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2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금리인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스1]
고물가·고환율·고금리, 이른바 ‘3고(高) 현상’에 기업 경영 환경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고물가에 따른 내수경기 침체, 고환율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 고금리에 따른 이자비용 증가로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대기업마저 실적에 ‘적신호’가 켜졌다. 대기업은 줄줄이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하고 기존 투자 계획을 수정하고 있다. 중소기업, 스타트업 등 유용 자금이 부족한 기업은 경영난이 더 심각하다. 여기에 회사채, 대출, 주식 등 외부 자금 조달 창구까지 얼어붙으면서 기업 돈줄이 마르고 있다.
한 달 만에 8% 뚝
3분기 국내 주요 상장사 실적 전망치에서 3고 영향이 여실히 드러났다. 10월 12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3분기 대기업을 포함한 주요 상장사 172곳의 영업이익 전망치(48조5190억 원)는 한 달 전(52조7799억 원)보다 8%가량 내려앉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물론, 아직 3분기 실적을 공개하지 않은 주요 상장사의 영업이익 전망치가 발표 직전 대부분 하향 조정된 것이다. 전망치가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진 기업은 아모레퍼시픽(-49.2%), SK아이이테크놀로지(-43.4%) 등이다.대기업은 경영난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고 있다. 9월 삼성과 LG는 각각 주요 계열사 사장단 회의, 최고경영진 워크숍을 열고 최근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경영 전략을 논의했다. SK는 10월 19일부터 사흘간 최태원 회장을 포함한 주요 관계사 최고경영자(CEO)가 모여 기업 경쟁력 제고에 관한 세미나를 열 예정이다. POSCO홀딩스, 한화, 현대중공업 등은 일찌감치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위기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당초 수립한 투자 계획을 미루거나 백지화하는 대기업도 늘었다. 국내 대표 정유사 중 한 곳인 현대오일뱅크의 지주사 HD현대는 9월 27일 3600억 원 규모의 신규 원유정제시설 투자를 중단한다고 공시했다. 투자를 결정했던 3년 전과 달리 원자재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는 등 투자 수익성이 악화한 탓이다. 석유화학 기업 한화솔루션도 9월 초 투자비 급증을 이유로 1600억 원을 들여 질산 유도품(DNT) 생산 공장을 세우겠다던 기존 계획을 철회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금리인상 기조에 발맞춘 한국은행의 빅스텝(기준금리 0.5%p 인상)은 대기업에 또 다른 부담이다. 기업 규모만큼 부채액도 많은 대기업은 금리인상 시 이자가 가파르게 증가한다. 10월 3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표한 ‘주요 제조기업 대상 자금사정 인식조사’에 따르면 대기업 절반은 기준금리가 2.5%에서 0.25%p만 올라도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운 취약기업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기업들은 기준금리가 0.25%p 인상될 때마다 금융비용이 평균 2%씩 늘어난다고 응답했다.
스타트업 투자금 반토막
중소기업은 사정이 더 어렵다. 중소기업중앙회가 6월 수출입 중소기업 508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2 하반기 중소기업 수출전망 및 물류애로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30.5%는 고환율로 피해를 입었다고 답했다.스타트업 업계도 3고에 시름하고 있다. 대개 적은 자본금으로 창업하는 스타트업 업계는 아직 수익 모델을 확보하지 못해 영업이익이 적자를 기록하는 곳이 많다. 외부 자금 조달이 필수지만 벤처투자시장이 위축돼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10월 7일 스타트업 민관협력 네트워크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발표한 ‘2022년 9월 스타트업 투자 리포트’에 따르면 9월 한 달간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금은 총 3816억 원이었다. 이는 8월(8628억 원) 대비 55.8% 급감한 수치로, 스타트업 투자금이 5000억 원을 밑돈 것은 올해 들어 처음이다.
회사채 발행, 은행 대출, 주식시장 상장 같은 자금 조달 창구도 사실상 가로막혀 있다. 금융당국의 기업대출 관리 지침에 따라 은행의 대출 심사를 넘기 어려워졌고, 기업공개(IPO)를 통한 자금 조달도 증시 하락장에서는 되레 손해다.
전문가들은 3고 영향으로 정상 기업이 취약기업, 한계기업화하는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 기업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감당하기 힘든 취약기업 상태가 3년 연속 이어지면 한계기업으로 분류된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한국 주력 산업인 수출제조업 분야에서 한계기업, 좀비기업이 늘고 있다”며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수출제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국가 경제 전체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 경영 여건이 빠른 시일 내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 경제위기를 촉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나 미 연준의 금리인상이 당장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국내 기업들은 최소 내년 하반기까지 턴어라운드 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예상했다. 박 교수는 “이론적으로 부실기업은 시장에서 퇴장하는 것이 맞지만 지금처럼 대외 환경이 급격하게 변할 때는 펀더멘털이양호한 기업도 휘청거릴 수 있다”며 “정부가 중소기업, 스타트업 등에 긴급자금을 투입하는 등 구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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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이슬아 기자입니다. 국내외 증시 및 산업 동향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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