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IT(정보기술) 공룡의 행보에 국내외 앱 개발사의 원성이 높아졌다. 자연스레 각국 정부는 법적 규제 방안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4월 30일 유럽연합(E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애플을 공정한 시장 경쟁을 방해한 혐의로 기소한 바 있다. 미국 의회도 자국 기업의 앱 시장 독점 시도에 제동을 걸려 하고 있다. 8월 11일 미국 의회 상원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은 초당적 협력으로 ‘열린 앱마켓법안(The open App market Act)’을 발의했다. 이용자에게 인앱 결제를 강제할 수 없도록 한 법안이다.
구글과 애플의 애플리케이션 플랫폼 ‘구글 플레이’(왼쪽)와 ‘앱스토어’ 로고. [사진 제공 · 구글, 애플]
“한국, 첫 오픈 플랫폼 국가”
그런 가운데 한국 국회가 세계 최초로 단순 발의를 넘어 구체적인 규제 대책을 꺼내 들었다. 8월 31일 국회에서 구글, 애플 등 앱 마켓 플랫폼 기업이 소비자에게 특정 결제 수단을 강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른바 ‘인앱결제 강제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빅테크 기업을 대상으로 한 법적 규제는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전통 제조업에 비해 독과점 여부를 따지기 어려워서다. 각국에서 규제 방안을 두고 논의만 많을 뿐, 구체적 입법은 지지부진하기만 했다. 국회의 개정안 처리를 두고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 트렌드를 리드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세계적 게임업체 미국 에픽게임즈의 팀 스위니 최고경영자(CEO)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오늘부터 난 한국인”이라는 글을 게시하기도 했다. 구글, 애플의 시장 독점을 법적으로 막은 한국을 “디지털 상거래 독점을 거부한 첫 오픈 플랫폼 국가”라며 “개인용 컴퓨팅 45년 역사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높이 평가한 것이다.
빅테크 기업도 그 나름 불만을 토로한다. “안정적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상당한 투자를 했고 운영비용도 만만찮다”는 게 요지다. 지금까지 게임 외 콘텐츠는 소비자와 앱 개발사가 별다른 비용을 내지 않고 이들 기업의 플랫폼을 이용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구글, 애플의 수수료 정책을 두둔할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앱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플랫폼은 분명 여러 곳이기에 일견 앱 시장에서 독과점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현실을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구글 플레이’를 예로 들자면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에 기본으로 설치돼 있다. 스마트폰 사용자가 굳이 다른 플랫폼을 이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만약 구글이 인앱 결제를 강요할 경우 앱 개발사는 과금 방식을 고스란히 수용할 수밖에 없다. 애플 아이폰에 설치된 ‘앱스토어’도 사정은 비슷하다. 30%라는 수수료 비율도 문제다. 왜 20%나 40%가 아닌 30%인가. 구글과 애플 어느 업체도 속 시원히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해 당사자인 앱 개발사가 일방적인 과금체계에 이의를 제기하면 어떻게 될까. 넷플릭스의 경우 모바일 플랫폼 기업에 지불해야 하는 수수료에 부담을 느껴 소비자가 자사 웹을 통해서만 결제할 수 있도록 했다. 그나마 넷플릭스는 정기 결제가 가능한 데다, 워낙 강력한 콘텐츠 파워를 지녀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작은 스타트업이나 글로벌 지배력을 갖추지 못한 대다수 서비스 운영사는 플랫폼 지배자의 정책을 일방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 한국의 빅테크 기업 규제에 환호한 에픽게임즈는 개발사의 녹록지 않은 현실을 잘 보여준다. 에픽게임즈는 30% 수수료 부과에 반발해 자체 결제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에 애플과 구글은 에픽게임즈가 개발한 주요 게임 ‘포트나이트’를 자사 앱 시장에서 퇴출했다. 지난해 8월 에픽게임즈는 두 업체를 상대로 독점 금지 소송을 제기해 법정에서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에픽게임즈 정도 사세(미국 시장에서 기업가치 약 173억 달러(약 20조 원)로 평가)는 돼야 빅테크 기업과 ‘기싸움’이라도 해볼 수 있다.
8월 31일 국회에서 통과된 ‘인앱결제 강제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두고 미국 게임업체 에픽게임즈의 팀 스위니 최고경영자(사진)는 “역사의 중요한 이정표”라고 평가했다. [동아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