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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부터 단계적으로 밟아나가야 하는 체계적인 교육 과정을 경험한 적 없는 패러데이는 수학적 지식이 매우 부족했지만, 특유의 직관력과 성실함으로 수많은 실험을 훌륭하게 성공해냈다. 이후 그가 남긴 놀라운 업적과 발견들은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1831~1879)이라는 천재 과학자에게 이어져 완벽한 이론으로 만들어진다. 사실 패러데이에 관한 이야기만으로도 너끈히 몇 시간을 채울 수 있지만, 오늘 주인공은 패러데이가 아니라 맥스웰이다.
처음 전기를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발견한 것은 패러데이였다. 하지만 맥스웰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전기를 신기한 실험 장치로만 여겼을지 모른다. 복잡한 수식을 다루기 어려워했던 패러데이는 자신의 위대한 경험을 실험이라는 방식을 통해 남겼다. 그가 남긴 전자기장에 대한 기본 개념을 비롯해 두 물체가 서로 밀거나 끌어당기는 전기력, 전기가 흐르는 물체 주위로 흐르는 자기력, 전자기 회전 장치 등은 다른 과학자들의 업적과 함께 복잡하게 연결됐다. 우선 전기력은 전하를 띠는 물체 사이에서 작용하는 힘인데, 이미 오래전인 그리스 시대부터 사람들은 그 존재를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었다. 식물의 수지가 굳어 만들어진 호박을 털가죽으로 문지르면 머리카락이나 먼지가 쉽게 달라붙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전기(electricity)라는 단어 자체가 고대 그리스어로 호박(elektron)에서 유래한 것을 보면 확실하다.
자기력 역시 전기력과 마찬가지로 오래된 힘이다. 고대 그리스 마그네시아 지역의 양치기는 쇠로 만든 지팡이를 들고 다녔는데, 우연히 자철석이라는 광석이 쇠지팡이를 끌어당긴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게 ‘최초의 발견’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자석(magnet)이라는 명칭 역시 마그네시아(magnesia)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의 바르고 친절한 천재
마이클 패러데이(왼쪽).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GETTYIMAGES]
수많은 일화를 남긴 과학자들을 살펴보면 성격이 독특한 경우가 많다. 물론 과장되거나 희화화된 부분도 있겠지만, 남들과는 다른 행동과 말투는 동료들과 원만하게 어울리는 사회성보다 외롭고 괴팍한 천재성에 초점이 맞춰진다. 하지만 맥스웰은 정반대였다. 1831년 영국 에든버러의 넉넉한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나 가정교사로부터 개인지도를 받은 맥스웰은 호기심이 많고 남들보다 뛰어난 기억력을 보유한 영재였다. 부모와 마찬가지로 독실한 크리스천이던 그는 8세 때 위암으로 어머니를 여의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 순간이었지만 맥스웰은 도리어 어머니의 아픔이 끝났다는 것에 기뻐하며 눈물을 흘렸을 만큼 조숙하고 따뜻한 성품을 지녔다. 10세가 되자 맥스웰은 좀 더 고차원적인 교육을 받기 위해 에든버러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그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며 전 과목 고르게 우수한 성적을 받는 모범생이 됐다. 특히 14세에 처음 논문을 썼는데, 2개의 핀과 끈을 이용해 연필로 곡선을 그리면 하나의 집합 형태로 구분할 수 있는 타원체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갓 중학교에 들어간 아이의 논문에 과학자들이 관심을 보였고, 에든버러왕립학회에서 발표된 이후 천재로 주목받았다. 16세 때 명문 에든버러대에 입학한 그는 이후 케임브리지대, 마리샬대, 킹스 칼리지 런던으로 계속 자리를 옮기며 연구를 이어갔다.
이때 맥스웰은 자신보다 마흔 살이나 많은 패러데이를 만났고, 전자기학에 대한 영감을 공유하며 수많은 업적을 이뤘다. 그가 설계 과정부터 자문한 캐번디시연구소 역시 수십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을 정도로 맥스웰은 모든 측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존재다. 무척이나 완벽한 삶에 대한 신의 질투였을까. 아쉽게도 그는 어머니처럼 위암에 걸렸고, 48세에 영원한 안식의 길로 떠났다.
기존 전자기학을 통합한 맥스웰 방정식
N극과 S극의 자석은 아무리 작게 잘라도 하나의 극이 될 수 없다. [GettyImages]
프랑스 물리학자 샤를 오귀스탱 드 쿨롱(1736~1806)은 실험을 통해 두 전하 입자 사이에서 작용하는 정전기적인 인력을 거리와 전기량의 관계로 나타냈다. 이게 바로 전기력에서 매우 중요한 ‘쿨롱의 법칙’이다. 맥스웰은 이를 일반화해 ‘가우스 법칙’이라는 첫 번째 방정식을 만들어냈다. 전자가 공간으로 퍼져나가면서 만들어내는 선을 전기력선이라고 하며, 마치 잘 익은 김장 배춧속처럼 꽉꽉 들어찬 전기력선의 합을 전속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만약 어떤 면적에서 전속밀도를 안다면, 가우스 법칙을 통해 해당 면적에서 전속을 구할 수 있다. 쿨롱의 법칙이 각각의 개별 전하 사이에서 발생하는 힘을 표현했다면, 가우스 법칙은 하나의 전하로부터 발산되는 전기장의 세기를 보여준다.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장’이라는 개념을 담았다.
두 번째 방정식은 ‘가우스 자기 법칙’이다. 가우스 법칙을 자기력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보며 홀극(monopole)이라는 하나의 극만 갖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N극과 S극을 보유한 자석을 자르면 아무리 작게 잘라도 잘린 자석은 여전히 N극과 S극을 그대로 갖는다. 2개의 극을 따로 분리해 하나로 만들 수는 없다는 말이다. 쇳가루가 뿌려져 있는 곳에 자석을 놓을 때 만들어지는 선을 자기력선이라고 볼 수 있는데, 하나의 극에서 나온 자기력선은 반드시 다른 극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 역시 같은 말이다.
세 번째는 패러데이의 ‘전자기 유도 법칙’이다. 바로 이 세 번째 방정식 덕분에 우리는 전기를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다. 자속은 가상의 곡면에 작용하는 총 자기력을 나타내는데, 자속이 변하면 그 주변에 전기장이 발생한다는 법칙이다. 이를 이용하면 고리 모양 도선을 회전시켜 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풍력발전소, 화력발전소, 원자력발전소 등 존재하는 발전소가 대부분 에너지로 물을 끓여 터빈을 돌리며, 돌리는 힘으로 전기를 생산한다.
마지막 방정식은 ‘앙페르 회로 법칙’이다. 프랑스 물리학자 앙드레마리 앙페르(1775~1836)가 발견했지만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기존 앙페르 법칙은 전류가 변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문제가 없었으나 시간에 따라 전기장이 변할 때는 수정이 필요했기에 이를 맥스웰이 보완했다.
세상 모든 전자기기의 태동 배경
맥스웰의 전기장과 자기장에 대한 이론은 기존 전자기학을 통합했고, 이를 토대로 전자기기가 만들어졌다. [GettyImages]
길지 않은 삶 동안 현대 물리학에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이공계 학생들의 동경 대상이 된 천재 과학자의 유산들은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어디든 존재한다. 전자기학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휴대전화나 노트북, 심지어 자그마한 이어폰조차 만들 수 없다. 여전히 증기로 가는 자동차를 타고, 고무줄과 말뚝박기만 하며 놀았을 우리에게 작지만 거대한 전기적 세상을 열어준 맥스웰이 깊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그래서 적어도 그의 연구 덕분에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 검색창에서라도 맥스웰의 이름이 커피 브랜드보다는 계속 상단에 노출됐으면 좋겠다.
궤도는…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