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 [뉴시스]
“서울시장 큰 그림, 구청장 디테일”
도시정비업계에서는 “재건축·재개발의 큰 그림은 서울시장이 그려도 디테일은 각 구청장에게 달렸다”고 말한다. 가령 신통기획, 모아타운 사업 참여를 원하는 재건축 단지, 재개발 구역은 각 자치구에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도시정비를 위한 각종 신청 과정에서 자치구 측이 ‘미온적’ 태도를 보일 경우 추진위원회나 조합은 사업 진행에 난항을 겪을 공산이 커진다. 서울에서 사업을 다수 진행한 도시정비업계 한 관계자는 “몇 년 전 서울 한 자치구에 있는 재개발조합이 총회를 열고 구청 측에 사업을 신청했는데 몇 개월 지나 구청이 ‘재개발 공고 절차에 문제가 있으니 다시 총회를 개최하라’며 반려해왔다”며 “조합의 미숙한 일처리 탓도 있겠지만 구청 측이 신청 과정의 사소한 문제를 상당히 시간을 끈 다음에야 통보한 배경이 의아했다”고 말했다.
노후도 기준·용적률 완화 권한 쥔 시의회
서울시의회의 의석수 변화도 오 시장의 재건축·재개발 활성화 정책에 힘을 더하는 요인이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의회 전체 의석 110석 중 6석을 얻는 데 그친 국민의힘(당시 자유한국당)은 이번 선거에선 112석 중 76석을 획득했다(그래프 참조). 민주당 의석은 기존 102석에서 36석으로 줄었다. 서울시의회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등 관련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노후도 조건 기준 △용적률 기준 △사업지 내 임대주택 비율 등을 정할 수 있다. 서울시의회의 부동산 정책 관련 상임위원회는 도시계획관리위원회다. 그간 도시계획관리위원회 위원 11명이 모두 민주당 소속 시의원이었으나 이번 지방선거 결과로 위원 구성도 크게 바뀔 전망이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동아DB]
최근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기존 구역 지정을 포기하고 더 유리한 조건으로 사업을 추진하려는 재건축 단지도 나오고 있다. 서초구 방배동 임광1·2차 아파트는 3월 17일~5월 18일 실시한 ‘재건축정비구역 일몰 기한 연장’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정비구역 지정을 해제할 전망이다. 해당 단지는 2018년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해 정비구역 지정 및 정비계획안이 통과됐으나 인근 다른 단지보다 임대주택 비율이 높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이에 아파트 소유자들의 결정에 따라 아예 사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재건축 사업을 다시 신청하게 된 것이다.
‘모아타운’ 시범사업지로 선정된 서울 강북구 번동 일대 모습. [뉴시스]
“단기간에 급격한 규제 완화 어려워”
단, 서울지역 자치단체장들이 도심 공급을 확대하는 쪽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지만 현재 부동산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서울 시내 재건축·재개발이 갑자기 속도를 내기는 쉽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최근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1만2032채 규모)을 비롯해 서울 시내 주요 재건축 현장에서 분양가 산정을 두고 재건축조합과 시공사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철근, 시멘트 등 주요 건축 자재의 글로벌 공급이 원활하지 않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영향으로 물가가 전반적으로 올라 건설비가 급등했기 때문이다.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건설 자재 가격 인상에 따라 공사비 단가를 현실화하는 등 근본적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라면서 “분양가상한제 자체를 손보지 않는 이상 서울시나 각 자치구가 애써봐야 재건축 현장의 갈등을 봉합할 수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5월 30일 둔촌주공 재건축조합과 시공사업단에 사업 정상화를 위한 중재안을 전달했으나 시공사업단의 수용 거부로 중재에 난항을 겪고 있다. 서초구 신반포15차 재건축, 동대문구 이문1구역 재개발 사업장에서도 분양가 산정을 둘러싼 갈등 조짐이 보인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성 자체가 낮아진 상황을 서울시와 각 자치구의 규제 완화로 타개하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최근 서울 시내 재건축·재개발에 이렇다 할 진척이 없었던 이유가 구청장이나 시의회 때문은 아니었다”면서 “(규제 완화를 위한) 최종 권한은 결국 중앙정부와 국회가 쥐고 있으며, 자칫 부동산시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단기간에 급격한 규제 완화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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