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9월 14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중견기업집단의 내부거래 현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법 위반 혐의 포착 시 신속히 조사해 시정하겠다”고 밝혔다. [뉴스1]
한기정 “중견기업집단, 적극적 감시 필요”
기업집단감시국(당시 기업집단국)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7년 대기업의 내부거래와 부당 지원, 사익 편취 감시를 목표로 출범했다. 일선 조사 업무를 맡은 내부거래감시과와 부당지원감시과를 거느린 점에서 옛 조사국의 부활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올해 6월 공정위는 호반건설이 김상열 회장의 장남·차남이 각각 소유한 호반건설주택과 호반산업, 17개 자회사 등을 부당 지원하고 공공택지 ‘벌떼 입찰’을 했다며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608억 원을 잠정 부과했다. 이 과정에서 현장조사를 주도한 곳이 부당지원감시과다. 내부거래감시과는 2021년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삼성웰스토리에 사내급식 일감을 몰아준 의혹과 관련해 현장조사를 벌여 계열사 5곳에 과징금 2349억 원을 부과한 바 있다.재계에서 공정위의 현장조사는 검찰의 압수수색에 비견된다. 공정거래법 관련 사건을 다수 수임한 한 변호사는 “공정위 현장조사는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이뤄지는 압수수색은 아니지만, 기업이 뚜렷한 명분 없이 조사를 거부했다가는 공정거래법상 조사방해로 처벌받을 수 있기에 그 위력이 막강하다”고 말했다. 현장조사 결과 중대한 범법 혐의가 드러날 경우 공정위 측 고발로 검찰수사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공정위가 포착한 오뚜기와 광동제약의 부당내부거래 혐의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이번 현장조사의 구체적 배경과 현재까지 드러난 혐의에 관한 질문에 공정위 관계자는 9월 20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답변하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오뚜기와 광동제약 측도 “조사에 성실히 협조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2017년 지배구조 평가 D등급 받은 오뚜기
함영준 오뚜기 회장. [뉴시스, 오뚜기 제공]
지배구조, 일감 몰아주기 의혹이 제기되자 오뚜기는 수년에 걸쳐 개선에 나섰다. 오뚜기는 △2017년 오뚜기에스에프, 상미식품, 풍림피앤피 물적분할 △2018년 상미식품지주, 풍림피앤피지주 흡수합병 △2021년 오뚜기라면 물적분할 △2022년 오뚜기라면지주와 오뚜기물류서비스지주 흡수합병 등을 통해 지배구조를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일각에서는 오뚜기 지배구조 개편이 함 회장의 장남 함윤식 씨로의 3세 승계를 위한 행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미성년자 시절 오뚜기 지분 2.04%를 갖고 있던 함 씨는 2017~2022년 그룹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지분율을 2.79%로 끌어올렸다. 함 씨가 보유한 자회사 지분 매각, 오뚜기와 자회사 간 흡수합병 같은 방법을 통해서다. 이 과정에서 오뚜기는 함 씨가 대주주였던 오뚜기에스에프지주의 자회사 오뚜기에스에프에 주는 일감을 2019년 약 289억 원에서 이듬해 406억 원가량으로 늘렸다. 오뚜기에스에프의 기업가치를 높임으로써 함 씨 지분을 고가에 사들인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오뚜기와 오너 일가의 인척이 대표로 있는 회사 간 거래도 관심 대상이다. 창업주의 첫째 사위가 이끄는 식품제조업체 ‘면사랑’은 지난해 매출 1400억 원 중 15%인 약 213억 원을 오뚜기와의 거래에서 거뒀다. 창업주의 둘째 사위가 대표인 ‘풍림푸드’는 함 회장이 2대 주주로 있는데, 지난해 내부거래 비율이 28% 이상이었다.
광동제약, 추석 앞두고 영업정지 처분
최성원 광동제약 부회장. [광동제약 제공]
그간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주로 단속해온 공정위가 중견기업 조사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이에 대해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을 지낸 조명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기업의 부당 지원, 일감 몰아주기는 지속적인 단속과 사회적 지탄 속에서 상당 부분 개선된 반면, 중견기업은 감독 사각지대로 남아 있었다”며 “중견기업이 경영 투명성을 키울 수 있도록 적절히 감독하는 것이 경제와 기업문화 발전을 위해 필요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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