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시장 패권 경쟁이 치열하다. 삼성전자, TSMC, 인텔, 엔비디아, AMD 등 반도체 전문기업뿐 아니라 구글, 애플, 테슬라까지 대규모 투자 계획을 앞다퉈 발표하고 있다. 11월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 170억 달러(약 20조 원) 규모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19년 ‘시스템 반도체 비전 선포식’에서 “메모리에 이어 파운드리(반도체 생산 전문기업)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확실히 1등을 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낸 바 있다. 이렇듯 ‘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 삼성전자의 다음 목표는 ‘시스템’ 반도체 시장 1위다.
현재 55만 명이 구독하는 과학기술과 공학, 반도체 분야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 ‘에스오디 SOD’를 운영 중인 권순용 씨는 “삼성전자가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패권을 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뉴로모픽(Neuromorphic), 인공지능(AI) 반도체에서 초격차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전망했다. 권씨는 정부출연연구기관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서 2019년까지 반도체 패키지 소재를 연구했다. 올해 7월에는 대통령 소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유튜브 채널 ‘에스오디 SOD’를 통해 과학기술과 공학, 반도체 분야 정보를 공유하는 권순용 씨. [박해윤 기자]
파운드리에서 TSMC 넘기 쉽지 않아
10월 25일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1주기 추도식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가보지 않은 미래를 개척해 새로운 삼성을 만들자”고 말했다. 가보지 않은 미래는 무엇일까.“앞으로 반도체 시장은 시스템 반도체, 그중에서도 AI 반도체가 대세가 될 것이다.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아직 점유율이 낮다. 지속적으로 투자를 늘리며 그 시장을 공략하는 쪽으로 나아갈 것이다.”
미국 경제 전문매체 블룸버그와 시장조사 전문 기관 트렌드포스 보고서를 종합해보면 2019년 기준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은 26.7%, 시스템 반도체 점유율은 73.3%이다.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 점유율은 4%에 불과하다.
파운드리는 TSMC가 압도적 1위다.
“TSMC가 점유율 52.9%, 삼성전자는 17.3%로 굉장히 밀리고 있다. 삼성전자가 TSMC를 뛰어넘기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다만 삼성전자 파운드리 분야 연구원들에게 물어보면 모두 긍정적으로 답한다. 앞으로 파운드리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면서 TSMC를 따라잡으려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단, 애플 같은 고객사가 경쟁자인 삼성전자에 반도체 생산을 맡기겠느냐 하는 점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
3㎚(나노미터: 10억 분의 1m), 2㎚ 미세공정을 선점하려는 삼성전자와 TSMC 간 경쟁도 치열하다.
“공개된 자료만 보면 현재는 미세공정 기술력에서 TSMC가 살짝 앞선 듯하다. TSMC 모토가 ‘고객사와는 경쟁하지 않는다’이다. 삼성전자는 고객사와 경쟁하는 구도이기에 기술력은 비슷하지만 점유율 차이가 생기고 있다.”
삼성전자, TSMC 이외에 3㎚ 공정이 가능한 기업은?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업체 경영진과 만남을 가질 무렵 인텔이 갑자기 3㎚ 반도체 양산 계획을 발표했다. 인텔이 미국 정부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지만 삼성전자, TSMC만큼 잘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반도체 미세공정 기술 발전은 물리적 한계에 봉착한 것 아닌가.
“반도체는 작을수록 성능도 좋다. 문제는 작아지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2~3년 전만 해도 더 작아지긴 힘들 것이라는 평이 있었지만 반도체기업 ASML의 EUV(극자외선) 노광 장비 등 미세공정 도구가 좋아지면서 반도체가 더욱 작아지고 있다.”
차세대 반도체 핵심은 뉴로모픽
사용자에게 신호등이 있는 사진을 고르게 해 인공지능(AI) 능력을 향상시키는 리캡차 프로그램. [리캡차 캡처]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현재 절대 강자가 없다. 독일 인피니언테크놀로지스, 네덜란드 NXP 등이 앞서나가고 있다. TSMC는 차량용 반도체 생산이 전체의 3% 정도밖에 안 된다. 자동차는 10년 이상 타야 하는데 그사이 반도체가 고장 나면 인명 사고가 날 수 있어 높은 신뢰성이 필요하다. 차량용 반도체 종류는 수없이 많아 한 기업이 모두 선점하지는 못할 것이다. 삼성전자는 AI, 뉴로모픽 등 차세대 반도체에서 부각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뉴로모픽 반도체는 인간 뇌신경을 모방한 칩이다. 차세대 반도체의 핵심은 뉴로모픽이 될 것이다. 삼성전자, 인텔에서 활발하게 연구하는 분야다. 9월 삼성전자는 미국 하버드대와 함께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 일렉트로닉스(Nature Electronics)’에 뉴로모픽 칩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인텔은 지난해 3월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뉴로모픽 반도체 로이히를 개발했다. 뉴로모픽이 삼성전자가 초격차를 낼 수 있는 분야가 아닌가 싶다. 누군가 하는 분야보다 개척되지 않은 분야에 뛰어드는 게 더 삼성전자스럽지 않나.”
뉴로모픽 칩이 상용화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텔에서 뉴로모픽 연구를 총괄하는 마이클 데이비스는 2019년 11월 ‘4년 이내 뉴로모픽 반도체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인텔 측은 ‘사람 뇌를 닮은 뉴로모픽 칩의 고도화를 통해 기존 모델보다 속도를 10배 이상 내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말한 데는 근거가 있으리라 본다.”
5G(5세대) 반도체 시장은 퀄컴이 1위를 달리고 있다.
“퀄컴이 압도적 1위다. 퀄컴 내부 자료를 보면 삼성전자가 꽤 뒤처진 것으로 나타난다. 다만 현 5G는 진정한 5G가 아니다. 광고처럼 휴대전화로 기가(GB) 분량의 영화를 몇 초 만에 내려받지 못하지 않나. 물론 기지국 문제지만 진정한 5G에 다다르지 못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 분야에서도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본다.”
구글, AI 반도체 연구 성과 돋보여
최근 ‘반도체, 넥스트 시나리오’를 출간했다. 미래 반도체는 어떤 모습일까.“내가 반도체 분야 전문가들을 인터뷰할 때 꼭 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받으면 교수, 연구원 백이면 백 모두 답하기 어려워한다. 미래는 함부로 예측할 수 없다. 그럼에도 AI나 뉴로모픽처럼 최첨단 기술이 필요한 분야에서 많은 연구가 진행될 테고, 이들 분야를 선점하는 기업이 미래 반도체 패권을 가질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AI, 뉴로모픽에서 현재 앞서 있는 기업은?
“구글이다. AI 반도체 논문 발표를 보면 구글이 세계 톱 수준이다. 연구 성과도 좋다. 반도체와는 다른 분야지만 구글은 2년 전 양자컴퓨터 프로세서 시카모어를 선보여 큰 화제를 모았다. 연구 및 개발에서 구글이 가진 강점이 분명히 있다고 본다. 애플도 반도체 설계를 잘한다. 11월 공개한 M1 칩이 대표적 성공 사례다. 테슬라도 최근 직접 설계한 반도체 칩을 공개했다. 완전자율주행은 반도체 칩이 모든 것을 판단하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딱 한 기업에만 투자한다면 어떤 기업을 선택하겠나.
“구글이다.”
이유는?
“앞서 말했듯 AI 반도체와 관련해 역량이 우수하다. 또한 소프트웨어 설계를 정말 잘한다. 일례로 구글이 운영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는 매달 유튜버들에게 성과를 알려준다. 성과가 좋으면 팡파르를 터뜨리고 그렇지 않으면 ‘너 성과가 안 좋은데 놀고 있을 거야?’ 식으로 말한다.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을 아는 셈이다. 구글은 리캡차(ReCAPTCHA: 휘갈겨 쓴 글씨를 보여주고 그대로 입력하라거나 여러 장의 사진 중 신호등이 나온 것을 고르라는 식의 보안 프로그램)로 사람들에게 돈을 주지 않고 일을 시켜 AI 능력을 향상시키고 있다. 다른 회사가 이런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었을까.”
※매거진동아 유튜브 채널에서 공학 유튜버 권순용 씨의 인터뷰 영상을 시청할 수 있습니다.
한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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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여진 기자입니다. 주식 및 암호화폐 시장, 국내외 주요 기업 이슈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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