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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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억→4억’ 반값 매물 속출, 역전세난까지 덮친 전세시장

금리인상에 따른 이자 부담에 계약갱신권 행사 겹쳐 전세 수요 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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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입력2022-12-1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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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강남구 아파트 단지 일대. [뉴스1]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강남구 아파트 단지 일대. [뉴스1]

    직장인 김 모(28) 씨는 9월 서울 관악구에 들어선 신축 대단지 아파트 ‘힐스테이트관악뉴포레’ 82㎡(이하 전용면적) 전세를 알아보다 그만뒀다. 적정 전세가를 두고 집주인과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다른 집주인들이 이미 비슷한 가격으로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며 전세금 5억 원을 요구했다. 부동산공인중개사 역시 “전세 매물이 별로 남지 않았고, 매매가를 고려할 때 5억 원 이상으로 전세가가 떨어질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며 계약을 부추겼다. 하지만 김 씨는 “전세가가 더 떨어지면 다시 고려하겠다”며 거절했다.

    “세입자 못 구해 월세로 돌렸다”

    한 달 후 김 씨는 부동산공인중개사로부터 전세 계약을 권유하는 전화를 받았지만 하락폭이 기대에 미치지 않아 다시금 거부했다. 한 달이 더 지나자 전세가가 10% 하락한 동일 면적의 전세 매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김 씨는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는 만큼 전세가가 더 떨어질 것으로 판단하고 계약하지 않았는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전세시장이 한겨울을 맞았다. 전세가 하락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지방과 수도권 외곽에서는 2년 전 계약 당시보다 전세 시세가 더 내려가는 ‘역전세난’도 나타났다.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부동산시장이 바짝 얼어붙은 가운데 내년 수도권 아파트 입주 물량이 올해와 비슷한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전세가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지난달 입주를 시작한 서울 마포구 아현동 ‘마포더클래시’는 12월 8일 기준 658채가 전세 매물로 나와 있다. 전체 가구수 물량(1419채)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다. 입주 초기 전세 호가가 59㎡ 8억 원, 82㎡는 11억 원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최근 호가가 각각 4억 원, 5억 원으로 내려왔다. 역전세난에 대한 우려가 퍼진 가운데 집주인 사이에서 전세 계약 체결 경쟁이 벌어져 호가가 급락했기 때문이다. 내년 3월 입주가 예정된 3375채 대단지 ‘개포자이프레지던스’ 역시 860여 채 전세 매물이 쏟아지면서 임차인 구하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사정이 나은 임대인은 전세를 월세로 돌리며 대응하는 중이다. 서울에서 임대사업을 하는 이 모(64) 씨는 “원룸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아 일부 전세를 월세로 돌렸다. 전세금 상환을 위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는데 이자가 너무 높아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당장 급한 불은 껐는데 내년도 무사히 보낼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전세 보증금이 상대적으로 거액인 아파트 임대인은 월세 전환마저 쉽지 않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1월 28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가는 직전 주 대비 0.89% 하락했다.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12년 5월 이후 최대 하락폭이다. 성북구(-1.19%), 은평구(-1.05%) 등 외곽 지역은 물론 서초구(-1.1%), 송파구(-0.98%) 등 인기 지역도 하락하면서 시장에 충격을 더했다. 같은 기간 수도권 아파트 전세가는 0.95% 하락했는데 인천 낙폭이 -1.05%로 두드러졌다. 정부가 이달부터 무주택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50%로 일원화하는 등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을 펴고 있지만 전세, 매매 시장 반응은 냉담하다.

    전문가들은 고금리 정책 등 여파로 부동산시장이 빙하기처럼 얼어붙었다는 의견이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금리인상에 따른 전세 대출이자 부담 확대와 역전세 우려 등으로 월세 전환이 지속되는 가운데 계약갱신권 행사로 전세 수요가 급감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부동산R114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11월까지 동일 단지 내 동일 면적에서 전세계약이 1건 이상 체결된 4200건을 사례로 분석한 결과 평균 전세가가 지난해보다 낮아진 경우는 2534건으로 전체의 60.54%에 달했다. 전세가 하락 현상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기준금리 3.5%서 그칠까

    문제는 내년까지 고금리 정책이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올해 한국은행의 급격한 금리인상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에 따라 반강제적으로 추진된 측면이 있다. 미 연준은 인플레이션 억제를 이유로 올해 기준금리를 0.0~0.25%에서 3.75~4.00%로 급격히 인상했다. 한국은행 역시 같은 기간 기준금리를 1.25%에서 3.25%로 올렸다. 연준이 고금리 정책을 펼치면 한국은행 역시 외화 유출을 막기 위해 금리를 인상할 수밖에 없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1월 30일 미국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불확실성이 많지만 상황이 예상대로 흘러간다면 금리인상을 아마도 3.5% 안팎에서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기준금리가 3.25%임을 고려할 때 사실상 한 차례 더 0.25%p 올린 후 금리인상을 마무리할 계획임을 밝힌 것이다. 다만 “미 연준의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인 만큼 고금리 기조는 좀 더 오래 지속될 수도 있다.

    시장은 연준이 내년 기준금리를 5%대로 인상한 후 한동안 이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앞서 6월 16일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p 인상) 발표 후 기자회견에서 “만약 당신이 집을 사려는 사람이거나 집을 알아보고 있는 젊은이라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역전세난이 과거 역전세난보다 가혹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임대차 3법이라는 대내적 요인과 전 세계적인 유동성 회수 국면이 맞물린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이현철 아파트사이클연구소 소장은 “임대차 3법이 시행되면서 전세가 급등 장세가 펼쳐졌는데, 마침 재계약 시기가 금리인상 시기와 맞물리면서 피해가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2020년 7월 집권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세입자에게 계약갱신권을 줘 ‘2+2년’ 거주를 보장하고, 재계약할 경우 기존 전월세의 5% 이상을 올리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법 시행을 앞두고 집주인들이 전월세 가격을 급격히 올리면서 도리어 전월세 가격이 상승하는 부작용이 나타난 바 있다(그래프 참조).

    이 소장은 “새로운 제도가 자리 잡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인 만큼 마땅한 대책을 마련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고금리 기조가 정점을 찍고, 임대차 3법 이후 전세 계약이 한 사이클을 도는 내후년이 돼야 역전세 문제가 약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3년 대규모 입주 예정에 긴장

    내년 대규모 입주 일정이 예정된 것 역시 전세시장에 찬물을 끼얹을 것으로 전망된다. 부동산 수요가 얼어붙은 가운데, 공급 물량이 도리어 늘어나면서 역전세 현상이 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내년 수도권 아파트 입주 물량은 17만8274채로 올해와 비슷한 규모다(표 참조). 서울의 경우 입주 물량이 소폭 증가하는데, 이 중 강남 4구(서초구·강남구·송파구·강동구) 입주 예정 물량이 올해보다 3배 이상 증가한 1만2402채에 달한다.

    내년 3월 3375채 규모의 ‘개포자이프레지던스’ 입주가 예정된 가운데 인근 ‘개포디에이치아너힐즈’ 59㎡ 호가가 12억 원에서 8억 원 상당으로 떨어지는 일도 발생한 상황이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은 11월 ‘역전세난과 주택가격 변화의 시사점’ 보고서를 내면서 “신규 주택 입주 물량이 올 연말부터 증가할 전망이라서 역전세난과 주택 가격 하락을 촉진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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