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거래 시장이 절벽 수준으로 얼어붙으면서 집값 하락폭도 커지고 있다. [GETTYIMAGES]
10월 6일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부(국토부) 국정감사에 참석한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의원들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부동산시장이) 급격하고 난폭한 강제적인 조정 과정을 겪지 않도록 금융을 유예하거나 완화하는 지원책을 펴겠다”며 경착륙 대책을 내놓겠다는 언급을 여러 차례 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정부가 국감 후속 대응으로 시장 연착륙 유도를 위한 추가 대책을 내놓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10월 13일 기준금리를 또다시 0.5%p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해 부동산시장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 기준금리는 지난해 8월 이후 이번까지 1년 2개월 새 2.50%p 인상돼 10년 만에 3%대로 올라섰다. 이로 인해 부동산시장 상황을 보여주는 각종 지표가 심각한 수준이다. 무엇보다 부동산 거래 시장이 단절을 넘어 절벽 수준으로 얼어붙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8월까지 전국 주택 매매 거래량은 38만539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73만7317건)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원희룡 장관, 경착륙 대책 시사 발언
법원 등기정보광장에서 매매시장 활성화 정도를 나타내는 ‘거래회전율’을 보면 8월이 0.22%로 지난해 같은 기간(0.32%)보다 0.1%p 감소했다. 이는 2013년 9월(0.22%) 이후 가장 낮은 수치이자 2010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8월 한 달 통계 수치로는 역대 최저 수준이다. 거래회전율이 0.22%면 거래 가능한 부동산 1만 개 중 22개만 거래됐다는 의미다.미분양 물량도 늘어나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3만2722채로 집계됐다. 2020년 5월(3만3894채) 이후 26개월 만에 다시 3만 가구를 넘어선 지난달(3만1284채)보다 4.6% 증가했다.
집값 하락폭도 커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10월 1주 차(3일 기준) 전국 아파트 값은 전주 대비 0.20% 내리며 22주째 하락세를 이어갔다. 이는 전주(-0.20%)와 동일한 하락폭이자, 부동산원이 아파트 시세를 조사하기 시작한 2012년 5월 7일 이후 10년 4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하락세다.
시장 침체에 따른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거래가 끊기면서 기존 집이 팔리지 않아 새집에 입주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고,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것으로 우려되는 ‘깡통전세’도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신축 빌라 등에서 깡통전세가 크게 늘면서 감정평가서를 이용한 전세반환보험 사고도 급증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사고 금액과 건수는 지난해 622억 원, 251건이었는데, 올해는 7월까지 997억 원, 427건으로 증가했다. 7개월 만에 지난 한 해 사고액과 사고 건수를 크게 뛰어넘었다.
시장 침체 부작용 증가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강남 아파트 단지. [뉴스1]
지방세수에서 비중이 큰 취득세 수입액도 급감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10월 2일 기준 올해 서울시 취득세 수입은 4조8397억 원으로 전년 동기(6조1997억 원)보다 약 1조3600억 원 감소(21.9%)했다. 서울시는 전체 세입에서 취득세 비중도 지난해 27.9%에서 올해는 22%대로 급감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문제는 이런 추세라면 올해보다 내년 취득세 수입이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 ‘2023년 취득세 세입 전망’에서 올해 취득세 수입을 지난해(33조8170억 원)보다 3조5000억 원가량 감소한 30조3130억 원으로 예상했다. 이어 내년에는 24조3900억 원 수준으로 쪼그라들 것으로 전망했다. 이처럼 취득세 수입이 급감하는 원인은 부동산 거래 위축이다. 취득세에서 부동산 비중이 81%에 달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할 때 부동산시장 경착륙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일시에 너무 급격한 수준으로 부동산시장이 경색되면 국가 경제에 부작용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부동산시장의 문제가 금융시장 부실로 이어질 수 있어 우려를 낳는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한국은 주요 43개국 중 코로나19 발생 후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난 국가다. 이렇게 증가한 가계부채의 상당 부분은 주택 구매에 쓰였다. 따라서 주택 거래 중단과 이로 인한 급격한 집값 하락은 가계부채 부담 확대로 이어지고 금융권 부실로 전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손경환 전 LH 토지주택연구원 원장은 “부동산시장의 경착륙은 부동산시장뿐 아니라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자칫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같은 불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당장 건설업계에서는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소·중견 주택건설업체 모임인 대한주택건설협회는 아예 국토부에 ‘주택경기 침체 해소 방안 마련’이라는 보고서를 최근 제출했다. 보고서에서 협회는 분양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늘어나기 시작한 미분양과 관련해 “대규모 미분양, 입주 지연, 건설사 연쇄 부도가 발생했을 때 대증요법식 정책으로는 문제 수습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선제적인 경기 회복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시장에서는 서울과 세종, 수도권 주요 지역의 규제를 풀고 대출·청약·세금 등 전방위로 제한을 완화해 얼어붙은 시장에 숨통을 틔워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현재 부동산시장 위축 숙도가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빠르고 광범위하다”며 “투기과열지구와 조정대상지역 해제가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장도 “안심전환대출 확대 운용, 주택 거래 규제 완화, 미분양 대책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착륙 대책 나오기 어렵다는 반대 시각도
전매 제한 기준이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등 대출 관련 완화책을 선제적으로 제시해 연착륙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최민섭 서울벤처대학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2주택자 대상 각종 규제 완화와 15억 원 이상 아파트에 대한 대출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수요층을 넓히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가계대출 연체율이 증가하면 한계차주나 다중채무자에 대한 저리 대환 대출로 급한 불을 끄는 디레버리지 정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일각에서는 업계 기대처럼 정부가 당장 경착륙 관련 대책을 내놓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국토부 정책 실무자들이 현재 부동산시장이 경착륙 단계에 진입했다고 판단하지 않고 있는 점을 근거로 제시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입장이) 변화한 것은 없고, 시장 상황을 자세히 모니터링하면서 필요할 경우 대응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당분간 기준금리 인상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도 정부가 경착륙 대책 마련에 부담을 느끼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최근 부동산 경착륙 문제의 근본 원인인 급격한 금리인상이 내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정부의 경착륙 대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정책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함영진 랩장도 “부동산시장 경색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방어하기 위한 금리인상 기조와 경제성장률 둔화 가능성이나 집값 고점 인식에서 비롯한 시장 위축이 원인”이라면서 “정부가 대책을 내놓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재성 기자는…
동아일보 경제부장을 역임한 부동산 전문기자다. 30년간의 기자생활 중 20년을 부동산 및 국토교통 정책을 다루는 국토교통부를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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