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는 9월 한 달 동안 빈집 활용 방안에 대한 ‘빈집 활용 아이디어 공모전’을 진행한다.[사진 제공 · 국토교통부]
이맘때면 기자들은 추석 연휴에 대비한 각종 기삿거리를 챙겨야 한다. 그중에는 명절 때 가족이 모여 앉아 나눌 만한 얘깃거리 찾기도 포함된다. 최근 몇 년간 지속됐던 부동산 가격 급등기에는 조상이 물려주신 부동산 유산 둘러보기가 인기 추천 소재였다. 대부분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조언을 섞은 기획이었다. 반면 요즘처럼 부동산시장이 쇠퇴 기미를 보이는 시점에는 이런 기획이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한다. 당장 큰 관심을 모으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럴 때 고향 동네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을 ‘빈집’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제안해본다. 빈집은 고향마을에 적잖은 문제를 일으키거나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빈집은 마을 미관은 물론, 주민 건강·안전 저해
우선 빈집은 마을 미관을 저해할뿐더러, 안전사고 위험도 매우 높다. 빈집에 쓰레기가 쌓이고, 벌레나 유기견 등이 서식하면서 인근 지역 주민들의 위생과 건강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버려진 빈집이 범죄에 악용되는 것도 예상 가능한 문제다. 가출 청소년들이 아지트로 삼거나, 흉악범죄의 온상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빈집이 주변 지역의 정주 환경을 악화하고, 사회적 평판을 떨어뜨리는 일도 다반사다. 그 결과 집값에 악재로 작용하는 경우도 매우 흔하다. 빈집이 생기면 주변 지역에서도 빈집이 늘어나는 ‘전염효과’까지 우려해야 한다. 빈집을 방치하면 주변 지역 전체가 슬럼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만약 부모나 친지가 살던 집을 빈집으로 방치하고 있다면 적잖은 액수의 강제이행금을 물어야 할 수도 있다. 국토교통부(국토부)는 지난해 10월 14일자로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이때 지방자치단체(지자체)장 등이 안전 조치 이행명령을 내렸는데도 따르지 않으면 건축물 시가표준액의 20%, 철거 조치 명령 거부 시에는 건축물 시가표준액의 40%를 부과할 수 있도록 바꿨다. 또 이행강제금은 60일 이내 조치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소유자에게 1년에 2회까지, 조치명령이 이행될 때까지 반복해서 부과하게 된다.
국토부는 또 국민 누구나 주변에 유해한 형태로 방치된 빈집이 있으면 신고할 수 있는 공익신고제도 도입했다. 해당 지자체는 신고를 접수한 날로부터 30일 이내 현장을 방문해 소유자, 관리인 등과 면담을 갖고 필요한 행정지도를 한다. 결국 빈집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가는 골칫거리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적잖은 문제를 안고 있는 빈집이 최근 급증하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전국 주택 1852만 채의 8.2%에 해당하는 151만여 채가 빈집이다. 2010년(79만 채)과 비교하면 10년 새 2배 가까이로 늘어난 물량이다. 또 빈집 4채 가운데 1채는 1년 이상 빈 채로 방치돼 있었다.
지자체, 사실상 빈집 관리 손 놓아
장기간 방치된 지방의 빈집 모습. 빈집은 지역 주민의 위생과 건강, 안전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GettyImages]
빈집이 늘어나는 원인은 다양하다. 농어촌이나 지방 중소도시는 지역 산업의 쇠퇴에 따른 일자리 감소, 주택 소유자의 고령화, 주택 상속 등이 주된 원인이었다. 대도시에서는 주택의 물리적 상태가 양호하고 주택에 대한 임대 수요가 있는데도 소유자가 재건축·재개발 등을 기대하고 빈집으로 방치하는 경우가 적잖다.
여기에 그동안 진행된 정부의 빈집 관련 대책이 부실하게 운영돼온 점도 문제를 키웠다. 우선 정부의 빈집 관련 제도가 현재 도시지역(‘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과 농어촌지역(‘농어촌정비법’)으로 분리돼 운영되고 있다. 이로 인해 혼선이 생기고 실효성 있는 대응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도 이를 깨닫고 보완책 마련에 나섰다. 6월 국토부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등 3개 부처가 공동으로 ‘빈집 관리체계 개편을 위한 제도 개선 연구’를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지자체가 빈집 문제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국토부 싱크탱크인 국토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 ‘지방정부의 빈집 관리 정책역량 분석과 시사점’에 이런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228개 지자체 가운데 24%인 54개 지역이 빈집 관련 조례를 보유하지 않고 있었다. 정부가 지난해 관련 법령 개정을 통해 빈집실태조사를 의무화했지만, 19개 지역은 관련 조사를 하지 않았고 올해 안에 조사할 계획도 없었다. 또 빈집에 대한 정비계획 수립 여부와 관련해서도 44개 지역이 수립하지 않았고, 연내 수립 계획도 마련하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빈집 관련 전담조직을 둔 지자체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 건축, 주택, 도시재생, 농업·농촌, 재개발, 민원허가 등을 다루는 부서에서 추가 업무로 다루고 있었다. 관련 예산 규모도 턱없이 부족했다. 2022년 기준으로 지자체가 빈집에 투입하는 평균 예산은 2억8000만 원에 그쳤다. 이는 노후도와 방치 수준이 심각해 즉시 철거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빈집을 철거하는 데 투입되는 비용의 20%에 불과한 수준이다.
선진국도 빈집 관리에 골머리
빈집 문제가 한국만의 고민은 아니다. 영국, 캐나다, 일본 등 세계 주요 선진국도 빈집 관리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일본 교토시는 아예 ‘빈집세’를 도입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올해 2월 2026년부터 빈집에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세금을 물리면 빈집 주인이 세를 놓거나 리모델링을 통해 매각에 나설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일본 정부는 소유자가 사망한 후 상속받은 빈집을 3년 안에 매각하면 양도소득세를 감면해주기도 한다. 일본의 일부 지자체는 주거지(빈집 포함) 세금을 상업시설 등 비주거지의 3분의 1~4분의 1 수준으로 낮춰주는 혜택을 폐지하는 방식으로 빈집을 줄이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영국은 빈집 비율이 0.9%에 불과한데도 ‘빈집 중과세(Empty Home Premium)’를 도입했다. 2년 이상 장기간 비어 있는 집에 카운슬세(Council Tax)를 최대 300%까지 중과하는 것이다. 캐나다 밴쿠버도 6개월 이상 비어 있는 주택에 대해 과세표준의 1%를 ‘빈집세(Empty Home Tax)’로 부과하고 있다.
한편, 빈집 활용 방안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용돈 벌이도 가능하다. 국토부는 9월 한 달 동안 빈집 활용 방안에 대한 대국민 아이디어 공모전을 진행한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하는 이 행사는 빈집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아이디어나 설계, 실제 운영 사례 등을 모집하기 위해 마련됐다. 서류 평가와 공모평가위원회 심사를 거쳐 우수 작품으로 선정되면 최대 500만 원 상금을 받을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부동산원 누리집(www.reb.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황재성 기자는… 동아일보 경제부장을 역임한 부동산 전문기자다. 30년간의 기자생활 중 20년을 부동산 및 국토교통 정책을 다루는 국토교통부를 취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