크는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벨기에 수사당국은 지난 4개월간 이곳에 숨어 있던 압데슬람을 찾아내지 못했다. 압데슬람이 벨기에 수사당국에 새로운 테러를 감행할 것을 모의했다고 밝혔지만, 당국은 결국 테러를 막지 못했다.이와 함께 브뤼셀 테러는 테러조직들이 유럽 곳곳에서 비밀리에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도 증명했다. 과거에는 하나의 테러조직이 적발될 경우 다른 테러 조직이 잠수하곤 했지만, 이제는 한 조직이 붕괴돼도 다른 조직이 대규모 공격을 감행할 만큼 견고한 네트워크를 갖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조직력을 가능케 한 요인 가운데 하나는 EU 내에서 자유통행을 보장하는 솅겐조약이다. 솅겐조약에는 EU 28개 회원국 가운데 22개국과 스위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 등 비(非)EU 4개국이 가입했다. 외국인은 솅겐조약의 한 가입국에서 비자를 받으면 검문·검색 없이 다른 가입국들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 유럽으로 이민을 오거나 난민으로 들어온 무슬림은 솅겐조약에 따라 그동안 자유롭게 가입국을 왕래해왔다. 이들에 대한 검문·검색은 전혀 없었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할 때 테러 방지 실패의 책임을 벨기에 측에만 묻기도 어렵다. 토마스 데메지에르 독일 내무부 장관이 “(테러를 사전 예방하지 못한 것은) 벨기에 때문이 아니라 유럽 내 이동의 자유 때문”이라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마뉘엘 발스 프랑스 총리 역시 “브뤼셀 테러는 벨기에뿐 아니라 이동의 자유를 초석으로 삼은 EU 모든 회원국의 취약점을 악용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유럽은 이제 IS가 가공할 만한 상시 공격 능력을 갖췄을 가능성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브뤼셀 테러는 솅겐조약을 다시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국제정치 컨설팅업체 유라시아그룹의 이언 브레머 사장은 “파리 테러로 솅겐조약이 국가안보 문제가 됐고, 브뤼셀 테러 역시 같은 범주에 속한다”고 지적했다. 국제정보업체 스트랫포의 아드리아노 보소니 유럽 문제 애널리스트도 “EU 회원국들은 자국 안보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앞으로 국경을 통제하는 방안을 도입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솅겐조약에 따르면 가입국은 긴급한 경우 6개월간 국경을 통제할 수 있다. 일부 가입국은 이 기간을 2년으로 늘릴 것을 주장하고 있다. 현재 분위기를 볼 때 국경 통제 기간은 2년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사실상 솅겐조약 폐기나 다름없는 결과다. 솅겐조약을 폐기할 경우 각종 수출입 통로가 막힐 뿐 아니라, 출퇴근을 위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던 EU 시민 1700만여 명의 이동도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한 손실액만 10년간 1100억 유로(약 146조3400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쉬망의 이상 좌절하나
후폭풍의 또 다른 축은 난민 통제 강화다. 테러리스트들이 난민에 섞여 입국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테러리즘분석센터에 따르면 현재까지 프랑스에서만 2030명이 IS에 합류했고 영국(1600명), 독일(800명), 벨기에(534명)가 뒤를 이었다. 이들 중 절반은 본국으로 되돌아올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테러에 가담한다면 난민을 적극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된다. 그가 이끄는 집권여당 기민당 역시 내년 총선에서 고전할 게 분명하다.게다가 영국의 EU 탈퇴를 뜻하는 브렉시트(Brexit)에도 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 6월 국민투표가 예정된 가운데 브렉시트에 찬성하는 영국독립당은 “EU 회원국 유지는 영국을 더 위험한 상황으로 밀어 넣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EU 잔류를 강조해온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의 정치적 입지는 위태롭게 됐다.
가장 주목할 점은 유럽에서의 잇단 테러 공격을 통해 ‘이슬람 대 기독교’의 종교전쟁으로 몰고 가려는 IS의 의도다. 이번 테러 직후 이들이 ‘칼리프의 전사들이 이슬람과 싸우는 십자군 국가 벨기에를 공격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점도 이런 맥락이다. 유럽의 극우 정치인들 역시 증오의 막말을 서슴지 않고 있다.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는 “브뤼셀 테러는 이슬람의 야만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증오는 증오를 낳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브뤼셀 테러는 파리 테러와 함께 이슬라모포비아(Islamophobia·이슬람 혐오증)를 더욱 확산하는 계기가 될 게 분명해 보인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경우 더 많은 무슬림 젊은이가 극단주의에 빠지면서 IS에 가담할 가능성 역시 높아질 것이다.
브뤼셀의 EU 본부 앞에는 ‘유럽통합의 아버지’라 부르는 로베르 쉬망 프랑스 외무부 장관의 기념비가 있다. 테러가 발생한 말베이크역에서 수백m 거리다. 1950년 5월 9일(EU는 이날을 ‘유럽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쉬망이 “유럽은 뭉쳐야 산다”면서 주창했던 ‘하나의 유럽’이라는 이상이 테러 앞에 흔들리고 있다. 브뤼셀을 타깃으로 삼은 IS의 의도가 효과를 발휘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