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최근 주목받는 핀테크 스타트업 소파이. [소파이 홈페이지 캡처]
한국보다 앞서 핀테크 비즈니스가 활성화된 미국에서 최근 가장 주목받는 핀테크 스타트업 중 하나가 소파이(SoFi Technology)다. 6월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와 합병으로 나스닥에 상장된 이후 이 회사는 장기투자 대상으로 즐겨 거론된다. 미국 CNBC ‘매드 머니’의 진행자 짐 크레이머가 이달 초 “소파이 주가가 15달러면 그냥 사라(I think you just go buy it)”고 했을 정도다.
신용도 높은 명문대생 위주로 사업 시작
삼성전자는 미국에서 삼성페이와 결합한 직불카드 ‘삼성머니’를 출시하며 소파이와 손잡았다. [삼성전자 홈페이지 캡처]
이후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또 소프트뱅크, 카타르투자청,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 등으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하며 세를 확장했다. 2019년에는 은행 서비스인 소파이 머니(SoFi Money), 투자 거래를 중개하는 소파이 인베스트(SoFi Invest)를 출시했다. 현재는 입출금, 각종 대출, 신용카드 서비스, 신용 관리, 주식 및 암호화폐 거래 등 거의 모든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앤서니 노토 소파이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하나의 모바일 플랫폼에서 금융 솔루션을 포괄적으로 제공하는 유일한 회사”라며 “많은 핀테크가 이를 추구했지만 소파이만 유일하게 해냈다”고 말한다.
소파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통과하며 크게 성장했다. 6월 말 기준 고객 수가 260만 명으로 코로나 팬데믹 직전인 지난해 1월 100만 명과 비교해 2.6배 성장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학자금 대출 등의 사업은 부진을 겪었지만, 그 대신 암호화폐 및 주식투자 붐의 수혜를 입었다. 소파이는 금융상품 가짓수를 3배로 늘리면서 기존 및 신규 고객에게 이들 상품을 교차 판매해 매출을 늘려나가고 있다. 급여를 최대 이틀 일찍 찾아 인출, 결제, 저축, 투자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얼리 페이체크(Early Paycheck), 매주 배당금이 지급되는 상장지수펀드(ETF) 등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금융상품을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삼성전자도 최근 미국에서 삼성페이와 결합한 직불카드 ‘삼성머니’를 출시하며 소파이와 손잡았다. 갤럭시S 시리즈 사용자가 소파이에 자금관리계좌를 신청하면 삼성머니의 디지털 및 플라스틱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다.
소파이는 처음부터 신용도가 높은 고객을 확보해 경쟁력의 기반을 다졌다. 명문대 위주로 학자금 대출을 알선하면서 명문대 재학생을 고객으로 유치했고, 이들은 졸업 후 좋은 직장에 다니며 소파이에서 받은 대출을 착실하게 갚았다. 이후 소파이는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은행 및 투자 서비스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해 왕성하게 사회 활동을 하는 초기 고객들을 붙잡는 데 성공했다. 또 계좌 관리 수수료나 주식 거래 수수료를 없애고, 기존 은행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예금금리와 낮은 대출금리를 제공하며, 현금자동입출금기(ATM)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 고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소파이의 10년 역사에 굴곡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17년 사내에서 캐그니 당시 CEO를 비롯해 고위 경영진에 의한 성희롱 및 성차별이 만연했던 사실이 폭로됐다. 이 불미스러운 일로 캐그니 등이 회사를 떠났고, 소파이는 은행 라이선스 신청을 철회하며 사업 면에서도 한 발 후퇴했다.
소파이는 학자금 대출로 시작해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은행 및 투자 서비스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소파이 홈페이지 캡처]
갈릴레오 인수로 장기 전망에 ‘파란불’
이후 노토를 CEO로 영입해 시장에서 신뢰를 되찾았다. 노토는 골드만삭스 출신으로 내셔널풋볼리그(National Football League) 및 트위터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지낸 인물이다. 그는 소파이의 기업 문화를 싹 뜯어고치면서 중장기 경쟁력을 강화해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노토의 대표 성과로 꼽히는 것은 ‘핀테크업계의 아마존웹서비스’로 불리는 갈릴레오(Galileo)를 인수한 일이다. 갈릴레오는 은행에 결제, 대출, 투자 등 금융 API(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 기술 기업으로, 북미지역 상위 100개 핀테크 회사의 70%를 고객사로 확보했을 만큼 기술력 및 시장 지배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로빈후드, 차임(Chime), 몬조(Monzo), 바로(Varo) 등 굵직한 핀테크 회사가 갈릴레오의 고객이다. 지난해 12억 달러(약 1조4000억 원)에 갈릴레오를 인수한 소파이는 이 회사를 독립적으로 운영하면서 모바일 금융의 기술 플랫폼을 장악해가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한편 소파이는 은행 라이선스 취득에도 나선 상태다. 지난해 정부로부터 은행업 인가 예비승인을 받은 데 이어 올해 초 샌프란시스코 지역은행(Golden Pacific Bancorp)을 인수함으로써 좀 더 빠른 시일 내 본 인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 은행 라이선스를 확보하면 고객 예금을 대출에 활용할 수 있어 수익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소파이는 2025년 은행사업으로 10억 달러(약 1조1700억 원) 추가 매출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 시점의 재무 성적은 좋지 않다. 2분기 순매출이 2억130만 달러(약 2352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크게 증가했지만, 순손실이 1억6530만 달러(약 1932억 원)로 2배 이상 불어났다. 소파이 측은 이러한 손실 확대를 “성장을 위해 기술, 인력, 마케팅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터넷전문은행과 간편결제 서비스, 자산관리 서비스 등 국내에서도 다양한 핀테크 서비스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금융 서비스를 한 애플리케이션(앱)에서 모두 제공하는 강력한 핀테크 플랫폼이 아직은 등장하지 않았다. 원스톱 금융 앱이 되고자 하는 소파이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미국 소비자의 일상에 자리 잡을지 귀추가 주목된다.